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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영 Aug 18. 2023

학부모회 규정보다 중요한 것

교육주체로서 학부모가 갖춰야 할 민주적 소통의 문화

규정은 학부모회 갈등의 원인인가 결과인가


어떤 단체나 모임에서도 갈등은 일어날 수 있다. 학부모회라고 예외는 아니다. 학부모회 활동에 참여하는 학부모들의 사이가 늘 좋을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학부모회 운영 과정에서 생긴 감정적 문제가 큰 갈등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경선을 통해 학부모회 임원이 되기도 하므로 경선 과정에서 생긴 갈등이 학부모회 운영 과정에서 증폭되기도 한다. 최악은 학부모간 갈등을 해결해 달라고 학교에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학부모간 문제가 학교 문제로 확대되어 학교 선생님들을 힘들게 하고 학교운영도 어려워진다.


이런 갈등은 표면적으로 학부모회가 규정대로 운영되었는지를 문제 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학부모회가 조례로 제정되고 학교마다 규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학부모회 임원들이 그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학부모회를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과거 운영 경험이나, 전임 임원으로부터 인수인계받은 내용을 토대로 하거나 또는 학부모회 담당교사가 하라는 대로 학부모회를 운영하게 된다. 그래서 규정대로 하지 않은 것만 가지고 학부모회 임원 활동을 문제 삼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아무리 열심히 학부모회를 운영하고 활동한다고 하더라도 학부모회 규정을 모두 지키며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학부모회를 둘러싸고 학부모들 간 갈등이 발생하면 학부모회 조례와 규정에 위반해 운영했다는 것을 근거로 학부모회 임원들을 탄핵하거나 해임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학부모회를 잘 모르는 학부모뿐만 아니라 열심히 활동하는 학부모도 이런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규정을 지키지 않고 독단적으로 운영해서 진짜 문제가 되는 경우에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학부모회 운영과 무관한 사안으로 촉발된 갈등이 학부모회 규정 위반 여부로 옮겨지는 경우가 많다.


갈등이 생겼을 때 법대로 하는 것이 명쾌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기도 한다. 규정의 엄격한 적용으로 어느 한 사건을 종결할 순 있어도 갈등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법을 적용해 사건이 해결됐다고 해서 갈등이 끝난 것은 아니며 때로는 새로운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학부모회 규정대로 하라는 의미


학부모회 규정은 학부모회 운영을 규율하는 근거다. 그래서 학부모회는 규정에 근거해 운영해야 한다. 그런데 규정을 너무 세부적으로 정하면 학부모회를 유연하게 운영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너무 포괄적이고 추상적으로 정하면 운영자가 누구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고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기준이 모호해진다.


따라서 학부모회 규정은 정할 때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지만 해석할 때도 운영의 묘를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규정을 해석할 때는 학부모회 임원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적용하지 말고 학년대표나 학급대표 등이 참여하는 대의원회에서 협의하고 해석 결과를 공유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규정을 준수하면서도 운영의 민주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학부모회 운영의 책임을 나눌 수 있다. 학부모회 규정을 총회에서 정하는 것은 학부모회 운영에 대해 학부모 전체의 의견을 수렴하고 합의된 의견대로 활동하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규정보다 중요한 것-민주적 소통과 공감


한편 학부모간 갈등의 원인이 학부모회 규정때문인지 관계된 학부모 모두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이론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은 "참된 대화는 둘 이상의 사람들이 서로 자신의 확실성을 기꺼이 보류하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가진 생각이 맞는 것인지 다시 한번 점검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 소통이 어려울 때는 결론을 유보하고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먼저 시도해야 한다.


학부모회 규정을 제대로 지켰는지가 사건의 본질이 아니라면 우선 사건의 본질에 다가가려 하고 직시하고자 해야 한다. 만약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시간을 갖고 기다리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학부모회 규정이 제대로 지켜졌는가를 따져볼 때도 학부모 개인 간의 개별적 다툼으로 방관하지 말고, 집단적 논의를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물론 집단적 논의에 앞서 사안의 당사자들과 논의에 참여하는 사람 모두가 논의 결과를 수용하겠다는 원칙을 세워야 하겠지만 말이다.


당장 눈앞에 갈등이 없다고 해서 영원히 갈등이 없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소통 문화도 하루아침에 갑자기 이뤄지지 않는다. 따라서 일상에서부터 소통과 토론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문화는 갈등을 해결하는데도 도움이 되지만, 갈등을 예방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손쉽게 찾을 수 있는 민주적 소통과 토론 교육프로그램들도 많이 나와 있다. 학부모회에서는 이런 교육프로그램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학부모들이 일상에서부터 민주적 시민 의식과 토론 문화를 만들어가도록 힘써야 한다. 이와 같은 소통과 공감의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학부모회를 둘러싼 갈등도 많이 줄어들 것이며, 학교도 학부모회를 신뢰하며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개별화'된 학부모의 '자녀 교육권'에 국한되지 않고 학부모회라는 집단을 통해서 '집단적 교육 참여권'을 행사하려면 학부모들 스스로 자율과 자치의 의미가 무엇인지 직접 경험을 통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학부모회는 조례와 규정이라는 제도에 기반해 운영되지만 실제 운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학부모 상호 간의 민주적 소통과 공감의 문화이다. 학부모가 교육주체로 바로서고 자율적으로 자치활동을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이다. 학부모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거나 참여하려는 학부모들은 이 점을 꼭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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