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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Aug 13. 2017

잘까 갈까?

당신 생각은?



솔직한 김예리 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글 잘 봤어요.” 김예리 씨는 뻔한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아니다. 역시 그녀는 할 말이 따로 있었다. “지난 달 글 보고 떠오른 게 있어요.” 또 무슨 말을. 나는 조금 불안해졌다. “잘하는 남자는 나를 잠들게 한다는 말이 있었잖아요? 바로 그거야. 하고 바로 잠들면 얼마나 좋은지 몰라. 난 그 이름도 만들어놨어요. 붕맨꿀.” 뭐? “붕가붕가 후 맨몸에 꿀잠. 붕, 맨, 꿀. 나 이거 꼭 써줘. 유행어 만들고 싶어요.”


좀 우악스러운 조어다 싶지만 김예리 씨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 둘이 함께 눈을 마주치면서(자세에 따라 안 마주칠 수도 있지만 아무튼) 절정에 이른다. 절정에 이른 후에만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은 피로가 서로의 몸을 감싼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살을 대고 깊은 잠에 빠져든다면.... “피곤해. 생각만 해도 피곤해.” 남자들은 낭만적인 분위기에 산통을 깬다. 옥인동에서 만난 제임스 김은 냉정했다. “섹스고 뭐고 좋자고 하는 거지, 잠 설치려고 하는 거 아니잖아. 그리고 100% 코 곤다고, 둘 다.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어.”


남자만 냉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랑을 나누고 나서 함께 잠든다? 그건 감성적인 연결 같은데요. 저도 하고 나서 같이 잠드는 건 싫어요. 다른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게 달갑지 않아요.” 여자인 정승현 씨의 의견도 고드름처럼 차갑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일수록 섹스의 취향은 성별 차이라기보다는 개인 차이에 가까워진다. 유형이 있긴 있다. 같이 잠듦 계열, 따로 잠듦 계열.


이러니 저러니 해도 좋은 게 좋은 거 아닐까?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오르가슴에 이르는 여정은 아무래도 즐겁지 않을까? 남자가 코를 좀 골아도? “일어났는데 옆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잖아요.” 최진희 씨는 같이 잠드는 쪽에 한 표를 행사했다. 그는 연상의 연인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남자들이 나이가 들면 코를 골긴 해요. 같이 자는 걸 좋아해도 내 귀 바로 옆에서 코 골면 불편할 때도 있죠. 그럴 때는 제 가슴 사이에 남자 얼굴을 끼워요. 남자도 좋고 나도 좋고.”


“나도 안 자.” 섹스를 좋아해서 결혼은 안 하는 권헌준 씨 역시 자기 영역이 확실했다. “불편하잖아.” 동시에 그는 다양한 여자와 섹스를 즐기는 남자답게 유연했다. “잠은 집에서 자는 게 내 원칙이야. 하지만 집에 가면 여자가 삐질 것 같다, 그러면 같이 자기도 해.” 세상에 공짜 쾌락은 없다. 그에게도 난처한 순간이 있다. “여자한테 ‘쌌다 이거냐?’ 같은 말도 들었지.” 권헌준 씨의 삶도 쉽지 않다.


솔직히 혼자 잘 때 제일 편하다. 반면 방금 전까지 함께 체온을 덥히던 사람이 방금 전 일을 다 지워버리겠다는 것처럼 바로 씻고 집으로 가버리면 야속해지기도 한다. 그 사이에 사랑을 나누는 둘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클리토리스처럼 숨겨져 있지만, 있긴 있다. 섹스와 사랑은 나의 불편과 상대의 편안함 사이의 적정선을 찾는 일 아닐까. 함께 자는 일도 마찬가지다.


“낯선 곳에서 자면 다음 날 컨디션에 영향을 주잖아요. 저는 그게 싫더라고요. 섹스를 포함한 데이트라도 당일치기가 좋아요. 하루가 하루씩 끊어진다고 해야 할까요? “ 웬만하면 늘 집에 간다는 홍윤수 씨의 말에는 생각해볼 구석이 있다. 섹스만이 목적인 사이라면 다음 날 아침까지 함께 있을 필요가 없다. 반면 오래 관계하는 사이의 시간은 어제부터 내일까지 계속 이어진다. 함께 쌓는 시간 속에서 책임이 태어난다. 어릴 때는 책임이 싫지만 세상엔 책임을 다했을 때 오는 행복이라는 게 있다. 조금 불편하지만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잠들다 보면 그런 행복을 깨닫는 시간이 온다.


결혼한 지 9년 된 윤지석 씨는 아내와 한 침대에서 잔다. 사랑을 나누거나 껴안고 잠들지는 않아도 가끔 잠결에 서로를 찾는다. “불편하지. 그런데 그렇게라도 이어지는 장치가 필요해. 부부처럼 가까운 사이는 더 그래. 둘이 있으면 전보다 더 좋아. 이제 서로를 더 많이 아니까. 어떻게 껴안으면 싫어하는지, 언제 안아주면 좋아하는지.” 그 이야기를 하는 윤지석 씨의 표정이 참 좋아 보였다. 하긴 김예리 씨도 ‘붕맨꿀’을 강조할 때 잇몸을 다 드러내며 웃었다.



에스콰이어에서 이런 글도 만듭니다. 섹스 칼럼은 만들 때마다 아슬아슬한 기분입니다. 제가 틀렸거나 읽으시며 불편하신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그런 조언이 꼭 필요합니다. 


일러스트는 131WATT의 이영이 그립니다. 저는 그의 그림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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