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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Nov 03. 2017

덜 설 때

피할 수 없다


‘그날 나는 서른이 되었다.' <위대한 개츠비>가 절정으로 향할 때 주인공 닉 캐러웨이가 깨닫는다. 이어지는 묘사가 특히 멋지다. “서른 살-고독의 십 년을 약속하는 나이, 독신자의 수가 줄어드는 나이, 야심이라는 서류 가방이 얇아지고 머리숱이 점점 줄어드는 나이.”


"서른-세 번 싸다가 두 번 싸는 나이라고 할 수 있지." 만약 그 자리에 권헌준 씨가 있었다면 표현이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덜 서잖아. 사정하고 나서 충전되는 시간도 좀 더 오래 걸리고. 그게 신경 쓰여서 한 번밖에 못 싸면 한 번은 손으로 끝까지 가게 해주기도 했어. 전 여자 친구랑은." 권헌준 씨는 여전히 디스커버리 스포츠를 타고 전국의 여자를 만나러 다닌다. 스쳐가는 여자들에게도 헌신적일까? "아니. 사귀는 여자가 아니면 한 번 싸든 조루하든 크게 신경 안 써. 다시 안 볼 거잖아. 나를 잘 서지도 않는 조루로 기억하면 어떡하냐고? 그건 어쩔 수 없지 뭐." 권헌준 씨는 어금니까지 보일 정도로 웃었지만 조금은 쓸쓸해 보였다. 내 기분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덜 서지." 회현역에서 점심시간에 만난 김상훈 씨도 말했다. "단순히 안 서는 걸 넘어서, 이제 그냥 생각이 잘 안 나. 포르노도 안 찾아보고, 아내 몰래 자위도 안 해. 부부 관계가 나쁜 것도 아니야. 한 달에 한 번? 그거면 되는 것 같아." 왜일까. 바다를 건너고 산맥을 넘어 호된 비를 뿌리던 짙은 구름 같은 성욕은 어디로 간 걸까.


"일이 많잖아. 피곤해. 육체적인 노화라기보단 정신적인 이유가 더 큰 것 같아. 나는 첫애가 태어나니까 성욕이 좀 약해지더라고. 그런데 사실 술을 마시면 다시 성욕이 돌아와." 12년 전의 김상훈 씨는 술을 안 마시는 대신 힘 좋은 성욕이 있었다. 김상훈 씨는 옛날의 자신과 그때의 성욕을 회상하려 노력해봤지만 잘 생각나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가 과거를 떠올릴 때 으레 그렇듯.


남자의 목표는 결국 하나다. 여자에게 잘 보이기. 돈, 명예, 영웅적 업적, 멋진 옷차림, 인생의 걸작, 여유로운 태도, 좋은 취향, 세상을 바꿀 만큼 큰 성공, 다 여자에게 잘 보이려는 수단이다. 나는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당신은 아직 자신을 직시할 용기가 없을 뿐이다. 덜 서는 건 그래서 남자에게 치명적이다. 여자를 만족시켜야 여자에게 잘 보일 수 있는데 세 번 싸던 걸 두 번 싸면 여자들이 나를 낮추어 볼 것 같다. 여자에게 잘 보일 수 있는 능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건 남자의 정신에 존재론적 위기감을 불러일으킨다. 막상 여자들 생각은 어떤지 묻지도 못하고.


"그냥, 재미있어요." 오래 연애한 남자 친구가 있는 정수지 씨가 말했다. 남자들이 오해할 말이다. 화를 낼지도 모른다. 약해진 잇몸 속 어금니처럼 남자의 존재가 흔들리는 현장이 재미있다니? 그녀는 말을 이었다. "안 서는 거 별거 아니에요. 어때, 좀 있다 하면 되지. 그런데 가끔 덜 서거나 안 서게 되면 남자들은 엄청 당황하고 전전긍긍해요. 그런 걸 보는 게 재미있어요." 듣고 보니 서툰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장난을 걸 때의 모습과 비슷하다. 남자들이 여자에게 농담을 하는 이유는 여자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니까.


