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논픽션 명가 까치글방과 그 설립자와 책의 정신에 대해
"<바디>랑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의 표지는 엄청 친숙한데 사실 까치 출판사 책을 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어느 오후, '나의 까치 출판사 책'이라는 주제로 물었을 때 출판사 드렁큰에디터 편집자 남연정이 말했다. 요즘 '먼슬리 에세이' 시리즈로 잘 나가는 분이니 워낙 바쁠 것이다. 동시에 까치라는 출판사를 잘 모르는 분들에게도 비슷한 인상 아닐까 싶었다.
"전문서적을 꾸준히 내는 저력과, 디자인과 편집 스타일을 고수하는 뚝심과, 독특한 개성이 확고한 곳이라서요. 출판인들에게는 이런 요소로 일반적인 입지와 컬트적인 입지가 동시에 있죠." 까치 창립자 박종만의 별세 기사가 퍼진 6월 22일 비룡소 편집자 김지호가 말했다. 그는 덧붙였다.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하는 까치 책 하나쯤 있지 않겠어요?" 정말 그런가 싶어 주변의 책 관련인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가 기억에 남습니다." 정말로 주변의 출판인들은 모두 자기의 까치가 있었다. HB 프레스를 운영하는 조용범 역시 묻자마자 자신의 기억 속 까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저는 다른 일을 하다 출판에 30대 중반에 출판계에 입문했어요.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 책을 보았습니다. 제가 다닌 출판사는 디자인 책을 많이 제작해서, '지면의 표정을 어떻게 다르게 할까' 같은 이야기를 하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까치의 그 책은 띠지 앞뒤 내용이 똑같았어요.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 이렇게 할 수도 있네?' 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까치 책을 아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이야기다. 살짝 웃을지도 모른다.
까치 특유의 디자인이 확실히 있다. 디자인이라기보다는 조판 원칙 같은 말로 불러야 할 것 같다. 모든 게 가운데 정렬이다. '그림이 없을 수는 없으니까' 느낌으로 들어간 표지의 그림이 있다. 대부분 사진 혹은 세계의 명화다. 이것도 가운데 정렬. 맨 위에 큰 글씨로 제목이 있다. 폰트는 거의 명조체 혹은 명조풍, 제목 폰트가 늘 가장 크다. 제목 아래 작가 이름, 작가 이름 옆이나 아래에 번역가 이름이 있다. 이정도만 알면 누구나 까치풍 표지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원칙이다.
출판인들은 까치의 까치풍 표지가 촌스럽다고도 생각한 것 같지만 나는 이게 싫지 않았다. 까르띠에 탱크나 롤렉스 오이스터 퍼페추얼, 컨버스 척 테일러나 펭귄클래식의 표지 레이아웃처럼 상징적인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루이비통의 모노그램 LV 로고는 기분 따라 촌스러워 보일 수는 있어도 무시할 수는 없는 현대 디자인의 상징적인 요소다. 내게는 까치 표지가 그랬다.
"그렇게 고집스러운 면이 제게는 까치의 이미지였습니다." 조용범의 말도 비슷하게 이어졌다. "까치 책은 두껍고, 요즘 책과 형태가 달라요. 여백도 별로 없고요. 좋은 책을 많이 내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확실히 있었습니다." 그건 근거 없고 막연한 이미지가 아니다. 실제로 까치는 1977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500종 이상의 책을 발표했다. 책이 얇지도 않다. 여백이 별로 없다는 조용범의 기억 역시 단순한 느낌이 아니다. "쪽마다 한 글자라도 더 담아 부피를 줄이기 위해 신국판보다 좌우로 3㎜를 키운 판형을 썼다" 조선일보에 실린 까치 대표 박후영의 말이다. 박후영은 고인의 자제다. '쪽마다 한 글자라도 더 담아' 같은 생각을 하는 출판사는 은근히 별로 없다.
"신문에 많이 나오는 책을 내는 출판사. 얕볼 수 없는 책을 쓱쓱 내는 출판사 느낌이에요." 출판사 어떤책 대표 김정옥은 이렇게 까치를 기억했다. "저는 박종만 대표가 돌아가신 후의 일간지 기자들 반응도 인상적이었어요. 고인과 30세쯤 차이가 날 법한 3-40대 기자들이 고인과의 추억을 이야기하더라고요. 연세가 많아도 요즘 사람들과 꾸준히 소통했다는 뜻이니까요. 저도 출판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업에 종사하는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으면 좋을까' 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김정옥의 말처럼 매일경제 김슬기 기자, 조선일보 곽아람 기자 등이 SNS를 통해 고인을 추모했다.
