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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Sep 22. 2017

네 차에서

사실은 누구 차든



"샀던 모든 차에서 섹스를 해봤지." 이기훈 씨가 말했다. 그는 미니, 3시리즈, 엘란트라, 재규어 등을 타봤다. 차도 운전도 여자도 섹스도 좋아하는 그가 내린 결론은 "카섹스는 불편해. 움직임도 제한되고, 신경은 더 많이 쓰이고, 뒤처리도 불편하고." 그걸 아는 분이 왜? "스릴 있잖아. 그리고 비 오는 날은 좋아. 선루프에 비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하면 운치가 있지." 선루프가 넓은 푸조 영업 사원들이 좋아할 법한 이야기다. 그는 지금 모하비를 탄다. “SUV가 좋아, 넓어서.”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모든 남자가 이기훈 씨 같을 리 없다. 김영권 씨의 혼다 CR-V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불편한 거 싫어요. 신경도 쓰이고, 뒤처리도 어려울 것 같아요. 씻지도 못하고." 김영권 씨는 웬만한 여자 못지않게 깔끔하다. 섹스에 대해 물어보고 다닐수록 느끼는 건데, 섹스에는 남녀 차이보다 개인 차이가 더 큰 것 같다. 


‘남자가 1.2배 정도 더 흥분한 거 같아서’ 정솔비 씨는 카섹스를 좋아한다고 했다. "카섹스에는 서로 못 참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라는 즉흥적인 분위기가 있어. 그게 흥분돼." 정솔비 씨는 일관적이었다. "그래서 뒷자리로 가자는 남자는 싫어. 계획적이야. 한참 하다가 다시 옷 입고 앞문 열고 뒤로 가는 것도 그렇고. 일 때문에 뒷좌석에 셔츠를 걸어두는 남자도 별로였어. 너무 준비한 것 같잖아.”


"한국에서 굳이 카섹스를 할 필요가 있나요?" 신지우 씨는 되물었다. "미국은 차도 크고 한국 같은 모텔 문화도 없어요. 한국은 모텔이 있는데 굳이 차에서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캠핑카처럼 특수한 차가 아니라면야 굳이 차에서 섹스하고 싶지 않아요." 그녀는 폭스바겐 폴로를 탄다. 차가 작아서 그렇게 생각할까? "아닌 것 같아요. 대형차를 타도 똑같았을 거예요." 


신지우 씨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 차는 좁다. 아무리 넓어도 방은 아니다. 효율을 생각하면 차에서 섹스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차선을 거의 하나 다 차지할 정도로 넓은 허머를 탄다. 한국의 여름에 할리 데이비슨을 타면 가랑이가 불타는 것처럼 덥다. 역시 어떤 사람들은 그걸 탄다. 취향은, 특히 성적 취향은 거의 대부분 효율로 설명되지 않는다. 카섹스도 마찬가지다. 


K5를 타는 윤슬기 씨도 카섹스를 좋아한다고 했다. "소심한 남자라도 카섹스를 할 때는 여자를 리드하게 돼요. 좁으니까 "조금 앞으로", "다리를 더 위로" 같은 말을 해야 돼요. 그런 말이 흥분되는 거죠. 리드를 해야 되는 상황 자체가." 말을 들어보니 경험이 꽤 있는 것 같은데, 스포츠카에서도 섹스를 해봤을까? 그 좁은 데서도 그런 재미가 들까? "아유, 그 경험은 없네요. 그렇게 돈 많은 남자는 안 만나봤어요." 


"할 수 있어요." 드리프트가 취미였고 얼마 전까지 2인승 로드스터를 가졌던 이민수 씨가 말했다. 그는 세단, 밴, 로드스터, 쿠페 등 다양한 차를 사보기도 했다. "대신 버킷 시트는 안 돼요. 시트가 안 누우니까. 앞자리-뒷자리가 2+2 구성이면 할 수 있어요. 시트가 조금이라도 누우니까.” 


눕는 거야 그렇다 치고, 높이는? 지붕을 여나? "지붕을 연다고 다가 아니에요. 요즘 카브리올레는 앞 유리가 많이 기울어져 있어요. 덕분에 지붕을 열어도 머리카락이 안 날리죠. 대신 지붕을 연다고 높이가 더 확보되지도 않아요. SLK 같은 차는 지붕 열어봐야 소용없어요." 코너 공략법처럼 세세한 조언이다. 교훈도 있다. 카섹스하고 싶다면 SLK는 사지 마라. 어쩌면 메르세데스-벤츠의 디자이너들은 카섹스를 방지하기 위해 앞 유리를 많이 눕혔는지도 모른다. 


"타임스퀘어 지하 4층 주차장에서 자주 했지." 우리의 권헌준 씨는 안 해본 게 없다. "만나던 전 애인이 자극적인 걸 좋아하더라고. 마트에서 장 보고 주차장에서 입으로 해주다가… 뭐 그렇게 됐지." 차도 차지만 장소도 중요하다. 카섹스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나만의 장소가 있다. 어딘가의 주차장, 어디의 국도 변, 분당 가는 간선도로의 갓길, 동호대교 북단의 어딘가. 


"동해 가는 길." 붕맨꿀 김예리 선생은 제주도의 장필순처럼 잔잔하게 말했다. "미시령터널이 뚫리면서 사람들이 구국도를 안 가요. 텅 빈 국도 중간에 내가 좋아하는 장소가 있어요. 아주 운치 있지." 그녀는 스마트 카브리올레를 탄다. "지붕을 열고 내가 올라가면 내 머리가 반쯤 차 밖으로 올라가요. 나는 그 높이를 좋아해요." 미시령 옛길을 지나다 김예리 씨를 보셔도 모른 척해주시길. 이기훈 씨도 말했다. "카섹스는 못 본 척하는 게 매너야."





카섹스 3종 세트

마른 휴지, 물티슈, 콘돔

자동차등록증과 함께 글러브 박스에 늘 넣고 다녀라. 콘돔만 남들 안 보이는 곳에 두면 된다. 없으면 당신 티셔츠로 닦아야 한다.


음료수는 안 된다. 둘 다 차에 누워 있으면 음료를 쏟기 쉽다. 단 걸 차에 쏟으면 관리하기 힘들다. 뚜껑을 열지 않은 생수를 몇 병쯤 구비해두는 게 좋다. 꼭 카섹스를 위해서가 아니어도. 


바르는 모기약

창문을 열어야 할 때가 온다. 분명히 당신과 그녀는 모기에 물린다. “지난주에 동해에 다녀와서…”같은 말과 함께 전해주면 된다. “너랑 카섹스하려고 샀어” 같은 말 절대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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