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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Apr 05. 2019

안 괜찮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 하거나 괜찮아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다.

모든 끈을 노력하여 잡고 있을 필요가 없던 때는 피하거나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여력이 되는 선까지만, 내키는 만큼만 해도 당장 내게 닥치는 문제나 아쉬움을 느끼지 않아도 됐다. 그러다가도 문득, 괜찮지 않은 것을 내버려두지 않고 역행했던 경험이 나도 모르는 새에 차곡차곡 쌓이다가 어느 날 펑, 하고 터졌다. 평소처럼 잘 잊고, 까먹고 평온하게 지내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기억이 도화선이었다. 전조도 없다가 복불복으로 입을 콱 다무는 악어 이빨 누르는 게임처럼 툭 터지곤 했다.

그 또한 괜찮았다. 나를 괜찮지 않게 많드는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켜두고 마음껏 울고 잠시 자괴감에 빠졌다가 잠시 후엔 개운한 기분으로 툭툭 털고 재밌는 것을 찾아냈으니까.


시간이 흐르거나 상황이 변하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아주 순진하게 생각했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업무를 하느라, 뿌리는 비슷해도 걷는 길이 너무나 달라진 오랜 친구들과 대화를 이어가느라, 수십년을 매우 '타인'으로 살아온 애인과의 거리를 좁히느라- 여전히 무리를 하는 순간을 지나 뒤돌아서면 잊는다. 그런데 이제는 의지력이 바닥을 치더라도 꼬옥 붙들고 있어야 할 끈이 많아졌다. 겪을수록 내성이라도 조금 생길 줄 알았는데 속이 너덜거린다. 누더기처럼 쌓이고 쌓인, 좋지 않은 기억력 덕분에 형체는 잊혀지고 감정의 흔적으로만 남겨진 것들이 매달려서 꼬리처럼 질질 늘어졌다. 울고 싶어도 울 수가 없다. 울 여유도 없으니까 말이다. (감정도 사치 같죠.) 종종 슬기랑 장난으로 하는 "어른은 울지 않아. 단지 화를 낼 뿐이야!"라는 말도 실상 허세에 불과하다. 혼자서 뒷북도 그런 뒷북이 없다 싶게 분에 못 이겨 베개를 팡팡 내리치는 건 내 성향에 맞지 않는다.

섬에서 살던 집 뒷블록에는 놀이터가 있었다. 퇴근길에 들러 5분에 한 대 꼴로 이륙하는 비행기를 보면서 오래오래 힘껏 그네를 타면 시큰거리는 게 조금 덜해졌던 것 같다. 왜 우리 동네에는 그네가 안 보일까.

오랜만에 왕창 울고 싶어지니 이런 저런 마음이 울컥거리며 머릿속을 뒤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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