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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Aug 18. 2017

양말은 언제 벗어야 할까?

이런 것까지 생각해야 할까?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를 타고 전국을 무대로 사업을 하는 틈틈이 섹스도 열심히 하는 권헌준 씨도 가끔 고민한다. 처음 사랑을 나누게 된 여자와 한 방에 들어 갔을 때. “언제 양말을 벗어야 할지가 묘하단 말이야. 모텔이든 여자 방이든 들어갔다 쳐. 들어가자마자 양말을 벗으면 ‘난 이제 너와 할거야’라고 선언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안 벗고 있으면 키스하고 옷을 다 벗을 때까지 양말 쪽에 잠깐 손댈 시간이 없어.” 처음 만나는 여자가 얼마나 많으면 저런 생각을 하는 건가 싶지만 고민은 고민이었다.


“그런 게 고민이라고요?” ‘붕맨꿀’ 이야기가 실리자 한결 친절해진 김예리 씨는 조금 놀란 듯했다. “전혀 신경 써본 적이 없어요. 양말을 끝까지 신든 처음부터 벗든 무슨 상관이람.” 대신 김예리 씨에게도 고민은 있다. “나는 왁싱을 해요. 왁싱을 하고 3일쯤 지나면 털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해. 그게 아주 신경이 쓰여요. 특히 남자가 입으로 해줄 때. 집중이 안 될 정도예요.”


“아무 신경도 안 씁니다.” 김권수 씨는 도산공원 느티나무 아래에서 단언했다. “왁싱해주는 것만도 고마운데요? 그렇게 작은 털은 있는 줄도 몰랐어요.” 남자와 여자가 몸을 섞을 때 신경 쓰는 부분은 각자 다른 모양이다.

김권수 씨의 경우는 브라였다. “옷을 벗기다 보면 브라를 풀어주잖아요. 이때 한 손으로 풀지 두 손으로 풀지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한 손으로 풀자니 너무 경험 많은 사람으로 볼까 염려되고, 두 손으로 풀자니 괜히 내숭 떠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요.” 그러면 뭘로 푸나? 마음으로? “잘 기억도 안나요. 그냥 정신을 차리면 풀려 있는 거죠.”


“별게 다 고민이네. 그런 게 고민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순천향대병원 근처에서 꽃을 다듬으며 변혜미 씨가 말을 이었다. “한 손이든 두 손이든 상관 없는데요? 잘 못 풀면 짜증나긴 하겠지. 그런데 그 맘이 뭔지는 알겠어요. 나도 신경 쓰이는 게 있어.” 들어나 봅시다. “바지를 너무 잘 벗겨도 될까? 남자 바지 와 벨트는 은근히 잠그는 종류가 많단 말이에요. 정장 바지는 안에 단추도 있고, 벨트도 잠그는 방식이 다양하고. 이걸 다 잘 벗겨도 될까?”


“잘 벗겨주면 나야 좋지. 이 나이 되도록 남자 바지도 못 벗기면 그것도 좀 그런데....” 정용훈 씨는 이해가 안 된다는 눈빛이었다. 섹스에서든 관계에서든 남자는 신경을 쓰는데 여자는 신경을 쓰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반대 경우도 물론 있다. 열효율이 떨어지는 보일러처럼 우리는 서로 고민하며 각자의 기운을 낭비한다. 정용훈 씨도 고민했다. “모텔 일반실을 끊을까, 특실을 끊을까? 가격은 비슷해. 들어가서 하는 건 똑같아. 일반실을 끊자니 좀스러워 보일 것 같고 특실을 끊자니 돈이 아까워.”


“그런 고민도 하는구나.” 방배동에서 만난 강성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의 고민 중에 속옷 이야기는 없던가요? 위아래 다르게 입은 속옷 말이에요. 어떤 상의와 어떤 하의를 입느냐에 따라 속옷도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보광동에서 만난 성윤진 씨도 거들었다. “남자 친구를 만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 싶은 날 입는 속옷이 따로 있어요. ‘이렇게 입었으니 절대로 만나지 않을 것이다’ 싶은 속옷도 있죠.” 강성은 씨도 말했다. “춤이 좋아서 클럽에 다닌 적이 있어요. 일부러 위아래가 안 맞는 속옷을 입었어요. ‘남자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장치 같은 거예요.” 여자의 세계는 정말 심오하다.


그와 그녀의 고민은 한군데로 모인다. 좋아하는 상대에게 어떻게 하면 더 잘 보일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한다. 양말부터 위아래 속옷에 이르기까지, 상대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들에 대해 신경을 쓴다.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잘 보일까?


답은 위에 다 나와 있다. 내가 어떻게 하든 너무 좋아서 흠을 안보는 사람을 만나면 된다. 여자가 스포츠 브라에 레오파드 프린트 T백을 입었든, 남자가 너무 긴장해서 사정할 때까지 양말을 못 벗고 있든, 좋아하는 사이라면야 다 좋은 모습만 보인다. 양말을 언제 벗을지 고민하기보단 양말을 언제 벗든 상관하지 않는 상대를찾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이 결론을 말해주려고 밤에 권헌준 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섹스를 하던 중이었는지 좀 있다 답이 왔다. 이번엔 양말을 제 타이밍에 벗었나 모르겠다.




에스콰이어에서 이런 글도 만듭니다. 섹스 칼럼은 만들 때마다 아슬아슬한 기분입니다. 제가 틀렸거나 읽으시며 불편하신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그런 조언이 꼭 필요합니다. 


일러스트는 131WATT의 이영이 그립니다. 저는 그의 그림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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