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시민이 되기 위한 협력이 필요하다, [괴물 부모의 탄생]
[괴물 부모의 탄생]이라는 책은 2023년 가을 교권침해 이슈가 한창일 때 출판되었다. 괴물 부모란 “주로 자녀에게 매우 권위적이면서 동시에 자녀를 과잉보호하는 부모를 일컫는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괴물 부모는 “무례하고 이해하기 힘든, 때로는 정상이 아닌 것 같은 자기 자녀 중심의 행동에는 학교와 교사, 다른 학부모와 사회에 대한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이 별로 뒤따르지 않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당시 학부모의 교권 침해 이슈는 큰 이슈였고, 교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바꾸려는 논의가 활발했었다. 하지만 교사들은 지금도 교권이 보호된다고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새 학기 시작 직후 담임교사들은 학생의 학교 생활에 지나치게 간섭하려 드는 일부 극성 학부모들로 인해 힘들다. 몇 가지만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가방이 무거우니 교실에 두고 다녀도 되냐
시간 맞춰 약 먹을 수 있도록 봐달라
수업도중 화장실 가고 싶은 거 말을 못 할 수 있으니 수업 중간에 물어봐 달라
애들 수업하는 사진 보내줄 수 있나
친했던 친구와 사소한 일로 서먹해져 헤어졌는데 새 학년에 같은 반이 되어 힘들어하니 반을 바꿔 달라
학교 끝나고 학원차 타는 곳까지 아이를 데려다 달라
반대로 평상시에는 자녀에 대해 무관심하고 방관적인 태도를 보이다가도 정작 자녀가 등교를 하지 않거나 무단 조퇴하는 등 일탈하는 모습을 보이면 학교와 담임교사를 탓하는 부모도 있다. 학교폭력 가해 학생의 학부모 중 일부는 자녀의 잘못을 뉘우치게 하고 피해자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도록 가르치기보다는 대입이 끝날 때까지 지루한 법적 공방을 벌여 자녀의 입시에 피해가 없도록 하는데 열중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개선이 되지 않고 매년 반복된다. 이런 사례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날수록 교육주체로서 학부모의 교육권을 확립하기 위해 했던 실천과 노력들은 힘을 잃게 될 수밖에 없다. 소수 학부모의 교권 침해는 공교육의 회복을 더디게 하고 교육주체들의 협력을 방해한다.
그래서 저자는 학부모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볼 것을 주문한다. 사실 많은 학부모가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의 문제에 대해 성토하지만 우리 자신도 내면의 욕망과 진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외부로 발현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녀 문제를 두고 우리는 거울 앞에 서야 한다. 나의 욕망이 세계를 부수는 욕망인지, 세계를 돌보는 욕망인지를 점검하고 내 자녀에 대한 기대와 바람으로 인해 타인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헤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한다.”
한 두 번쯤 위의 사례가 비슷한 행동을 했다고 해서 바로 괴물 부모라고 낙인찍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반복적으로 누적되고 무감각해지는 순간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괴물 부모가 될 수 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정도의 행위로 나타나느냐, 아니면 마음속의 바람으로 그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유혹을 받는다. 아무리 상식적이고 현명한 부모를 자처하더라도 떨어진 자녀의 성적 때문에 옆집 부모가 알려주는 사교육 정보에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 자녀를 핑계삼지만 내 마음속 욕망은 언제든 괴물로 돌변할 수 있다.
일부 부모들은 자녀가 잘못하거나 잘못되었을 때 그 책임을 학교 선생님이나 다른 학생에게 전가하려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부모 자신이나 자녀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그동안 쌓아온 자신만의 공든 탑이 무너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학교에서 항상 최고 대접을 받아야 하며, 내 아이의 말이나 행동은 항상 옳기 때문에 내 아이가 잘못했다면 그것은 교사나 다른 아이가 제공한 원인이 더 큰 잘못이고, 만약 내 아이에게 피해가 발생하면 그것은 교사나, 다른 아이의 책임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려고 합니다."
물론 학부모들의 잘못이 있다고 해서 비난과 혐오, 응징에만 몰두한다면 선량한 다수의 학부모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개개인의 잘못된 행동은 비판받아야 하고 법적처벌도 필요하다. 하지만 집단 전체를 비난, 혐오, 응징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잘못이 개선되고 해결되기보다는 학부모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교육 문화를 강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괴물 부모 현상에 대한 사회적 대책도 필요하고, 또 그 집단의 심리 구조에 관한 이해와 해법도 필요하다. 평범한 시민인 부모들이 자기 자녀의 문제 앞에서 괴물이 되어 가는 이유는, 필시 그 시민 개인의 탓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홍콩과 일본의 사례를 들면서 우리 사회도 공동체의 붕괴와 더불어 “저출생, 초 경쟁, 초격차, 학벌주의, 부동산 문제”가 독배를 마셔야 하는 사랑을 가진 괴물 부모를 탄생시켰다고 말한다. 따라서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괴물 부모”라는 결과만 비난하는데 몰두하며 집단 이기주의라고 비난만 한다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학부모가 문제의식을 갖고 대응방법을 모색할 것을 주문한다. 외부에서 주입하는 일회적인 이슈 환기나 일회성 학부모 교육 등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의식을 가진 학부모의 자발적 운동을 기대한다.
“일차적으로 양육을 담당하고 있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문제의식을 크게 느끼고, 이에 대응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필요하다면 학교나 교사와 적극적으로 만나면서, 내 아이뿐만 아니라 학교의 모든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양육법이 무엇인지, 학부모의 올바른 태도는 무엇인지 고민하고 공유하는 학부모 운동을 기대한다."
“학부모 운동”은 사적 참여를 극복하고 공적 참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는데 기여하는 운동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학부모 스스로 성숙한 교육 "시민"이 되기 위한 노력이 학부모들 사이에 형성되고 있다.
“민주주의는 무한정의 자유가 아니라 제한이 있는 자유, 타인의 욕망과 공존할 수 있는 만큼의 자유만 허락한다고, 그래서 성숙한 시민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항상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법으로 보장한 학부모의 교육참여라 하더라도 개인의 사적 이익을 위한 참여라면 공적 참여라 할 수 없을 것이다. 학부모가 학교운영에 관한 의견을 낼 수 있다는 것은 학부모회나 학교운영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통한 공적 참여와 의견 개진을 말하는 것이지, 학부모 개인의 사적인 개입을 모두 용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괴물 부모와 같은 사적인 교육 개입은 잘못된 학부모 교육 참여의 사례가 될 수 있다. 그런 참여는 학교 운영을 그르치고, 교사와 다른 학부모,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것은 저자가 말하는 “학부모 운동”의 활성화조차 허용하지 않으려는 경직된 학교 문화와 학부모에게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이다.
저자의 말처럼 사회 구조적 모순의 해소와 더불어 학부모 스스로 자정해 나가면서 학교, 교사와 적극 소통하고 상호 협력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때 괴물 부모는 억제될 것이다.
학부모들만의 문제로 남겨 놓아서는 안된다. 교사와 교육당국도 함께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학부모의 공적참여는 활성화하고, 사적 참여는 억제하는 평화적 압력의 문화 형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