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에 참여하던 안 하던 학부모는 죄가 없다, 필요한 건 운용의 묘(妙)
매일 오전 초등학교 앞을 지나다 보면 녹색 조끼나 제복을 입고 교통봉사를 하는 학부모를 흔히 보게 된다.
학교 앞 교통봉사는 학부모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봉사라고 인식이 자리 잡힌 지는 오래되었다. 녹색어머니회가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니 학부모 교통봉사는 70년이 넘는 활동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학부모 교통봉사는 학부모의 선의와 지자체, 경찰의 협조하에 활성화되었고 대표적인 학부모 봉사 활동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교통봉사는 말 그대로 봉사이므로 자발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왜 학부모 교통봉사는 학부모 전체가 하는 문화가 되었을까?
학생들이 등하교하는 학기 중에 교통안전은 다른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일이다. 그래서 매일 등하교 교통안전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지자체나 경찰의 협조로 교통안전 지도가 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학교 앞 교통안전 지도는 자녀를 등교시키는 학부모들에게 맡겨져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복잡한 도로를 건너 등하교를 시켜야 하는 학부모들은 불안하다. 그래서 한편으로 학부모들은 차량으로 등하교를 지원하는 학원에 울며 겨자 먹기로 아이들을 등록하게 된다. (사교육은 학교교육의 빈 공간을 쉽게 채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발적인 교통봉사를 통해서 학생들의 안전을 지키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는 학부모라 할지라도 매일 교통봉사를 하기는 어렵다. 몇몇의 학부모로만 이루어진 봉사단으로는 한계가 있다. 자녀가 졸업하고 나면 그다음 교통봉사를 할 사람을 모집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학교도 인적, 재정적 뒷받침을 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을 위한 일이니 전체 학부모가 나서서 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과거 전체주의 문화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학부모회 조례 제정 전에는 보통의 경우 녹색어머니회 대표가 전체 학부모회 대표를 겸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가 있었으므로 전체 학부모의 교통봉사 참여 독려는 자연스럽게 문화가 되었을 거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아무튼 자녀의 안전을 위한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교통봉사에 참여하면서 학교 운영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자녀교육에 더욱 관심을 갖는 선순환도 생겼다. 학부모 교통봉사는 비록 봉사자로서 참여하는 것이긴 했지만 학부모 학교참여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낸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또 학부모회가 존재하지 않는 기간 동안 학교 운영의 어려움을 함께 이해하고 전체 학부모의 의견을 모아 협력하는 문화를 만들어 감으로써 협력적 교육공동체 문화를 형성하는데도 일정정도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몇십 년에 걸쳐 형성된 문화는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직까지도 상당수의 학교에서 학교설명회와 학부모회 총회에 참여한 학부모들이 담임교사를 만나면 가장 먼저 협조 요청받는 것이 교통봉사다.
하지만 학부모 교통봉사가 활성화되면서 문제도 여럿 생겼다. 전체 학부모가 교통봉사에 참여하는 문화가 고착화되다 보니 때로는 이것이 학부모 사이의 갈등으로 번지기도 했다. 맞벌이로 인해 시간내기 어려운 학부모들은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한다면서 학부모가 왜 교통봉사를 해야 하는지, 참여가 불가능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왜 모두의 참여를 강제하는지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다. 불참에 따른 불이익은 없다고 학교에서 설명해도 학부모 입장에서는 같은 반 학부모들에게 찍힐 수 있고, 그래서 아이에게도 안 좋은 영향 줄 수 있다는 노파심에 불안해한다.
반대로 열심히 참여하는 학부모 입장에서는 참여하지는 않으면서 불만만 토로하는 학부모가 얄밉다. 아이들의 안전한 등하교를 위해 불참하는 학부모를 대신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수시로 교통봉사를 나가는데도 불구하고 못 오는 학부모들이 미안해하긴커녕 학부모가 교통봉사를 왜 해야 하냐고 따지면 속상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교통봉사에 대한 불만은 교사들도 많다.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봉사하는데 교사가 왜 지원을 해야 하냐는 것이다. 담임교사는 매일 교통봉사 당번 학부모에게 연락하여 참석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전체 교통봉사 담당교사는 봉사 실적을 등록해야 하는 등 교통봉사로 인한 일을 직간접적으로 맡게 된다. 이처럼 수업과 학생생활지도 외의 행정을 맡게 되는 것에 대해 교사들은 문제제기한다. 이것은 교사의 일이 아니라고.
교통봉사는 누군가 했으면 하는 일이고, 또 해야 할 만한 일이라면 그에 따른 행정은 누구 몫이 되어야 하는가.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다. 교사의 일이 아니라면 학부모의 일인가? 교육행정직의 일인가? 교육공무직원의 일인가? 관리자의 일인가? 지자체의 일인가? 교통봉사나 봉사자 실적 등록은 법으로 담당이 정해진 일이 아니기에 누구도 내 일이 아니라고 하면 결국 가장 힘이 약한 대상에게 일이 가게 될 것이다. 모두가 그것을 원하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학교마다 상황이 다르므로 아무도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럼에도 교육당국과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이 조금 더 필요하다는 데는 의견이 모아진다. 그래서 학교에서 지자체에 협조를 요청해 실버봉사단 등을 통한 교사와 학부모의 교통봉사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있다. 또 "학교 교통안전에 관한 조례", "교통안전 조례", "녹색어머니회 조례" 등 다양한 제도를 통해 학교 앞 교통안전 대책 수립과 교통안전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에 대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이 늘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학교 앞 교통안전을 위해 근본적인 대책도 필요하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학교를 지을 때 교통안전 대책에 대한 고려는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 지어진 학교는 그렇다 치더라도 새롭게 신설되는 학교조차 학교 앞 교통 혼잡 문제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신도시 개발이나, 재개발을 통해 대규모 주택 단지가 들어서는 경우에도 학교 주변 교통은 차량 운행의 편리성만 고려될 뿐 학생 등 보행자의 안전은 고려 대상이 아닌듯하다. 학교를 신설할 때 학교 내부시설 문제도 중요하지만 학교 앞 교통안전의 문제가 고려되지 않는 것 같은 안타까움이 있다. 학교를 짓는 것에만 급급했던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다.
학교를 신설할 때는 주변 통학로의 안전대책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도로를 설계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아파트 단지 내부에는 차량이 다니지 못하도록 설계하면서 학교 안팎으로는 그런 고민을 왜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는 것인가? 그런 고민들이 현실화되었다면 학교 앞에서 교통봉사를 둘러싼 학부모와 경찰, 차량 운전자 사이의 복잡 미묘한 관계는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