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8.
우리는 효창공원역부터 마포구 가좌역까지 6.3km 거리를 걷는다. 하지만 경의선숲길의 가장 처음으로 시계를 되돌려보면 우리의 공간적 시야는 서울을 뛰쳐나가 압록강을 넘어 종착역 평안북도 신의주로 확장한다. 이 선형의 공원이 실은 499km의 경의선 철도의 작은 조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905년 4월 28일을 걸어간다. 용산에서 출발해 신의주로 첫번째 연락 운전을 하는 일본의 전차가 지나간다. 현재 경의선숲길의 시작인 효창공원역 구석에 파킹된 파란색 철도칸 주변으로 일본식 목조주택이 생겨난다. 우리말보다 일본말이 더 자주 들려오고 때마침 도착한 철마가 지나가는 굉음에 말소리들은 삼켜버린다.
다음으로 1950년 7월 16일로 걸어간다. 멀리서 달려오는 쇠의 마찰음 대신 하늘에서 공기를 가르는 낙하음과 함께 폭탄이 우수수 떨어진다. 철도의 진동은 열차대신 폭탄을 예시한다. 미 공군의 폭격은 서울을 재탈환하고자 서울의 폐허로 만들었다. 일명 '용산 대폭격'은 지금의 경의선숲길을 관통하는 원효로, 마포구 공덕동과 도화동 일대까지 파괴버렸다.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용산에서 마포로 갈수록 덜 으스러졌을까. 지금과 같이 길을 따라 집과 가게들이 비죽비죽 자리했을까. 그 해 여름, 불길한 소리와 진동과 함께 모두 불타고 비명지르고 결국 잿빛의 침묵만이 남았을까.
경의선숲길의 철도가 완전히 자취를 감춘 건 후일담이다. <그남자의 집>에서 박완서가 묘사한 50년대 서울의 '초인적인 생활력'은 '전쟁이 앗아간 인명손실을 단숨이 복구시키고 말 것 같은 베이비붐, 악착같은 생존 경쟁의 터전인 동대문과 남대문시장의 번영, 하룻밤 사이에 지을 수 있는 하꼬방 집들...'과 함께 경의선철도를 원상복구시켰다.*** 한반도의 남북을 잇던 경의선철도는 철조망으로 가로막히고 DMZ를 넘어 한 걸음도 허용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닿을 수 없는 구간은 아직 오지 않은 시공간의 경의선숲길을 상상하게 한다.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사이 방치된 철로에 피어난 '초인적인 생명력'은 지금의 즈위트게렌데 자연공원(Sudgelande Nature Park)을 만들었다. 나무사이로 햇빛이 길과 산책자의 온몸을 얼룩덜룩 물들이고 기찻길 사이로 자작나무의 검은 눈이 두둥실 떠올랐던**** 4년 전 8월의 그 곳에서의 걸음을 재료 삼아 상상 속 DMZ의 경의선숲길을 걸어본다. 한국전쟁 후 DMZ의 존재들이 줄곧 걸어왔을, 하지만 내게는 도래하지 않은 그 곳은 오래된 미래의 경의선숲길이다.
다시 과거로 돌아와 2014년 12월 27일을 걷는다. 그날부로 용산역과 가좌역 사이 경의선은 수도권 전철 노선으로 운행되고 지하화가 완료되었다. 지상의 폐철도 위에는 숲이 생겨나고 있었다. 철길과 철마가 가로막던 도시가 시민들의 걸음으로 숨통이 트인다. 2021년 11월 8일, 오늘의 경의선숲길을 걷는다. 한두 층 정도의 눈높이에 맞는 가게들을 곁에 두고 길을 걷는다. 효창공원역 촌스러운 빨간 외관의 용호야채곱창을 지나, 공덕역 부근에서 아파트와 빌딩에 숲길은 잠깐 사라진다. 2014년에 첫 번째로 생겨난 경의선숲길의 조각인 벚나무길이 산책자를 감싸안고, 편한 차림의 주민들이 스쳐가다 연트럴파크에서는 멋을 낸 사람들이 비가 오는데도 시끌벅적하게 길거리를 채운다. 우리도 연남동에서 슬쩍 빠져 화덕의 훈훈함이 가득한 피잣집으로 들어선다.
경의선숲길에서 우리는 물리적인 연속선뿐 아니라 시간의 연속선상을 걸을 수 있다. 지금, 바로, 여기는 앞으로 뒤로 팽창하고 우리는 만보기에 기록될 수 없는 걸음을 걷는다. 499km의 최초의 경의선철로와 숲이 된 지금의 작은 조각, 그 길은 아픈 역사와 극복의 역사 그리고 보통날들의 역사가 무수한 걸음과 함께 쓰여지고 있다. 지금이 아닌 혹은 여기가 아닌 경의선숲길에서 만보를 걷는다면 어떨까. 우리는 어쩌면 폭파 전 막차를 탄 피난민일 수도 있고, 경의선 지하화 전 열차소리에 노이로제에 걸린 인근 주민일 수도 있다. 그 길을 걷는 우리는 누구였고 또 누가 될 수 있을까. 지금 경의선숲길을 걷는 우리는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