최근에 호감을 갖고 만나기 시작했는데 남자가 안 서거나 덜 서면 어떨까.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신선미 씨가 맥주를 마시며 말했다. "나랑 서로 호감이 있는 걸 확인해서 잠자리를 갖게 됐는데 잘 안 되던 남자가 있었어요. 다른 데서 원인을 찾으려 했어요. 술을 마셔서 그럴 거야. 아니면 오늘은 피곤한 거겠지.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싫어서 다른 이유를 생각해낸 것 같아요." 신선미 씨도 덜 서는 남자에게 크게 신경 안 쓴다고 했다. "사람이 섹스보다 먼저인 것 같아요 저는. 남자가 안 서면 자위하면 되지." 세상엔 여러 의견이 있다. "기껏 날 잡아서 하려고 한 명 꼬셨는데 안 서면 똥 밟은 거지." 옆에 있던 강진선 씨가 말했다. 그러게. 사람이 어디서든 어느 정도 쓸모는 있어야 한다.


모든 남자는 권헌준 씨 같은 기분을 느낀다. 10대에는 하룻밤에 다섯 번씩 자위를 한다. 20대쯤 첫 여자 친구가 생기면 대실 시간에도 네 번씩 사정한다. 사람의 기억은 보통 자신의 전성기에 멈춰 있다. 누구나 자기가 늙었다는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한다. 입대하고 제대하고 나이가 들고 취업하고 4대 보험에 들고 결혼하고 주택과 대출과 친자가 생겨도 남자는 자신을 소년이라고 생각한다. 덜 선다는 건 남자의 착각 위에 울리는 종소리다. 슈프림을 사고 유튜브를 보고 야구 모자를 거꾸로 쓴다 해도 너는 이제 소년이 아니라 신체적으로 노화하는 남자일 뿐이라는 신호다.


세상에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 권헌준 씨는 줄어든 사정 횟수를 노련한 테크닉으로 만회한다. "전에는 무조건 세게 했는데 이제는 다르지." 김상훈 씨의 삶도 여전히 즐겁다. "아들이랑 캠핑 다니고, 친구들이랑 가끔 술 마시고, 이런 게 재미있더라." 오늘의 여자들도 마지막 말은 다 똑같았다. "덜 서는 거 별로 안 중요해요. 좋아하는 사람이잖아요." 잡지 <에스콰이어>와 섹스 칼럼의 관계와도 비슷하다. 이 잡지에 섹스 칼럼은 한 페이지뿐이고 이어지는 페이지와 우리의 삶에는 다른 의미와 재미가 많이 있다. 결국 “우리는 나아간다, 끊임없이 과거로 빨려들어가는, 물길을 거슬러 배를 타고.”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이다.





재미로 보는 섹스 보양식 3

캐비아

도스토옙스키는 속기사 안나 스니트키나와 재혼했다. 그녀는 캐비아를 구해 와 남편이 <죄와 벌>의 한 챕터를 완성할 때마다 그 보상으로 캐비아를 주고 섹스를 허락했다고 한다. 캐비아에 최음 효과가 있다고 여겨졌다. 얼마나 마음이 급했을까.


부추

부추는 불교에서 금하는 다섯 가지 채소인 오신채 중 하나다. <능엄경>은 오신채를 두고 ‘익혀 먹으면 음란한 마음이 생긴다’고 했다. 거의 불교 인증 정력식이라고 볼 수 있다. 나머지 오신채는 달래, 파, 마늘, 무릇이다.


정력식을 따지는 건 만국 공통의 관심이다. 굴은 서양의 정력 음식에서 늘 상위권에 있다. 테스토스테론 부스터라는 부담스러운 별명까지 있다. 서양에서 꼽는 다른 정력 음식으로는 아몬드, 생강, 루콜라, 셀러리 등이 있다.


 


에스콰이어에서 이런 글도 만듭니다. 섹스 칼럼은 만들 때마다 아슬아슬한 기분입니다. 제가 틀렸거나 읽으시며 불편하신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그런 조언이 꼭 필요합니다.


일러스트는 131WATT의 이영이 그립니다. 그의 그림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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