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연중 해가 가장 길다는 하지다. 해가 길어선지 생수 주문량도 늘어 이달 중 최고치를 찍었다. 오늘은 백여 집을 돌아서 자그마치 300팩을 날라야 한다. 그래도 오늘이 토요일이라 내일은 쉴 수 있다는 사실이 한 가닥 희망으로 다가온다.
돌아다녀야 할 집이 많은 만큼 날씨가 받쳐 주면 좋으련만 아침부터 비가 올 듯이 하늘이 가뭇가뭇하다. 이런 날이면 정오경엔 장대비가 쏟아질 게 분명하다. 끈적하게 옷이 젖을 각오를 다지면서 나는 컨테이너에서 탑차로 생수를 옮긴다. 매번 느끼는 바지만, 고객 문 앞에 생수를 배달할 때보다 아침에 제품 상차하는 일이 더욱 귀찮은 건 왜일까. 마치 어릴 적 학교 가기 싫어 이불속에서 안 나오던 그런 느낌이다.
탑차가 꽉 차도록 생수를 채우고 문을 닫았더니 기분은 좋다. 일이 좀 고되긴 해도 장사가 잘되는 건 사실이니까 말이다. 내가 배정받은 지역에서 근래에 생수를 배달시키는 주민이 느는 건 좋은 현상이다. 얼마 전 어느 집 정수기에서 유충이 나왔다는 소식이 맘카페에서 퍼진 후 빠른 속도로 생수 배달 주문량이 늘고 있다.
엔진을 켜는데 핸들이 묵직하다. 물류센터에서 배달 지역까진 제법 거리가 있다. 시동을 켜자마자 라디오에선 광고에 이어 일기예보가 흘러나온다. 장마 전선이 북상하고 있다고. 오늘은 흐리다가 오후부터 비를 뿌리기 시작할 거라고. 이런 젠장.
나는 제발 장마 전선이 더디게 더디게 올라와 주길 빌었다. 그러면서 또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 아, 정말이지 사업이 망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개고생은 하지 않는 건데. 신호에 걸려 멈춰 서있는데 눈앞으론 아파트에서 빌라로 이사하던 날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아내는 중고장터에 내놔도 팔리지 않아 폐기물처리 스티커를 붙인 고가의 가구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인부들과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흐느끼며 소리내어 울어서 몹시도 쪽팔렸다. 연년생인 중2와 중3 아들 녀석 둘이 우는 엄마를 달래었다. 아이들이 엄마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날이었다.
어느덧 내가 생수를 나른 지도 벌써 넉 달이 지났다. 그새 내 몸도 이 일에 단련이 됐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온몸을 두들겨 맞은 듯 쓰러져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지 눈앞이 캄캄했는데 말이다. 내가 도는 구역엔 18.9L짜리 말통을 배달하는 사무실도 있고, 2L짜리 생수통을 배달하는 가정집도 있다. 보통은 사무실을 먼저 돌고 그다음에 가정집을 방문하는 순이다. 풀필먼트 컨테이너 몇 곳에 말통을 내려놓고 다시 트럭에 올랐다. 주택단지로 가려면 대로변을 지나야 한다.
오늘은 신호가 무진장 안 받는 날이다. 신호등마다 족족 걸려서 멈춰 선다. 라디오 DJ는 지금부터 청취자 라이브 노래 시간이라며 첫 번째 신청자와 전화를 연결한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카랑카랑한 아줌마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신은영. 이름이 전혀 낯설지 않다. 그녀는 한때 나와 미래를 약속했던 여자다. 지금은 먼 기억 속의 그대이지만.
신은영이 윤수일의 아파트를 부르기 시작했다. 여자가 남자 노래를 잘도 소화한다. 나는 가끔 삑사리를 내는 아줌마의 노래를 들으며 부질없는 옛일을 떠올린다. 피가 끓던 젊은 시절, 나는 신은영의 아파트, 아니 오피스텔에 자주 출입했다.
이십 대의 우린 함께 피가 끓었다. 끓는 피를 주체하지 못해 우리는 만날 때마다 뜨겁게 사랑을 나눴다. 그러나 우리 사랑은 이룰 수 없다는 걸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나는 더욱 뜨겁게 그녀를, 그녀의 오피스텔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생 때 만난 우린 합창 동아리 ‘하모니’의 멤버였다. 우린 함께 노래를 불렀다. 앙상블 ‘에레스 뚜’를 부르는 천사 같은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반하고 또 반했다.
