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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Aug 03. 2017

잘 한다는 것

조금 머쓱한 이야기



“걔 참 잘했는데.” 여자를 좋아하고 결혼은 싫어하는 권헌준 씨가 말했다. 우리는 수요일 밤 11시 30분에 갑자기 약속을 잡고 서울 논현동 어딘가에서 돼지고기를 굽고 있었다. 남자는 결혼하지 않으면 어른이 안 된다는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고기를 굽는 동네가 조금 바뀌었을 뿐 우리가 하는 이야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잘하는 여자가 어떤 여자냐고? 우선 여자 스스로가 뭘 원하는지를 알아야 돼. 어디를 자극했을 때 어떤 느낌이 나는지 같은 거 있잖아. 그리고 그걸 적극적으로 달성하고 추구하려 노력해야 돼.” 모든 남자가 권헌준 씨처럼 철학적인 결론을 내지는 못한다. 권헌준 씨는 섹스를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철학에 가까운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


신관태 씨처럼 “나한테는 예쁜 여자가 잘하는 여자야” 같은 말을 더 많이 들었다. “잘하는 게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한참 생각해보니까 나는 역시 얼굴이 중요한 것 같아.” 나는 그에게 권헌준 씨의 의견을 들려주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여자는 어떤지. 그는 잠깐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못생긴 여자가 적극적으로 뭔가를 추구하는 걸 보느니 예쁜 여자가 역시 더 낫겠어.” 남자들이란.


남자끼리 이야기해봐야 소용없다. 여자의 의견이 궁금했다. 잘하는 남자는 어떤 남자일까? 솔직하기로는 서울에서 20위 안에 들 흑석동의 김예리 씨가 의외로 이 질문에서 머뭇거렸다. “아... 말하기 너무 어려운데.” 나는 예를 들어보았다. 잘하는 남자라고 하면 거대한 성기나 강력한 허리 왕복 운동 같은 걸 떠올리기 쉽다. 김예리 씨는 이런 예시를 듣자 고약한 술주정을 보는 것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아니야, 그런 건 아니에요. 방금 말한 건 100점 만점에 60점 이상이면 합격이랑 비슷한 거야. 70점인지 87점인지 93점인지는 큰 상관이 없어요.”


질문을 바꿔보았다. 잘 못하는 남자는 어떤 남자일까? “그건 말할 수 있어.” 김예리 씨의 표정이 밝아졌다. “흐름을 끊는 남자. 더 해야 할 때 그만하거나 무조건 계속하는 남자.” 여자인 김예리 씨도 남자와 비슷한 말을 했다. “말하다 보니 알겠네요. 결국 잘하는 남자는 흐름을 읽는 남자예요. 상대방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알아야 해. 자기 자신과 상대방의 쾌감 포물선 그래프를 맞출 줄 아는 남자. 상대의 좌표를 읽고 상대방의 쾌감 기울기를 익히는 사람이지.”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스스로의 표현에 만족한 것 같았다. “아, 이과 가길 잘했어.”


더 실질적인 조언을 듣고 싶었다. 마침 강성은 씨가 기술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멀티태스킹이 되는 남자를 잘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사랑을 나누다 전화를 받는 일 같은? “아니, 손과 입을 동시에 잘 쓰는 남자. 그런 남자랑 하면 마치 두 명의 남자랑 동시에 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신체 기관을 동시에 쓰려면 뛰어난 드러머처럼 재능과 연습이 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신체적 기술이 전부는 아니다. 강성은 씨는 중요한 걸 지적했다. “자기 감정을 충실히 느끼고 표현하는 것도 중요해요. 멀티태스킹이 기술 점수라면 이건 예술 점수.” 오늘 이야기를 들려준 모든 사람의 의견이 이 한 점으로 모인다. 기술과 예술이 함께 필요하다. 상대가 좋아하는 걸 찾아내 그걸 해주는(그동안 나는 꾹 참는) 등의 기술은 필요하다. 동시에 내 감정을 표현하고 상대의 감정을 끌어올리는 감정적 요소도 중요하다. 나와 남을 두루 살피며 함께 가장 즐거운 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적어두니 대선 공약 느낌이 나는 것도 같고, 좀 이상하지만 이게 사실이다.


그 즐거움을 잘 찾은 사람에겐 이런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잘하는 사람은 나를 깊이 잠들게 하는 사람. 잘하는 남자 친구와 밤을 보내면 끝나자마자 완전히 잠들어요. 그러면 다음 날에도 상쾌하게 일어나요. 잘 못하는 남자 친구와는 하고 나도 별로 졸리지 않았어요. 그러면 아무래도 답답했죠.” 최진민 씨의 말이다.


잘한다는 것은 결국 잘 맞는다는 의미인 것 같다. 하나 더. 신체적인 조건과 쾌감의 포물선만큼 마음이 잘 맞는 것도 중요하다. 참 잘했던 전 여자 친구와 왜 헤어졌는지 권헌준 씨에게 물었다. 답은 짧았다. “그거 빼고 다 안 맞았어.”




에스콰이어에서 이런 글도 만듭니다. 섹스 칼럼은 만들 때마다 아슬아슬한 기분입니다. 제가 틀렸거나 읽으시며 불편하신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그런 조언이 꼭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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