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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파리 Aug 25. 2020

06. 내가 만난 프랑스 여자

-프랑스 여인들-

왜 나이 같은 걸 세는 거야? 그건 잘못한 일, 후회하는 일을 세는 것과 똑같아. 진짜 세어야 할 건 따로 있어. 바로 내년 바캉스까지 남은 날짜야! _ 노구치 마사코의 '프랑스 여자는 80세에도 사랑을 한다' 중


내가 만난 프랑스 여자들은 존재감 자체로 자연스럽게 빛이 났다. 나이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일 년 간 다녔던 포 대학( Univérsitare de Pau)의 어학 선생님들은 모두 마담인데, 남부지방이라 그런지 대부분 구릿빛 피부를 가졌고, 쇼트커트의 헤어를 하고 멋스럽게 스카프 écharpe를 즐겨했다. 


40대나 50대임에도 가슴이 훌쩍 파인 블라우스와 색감이 강한 구두, 나이가 들었다고 평범한 옷을 입는 절제된 모습은 없었다. 화려한 장신구로 외모에 어느 정도 신경을 쓰는 듯 보이지만 절대 과하지 않는 우아함이 있다. 그리고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가 되면 늘 창문을 활짝 연 채 광합성을 즐기는 그들은 확실히 우리네 아줌마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프랑스 여자들은 지긋한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의 스타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입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바를 늘 신경 쓴다. _ 미레유 길리아노의 '프랑스 여자는 늙지 않는다' 중


어학원 마담들은 또한 상당히 정치적이고, 프랑스적이었다. 현재 남성과 동등한 지위와 위치를 위해 싸워 온 프랑스 여성들만의 진취적인 자세가 묻어있어 그런지 어떤 정치 주제를 놓고도 흔들림 없는 자신감으로 자신의 생각을 자유스럽게 나눈다.


자기들 문화의 자부심은 또 얼마나 강한 지 매주 2시간씩 우리는 프랑스 문화수업 savoir culturel을 들어야만 했는데, 그 수업 안에는 '프랑스의 자유'가 얼마나 우리네들 것과는 다른지 알리고 싶어 하는 은밀한 의도를 찾아낼 수 있었다.


한 예로, 첫 수업의 주제가 시민연대 계약 PACS(Pacte civil de solidarité)이었는데, 프랑스에서 법적으로 인정되는 결혼의 대안제도이다. 간소한 결합 방식을 원하는 커플들이 결혼 대신 많이 선택하는 제도라 배웠다. 결혼한 부부와 동등한 수준의 사회 보장제도와 복지 혜택을 누리면서 말이다. 수업 후 배운 내용을 확실하게 이해했는지 자료를 찾아보았다. 헤어지는 비율이 클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1/10도 안되더라. 


2017년 프랑스 전체 출생아 중 결혼 이외의 관계, 즉 팍스를 맺거나 동거 중인 커플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비율이 거의 59%였다.  _이승연의 '팍스, 가장 자유로운 결혼' 중


수천만 원의 혼인 비용과 결혼식과 같은 불필요한 겉치레로 시작하기보단, 사랑이란 전제하에 동거를 시작하고 그러면서 아이를 낳지만 서로에 대하여는 파트너로 대하는 그녀들은 아마도 평생 '구속'이란 걸 모르며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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