십 대부터 만나 이십 대 중후반의 청춘을 오롯이 함께했던 은영은 비에 젖은 풀잎처럼 청초했다. 가녀린 풀잎 끝에 맺힌 아침이슬이기도 했다.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회장인 그녀의 아버지는 고물상 집 맏아들인 나를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고물상 집이라 해도 밥을 못 먹고 살 정도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내 대학 등록금을 내주실 만큼, 등록금은 물론 용돈도 부족하지 않게 주신 덕에 굳이 아르바이트하지 않아도 은영이와 데이트하는 게 궁색하지 않을 만큼 그런대로 먹고 살 만한 집이었는데도 그녀 아버진 끝까지 반대하셨다. 평생 고생만 하고 사신 어머닌 결국 눈물까지 보이셨다. 모두가 잠든 새벽, 나는 싱크대 앞에서 남몰래 눈물 훔치는 엄니의 뒷모습을 엿보고야 말았다.
비가 흠뻑 내리는 저녁, 우린 결국 그녀의 직장 근처인 북창동 골목에서 각자 길로 돌아서야 했다. 그녀는 남대문으로, 나는 광화문으로, 그게 그녀와의 마지막이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우리가 헤어지기로 한 날의 늦은 오후부터 비가 내렸다. 보슬보슬 뿌리기 시작한 비가 어느 순간부터 줄기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아스팔트의 빗물이 바짓가랑이에 튀었다. 아스팔트 위에서 미끄러지던 빗물은 청계천으로 흘러 내려갔다. 나는 그날, 내게 눈물을 보이며 돌아서던 은영의 얼굴을 청계천 빗물에 흘려보냈다.
그녀와 헤어져 돌아온 다음 날에 나는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중소기업치고는 꽤 건실한 기업에 취직했는데, 말단 사원이라 쥐꼬리만한 월급으론 여자를 얻을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걸 안 엄니는 내 등짝을 후려치며 소리치셨다. 으이그! 이 못난 놈의 자식아!
군대 동기 형의 주선으로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사입삼촌(수수료를 받고 소매상의 물건 사입을 대신해 주는 사람) 일부터 시작한 나는 밤잠은 물론 낮잠까지 줄여가며 발품을 팔았더니 일 년 만에 전국 각지를 떠돌아다니게 됐다. 때론 제주도까지 갈 때도 있었다. 가끔 짬이 나면 봄철 경남 진해에서 벚꽃 놀이하기도 했다. 지금 아내가 바로 진해중앙시장에서 여성 의류점을 하던 여자다. 여자는 시장에서 나가는 옷보다 인터넷쇼핑몰로 판매하는 상품이 더 많아 물량을 많이 빼던 고객 중 하나였다. 밤새 트럭을 몰고 진해로 내려갔는데 새벽시장에 나와서 셔터를 올리는 여자의 뒷모습이 짠하면서도 예뻤다. 은영이 다음으로 내가 여자로 느꼈던 여자다. 시장통에서 옷 가게를 하는 여자와 나는 어쩌다 보니 땡땡이를 치고 벚꽃 놀이를 하러 가기에 이르렀다. 그녀와 함께 사람들로 붐비는 경화역을 거닐면서 나는 새삼 깨달았다. 사람의 인연이 따로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라디오 불교방송에서 들었던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말이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했다.
암튼 신은영을 떠나온 나는 그녀를 잊기 위해서라도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그놈의 돈이 원수였기에, 돈 때문에 여자를 잃은 나는 정말 미친 듯이 돈을 벌었다.
아내와 결혼한 후에, 시절 인연을 만나서인지 운이 좋아서인지 둘 다인지는 몰라도 내 사업 운은 뻥뻥 뚫렸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네 시작은 미약할지라도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내가 하는 일은 전국에서 국제 무대로 뻗어나가기에 이르렀다. 일종의 구매대행인 ‘사입삼촌’ 나부랭이를 하던 나는 동대문과 광저우와 자카르타와 방글라데시를 종횡무진으로 오가며 섬유 중개무역,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오퍼상(수출업자와 수입업자와의 거래를 중개하고 수수료를 챙기는 사람)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자카르타에 봉제공장도 세웠다. 한 몇 년 동대문과 남대문 바닥을 기어다니던 내가 어쩌다 운 좋게 자카르타 현지에서 취업했는데 40도가 넘는 땡볕에서 버티다 보니 공장까지 차리게 됐다. 공장은 꽤 잘 굴러갔으나, 어느 날 다 타버렸다. 공장은 물론이고 동대문과 남대문에 보내야 할 원단도 몽땅 다 타버렸다. 공장이 무너지던 날, 이상하게도 신은영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노래하는 아줌마의 목소리가 낯설지 않다. 고딩 시절 합창 동아리를 함께 했던 신은영의 목소리와 어딘지 닮은 듯도 하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딩동댕 벨이 울렸다. 신호가 바뀌어 가속페달을 밟았다. DJ는 노래하던 아줌마에게 커피 쿠폰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아줌마가 사는 지역은 내 배달 구역인 부천시 소사구 **동이다. 세상에 동명이인은 많은 법이니까. 나는 곧 머릿속에서 신은영을 지웠다. 더 생각하면 골치 아프니까. 은영이보다 그녀의 아버지가 더 생각나기 때문이다.