김슬기 기자는 트위터에 '그분을 뵈면서 가장 놀라운 점은 <아사히신문>과 <뉴욕 타임스> 서평과 국내 신문 서평을 국내 출판인 중에 가장 열독하신다는 점'이라고 적었다. 그런 사람이었으니 쿠마 켄고 등 일본의 건축가 7명이 아사히신문에 연재한 <세계의 불가사의한 건축 이야기>같은 책도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초판만 찍고 절판되었지만 중고 서점에서 정가의 두 배 이상 가격에 거래된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사 뒀는데 영원히 펼쳐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웨일북에서 <90년생이 온다>를 편집한 김남혁 에디터에게도 좋아하는 까치 책이 있었다. 사두고 펼쳐보지 않는 책, 이 역시 까치 책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모두 뭔가 알고 싶고 더 똑똑해지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의 모든 일이 그렇듯 좋은 건 취하기 어렵고 읽기 힘들고 이해하기 쉽지 않다. 책이 모든 답은 한 번에 주지는 못하지만 그럴 때의 좋은 책은 좋은 음악의 악보처럼 분명히 뭔가를 읽어 나가는 데 도움을 준다. 까치는 그런 책을 만들었다. "저는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시간>을 좋아합니다." 김남혁이 덧붙였다. 나는 그가 언젠가 말했던 "어려운데 잘 팔리는 책을 만들고 싶어요." 라는 말을 기억한다. 까치는 그런 책을 계속 만들어 온 회사다.
"어떤 면에서 까치의 책이 제 '청춘의 문장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동아일보 이서현 기자는 까치의 책에 의외의 감상을 남겼다. "대학교 1, 2학년 교양 수업 때 까치의 책을 많이 읽어야 했어요. 에릭 홉스봄의 <극단의 시대>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그레이엄 핸콕의 <신의 지문> 같은 책들을 '읽힘 당했'습니다. 우리가 정규교육에서 배운 지식들은 아무래도 파편화되잖아요. 그런 면에서 제가 공부한 인문대는 저를 무지렁이에서 사람으로 만들어 준 곳이었습니다. 브로델이나 홉스봄을 몰라도 사는 데 지장은 없지만 교과서 발췌본이나 손바닥만한 수능 지문이 아닌 원전을 완독하는 기쁨과 괴로움을 배웠어요. 그 수많은 리포트와 카페인과 밤샘의 시간에 까치의 책이 있었습니다." 하긴 어떻게 감성의 문장만 청춘의 문장일까. 어느 시대가 한 문장으로 정리된 구절이 누군가의 청춘에 꽂혀 평생 갈 수도 있을 텐데.
까치는 한국의 출판사다. 창립자 박종만은 1975년부터 1977년까지 잡지 <뿌리깊은나무> 편집부에서 일하고 1977년 까치를 설립했다. 첫 책은 차기벽의 <한국 민족주의의 이념과 실태>, 많이 팔린 책은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나 빌 브라이슨의 책들이다. 박종만은 지난 6월 14일 별세했다. 유족은 고인의 뜻에 따라 장례를 다 치른 후 언론에 소식을 전했다. 한국의 모든 주요 언론사들이 부고 기사를 냈다. 약속하지 않았을 텐데 모든 기사의 주제가 똑같았다. 좋은 책을 많이 내 한국의 지적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말이었다. 글을 다뤄온 자가 글을 다루는 자에게 인정받는 건 명예의 문제다. 출판인에게 ‘좋은 책을 많이 냈다’는 글로 남는 것만큼 명예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박종만은 편집자 출신 출판인이다. 잡지 편집자 출신이다. (중략) ‘글 다루기’ 하나만큼은 제대로 익혔다.' 박종만의 부고가 전해진 며칠 후 6월 27일 중앙선데이에 <뿌리깊은나무> 전 편집장 김형윤이 남긴 글이다. "<포크를 생각하다>를 쟁여두고 기사를 쓸 때 가끔 들춰봤어요. 까치 책은 믿음직한 자료라는 신뢰가 있어요. 희소성 있는 자료이기도 하고요." 잡지 에디터 출신 소설가 강보라의 말이다. 잡지인이 만든 출판사에서 나온 글이 다른 잡지인의 눈에 띄어 새로운 시대의 독자에게 끊임없이 전해진다. 불만과 불합리로 가득해 보이는 세상이어도 누군가의 손과 눈을 거쳐 좋은 것들이 조용히 이어진다. 앞으로도 까치가 계속 좋은 책을 계속 내주시길 바란다.
2020년 <에스콰이어> 에 실린 글입니다. 2020년에 제가 기고한 원고 중에는 혼자 중요하다고 꼽는 원고가 몇 있는데, 이 원고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이 원고 덕분에 아주 영광스러운 일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