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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는 학부모회가 필요하다

학부모에게 공적권리와 책임을 부여하라

by 오영

3월 새학기, 학교의 고민


3월의 학교는 할 일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워하고 공을 들이는게 학부모회 총회와 학교설명회다. 그만큼 학부모가 학교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에 신경을 쓴다. 학교설명회는 1년 동안의 학교운영 사항, 교육 과정, 교사 소개 등 학부모에게 안내해야 하는 사항이 많으므로 그날 행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안내가 형식적인 경우가 많아 다소 지루하게 진행된다. 그래서 학부모들도 학교설명회보다는 담임교사와의 간담회에 더 신경 쓴다.


반면 학교운영위원 선출과, 학부모회 임원선출 등을 위한 학부모회 총회는 짧은 시간 동안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학부모 참여도가 낮은 학교일수록 학부모회 임원이나 학교운영위원 대부분 무투표로 당선되지만 경선이 있는 경우에는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려 학교와 담당자들의 부담감이 크다.


그래서 학교운영위원회나 학부모회 업무는 그 업무의 과중함과 부담감에 선호되지 않는다. 학부모회 총회 준비와 절차가 복잡하다는 사실을 접하면 더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담당자들은 학부모회 총회 절차를 간소화시켜 달라거나 폐지해 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특히 교사가 담당자인 경우 교사의 업무가 아니므로 일반행정업무로 전환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동안 학부모회와 학교운영위원회는 학교 민주주의 활성화의 바로미터로 자리매김되어 왔으나 정작 학교와 담당자들에겐 그 존재의 의미에 대해 회의적인 모양새다.


한쪽에서는 학부모회와 학교운영위원회가 형식화되고 위축된 것이 학부모들의 참여 부족 때문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학교교육에 학부모 참여를 늘리는 것이 오히려 학교교육을 망치는 원인이라며 학부모의 학교 참여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학부모회 운영에 들인 업무량에 대비해 그 의미와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며 학부모회 회의론과 무용론 등 학부모 정책 폐지 분위기를 만든다.



학부모들도 할 말이 많다


학부모가 학교 참여에 소극적인 건 다양한 원인이 있다. 우선 상당수 학부모가 맞벌이이므로 학교교육에 관심 갖고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직장에 다니지 않고 시간적 여유가 있는 학부모라 하더라도 선뜻 학교교육에 참여하길 주저한다. 왜냐하면 촌지와 불법찬조금 등 학부모 학교참여에 대한 부정적 사회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2009년 이후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적극적으로 학부모의 학교 교육 참여를 독려하고 학부모 스스로 교육주체로서 역할을 하고자 문화를 바꾼 노력 덕분에 학부모의 교육참여가 활성화되는 듯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과 교권침해 이슈를 거친 후 학부모의 학교 참여 분위기는 다시 위축되었다. 학부모의 참여에 대해 현재 교육청이나 학교의 적극적인 지원이나 독려도 없다.


현실적으로 모든 교육 병폐의 원인을 학부모에게 돌리려는 학부모 혐오 속에서 학부모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백번 양보해서 학부모 학교 참여가 저조한 원인으로 학부모 스스로의 참여 의식 부족을 지적할 수 있지만 이것은 사회 구조적 문제와 이에 따른 학부모 혐오 문화에 의한 결과이지 원인은 아니다.


학부모의 소극적인 태도와 일부 학부모의 잘못을 앞세워 학부모회를 없애고 학교운영위원회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은 학부모가 참여하지 못하는 본질을 외면하고 호도하는 것이다.


학부모들은 학교 참여 권리에 따르는 책임을 부담스러워하고 학교는 학부모들의 참여를 부담스러워하는 상황이 반복되면 학부모회와 학교운영위원회의 형식화와 위축은 심해지고 학부모 혐오도 강화된다. 이제 이런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형식화된 학부모의 교육권


학부모가 자녀 교육권에 대한 천부인권적, 헌법적 권리자임을 천명하지 않더라도 학교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협조와 협력은 필수불가결하다. 이런 현실은 학교와 교사들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학부모의 학교 출입과 참여에 대한 절차를 강화하더라도 학부모의 학교 교육 참여를 원천적으로 금지할 수는 없다.


따라서 학교도 학부모의 학교 참여의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학교는 학부모의 교육 참여권은 소극적으로 행사되길 바라고 반대급부로 학부모의 자녀 교육에 대한 책임은 적극적으로 부여하고 싶어 한다.


학교에서 학부모들에게 어떤 역할에 대해 제안할 때 이름만 걸고 활동은 안 해도 된다고 하는 이유는 학부모들이 학교 참여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학부모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학교가 원하는 것은 해당 역할을 통해 학부모로부터의 권한 위임을 받는 것이지 학부모의 의견과 권리의 실질적 행사를 원하는 건 아니었다고 말이다.



학부모의 공적 참여가 교권과 학생 학습권을 보호한다


학부모의 교육 참여가 학생들의 성장과 배움에 기여한다는 연구결과는 많다. 학부모 교육참여의 선한 영향력은 그것만이 아니다. 학부모가 학교교육에 공적으로 참여하는 문화를 강화하게 되면 학부모 개개인의 사적 참여를 억제하는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학부모나 학생의 교권침해나 학습권 침해, 학교폭력 문제등은 해당 위원회의 처분으로만 온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학부모회와의 협력을 통해 교권보호, 학생 학습권 보호 등에 대해 학부모 스스로 공론과정을 거치도록 조직하고 학부모회가 앞장서서 부당한 사적 참여를 억제하는 인식개선 캠페인을 병행하는 것이 문제의 근본적 치유에 보다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현재의 학교운영위원회와 학부모회 등 학부모 참여의 공적 기구를 강화하는 것이 공교육을 회복하는데 필요하다.


사실 학부모들은 학교설명회, 학부모총회, 학부모 상담이라는 공식적인 학교일정이 정해지고 초대되어야 그나마 학교에 교육주체로 참여할 수 있다. 그런 기회가 아니면 학부모들이 학교에 가는 건 일반 민원인과 다를 바 없는 처지가 된다.


또 학교는 학부모들에게 좀 더 개방적인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학교가 학부모 참여에 개방적 분위기를 만든다는 것은 공적인 참여방법을 다양하게 만들고 실질적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학부모 개개인이 사적으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하자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학교나 교육당국은 학부모의 학교 참여에서 이를 구분하지 않는 것 같다.


이제 학교와 교육당국이 학부모의 공적인 학교교육 참여에 대한 시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물론 지금도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단위학교에서 학부모의 교육참여를 위한 사업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 사업의 규모와 수준은 전체 학부모의 규모에 비해 매우 제한적이고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그나마도 학부모를 문제집단화하고 문제 학부모에 대한 대응방법과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사업의 효과도 미미할 수밖에 없다.


학부모 참여 사업은 일선 학교에서 실질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산과 실적이 아니라 학부모가 교육에 관심을 갖도록 독려하는 분위기와 문화가 필요하다. 또 교사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토론과 협업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장기간에 걸쳐 문화로 정착될 때까지 끈기 있게 진행되어야 한다.


일부 학부모의 잘못된 행동이 뉴스가 되는 순간 물거품이 되고 힘을 잃는 사업이 아니라 확고한 교육철학과 비전으로 학부모 혐오에 맞설 수 있는 학부모 정책과 규모 있는 학부모 교육참여 사업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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