일기예보가 기가 막히게도 전면 유리창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제길. 지금부터 엘베 없는 저층아파트와 빌라촌 배달 시작인데. 난 이제 죽었다. 한 몇 시간 반짝 지옥을 다녀와야 한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 내일은 휴일이니까 말이다.
저층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끌차를 내렸다. 빗방울이 그새 굵어졌다. 2L들이 생수가 한 묶음에 여섯 통인데 어느 집에서 8묶음, 그러니까 48팩을 시켰다. 평소 24팩씩 시키던 집인데 이번엔 갑절로 시킨 게 물을 쟁여놓고 먹을 모양이다. 어쨌든 나한텐 잘된 일이다. 그만큼 개당 배송료가 많이 남으니까. 끌차에 생수를 옮겨 담고 아파트 정문으로 걸어가는 동안에 반바지와 티셔츠가 젖어서 몸에 달라붙는다.
나는 한 손에 한 묶음, 그러니까 12팩씩 들고 계단을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오 층까지 네 번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 한 번 내려놓기 무섭게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두 번째 물을 내려놓던 찰나, 안에서 부산하게 인기척이 들린다. 아줌마가 큰 소리로 “생수 왔나 봐?” 하면서 현관문을 확 연다. 아줌마와 내 눈이 마주치는 찰나, 나는 마치 귀신에 홀린 듯 꼼짝도 하지 못한다.
아줌마는 아까 라디오에서 라이브로 노래를 불렀던, 십수 년 전에 헤어졌던 신은영이다. 그런데 옛날의 신은영이 아니다. 부풀다 못해 겹치기까지 한 뱃살에 넉넉해진 풍채, 거기다 티셔츠 앞섶에 묻은 김칫국물이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뽀글뽀글한 파마머리를 핀으로 아무렇게나 지른 데다 턱살이 늘어져 두 배로 커진 얼굴, 꺼진 눈살 밑으로 점점이 박힌 기미와 주근깨들에 그만 내 시선이 멈춰버렸다.
그녀 역시 듬성듬성 숱이 빠져 가운데가 비어가는 머리털이며, 까무잡잡해진 얼굴이며, 비와 땀으로 범벅된 생수 기사 유니폼을 입은 내 몰골에 어지간히 넋을 잃은 모양이다. 안에서 사내아이 둘이 “엄마, 누구야?”하고 뛰어온다. 딱 우리 아들 또래 애들이다. 이윽고 “누구야?” 하며 사내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온다. 런닝구에 트렁크 바람의 사내는 딱 나처럼 머리숱이 빠져 가운데가 비어가는 데다 뭘 해 먹고 사는지 얼굴이 까무잡잡하다. 일순간에 그녀의 가족을 한꺼번에 맞닥뜨린 나는 죄인처럼 푹 고개를 떨구고 계속해서 하던 일을 했다. 아무것도 안 본 듯이 순식간에 계단을 뛰어올라 마지막 네 번째 물을 내려놓고 돌아서려던 찰나에 신은영이 나를 불렀다.
“저기, 아저씨! 음료수 하나 드시고 하세요!”
은영이가 내게 500ml짜리 플라스틱 통에 든 포카리스웨트 한 병을 내밀었다. 내가 멋쩍게 음료수를 받아 드는데 은영이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고개를 숙이고 문 앞에 쌓인 생수병들만 바라보았다. 고맙습니다!
나는 음료수를 받아 들자마자 얼른 뒤를 돌아 도망치듯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일이 끝날 때까지 나는 심장이 쿵쾅거렸다. 마지막 빌라촌을 돌 때는 빗발이 더욱 굵어져 나는 그야말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옷이 몸에 쫙 달라붙어 불쾌한데 눈앞에서 그녀가 사라지지 않는다. 아! 차라리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드디어 마지막 배달이 끝나 탑차의 짐칸이 비었다. 돌아가는 길에 전면 유리창에선 와이퍼가 쉼 없이 까딱인다. 움직이는 와이퍼 사이로 그녀의 얼굴이 비치다 사라지다 반복한다. 왼쪽으로는 과거의 얼굴, 오른쪽으로는 현재의 얼굴. 어제의 그녀가 오늘의 그녀와 오버랩되기도 한다. 핸들 앞으로 그녀가 준 포카리스웨트가 얌전히 꽂혀 있다. 나는 차마 음료수병을 따지도, 먹지도 못한다. 그녀가 내게 준 마지막 선물이니까.
앞으로 다신 만나지 않았으면 한다. 센터에 배달 구역 변경을 요청해야 하나 고민해 봐야겠다. 물류센터에 도착하니 비가 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