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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파리 Aug 25. 2020

05. 넉넉한 생활비

-유학생 식단-

다른 유학생들의 삶은 모르겠지만 우리 부부는 이전보다 풍요로운 지금을 누리고 있다. 어찌 보면 퍽퍽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생활비를 가지고 살지만 말이다. 


집 값 제외하고 계산해보니 핸드폰 비(20유로) 포함해서 한 달 생활비로 260유로 쓴다. 35만 원으로 먹고, 놀고, 쓰고 그리고 공부하고, 운동하고, 여행도 가는 셈이다. 일 년 계산해보니 약 400만 원 꼴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어볼 수 있어 대충 적어보자면, 우선 학교까지는 걸어 다니고 점심은 무조건 싸간다. 이발은 보통 3주에 한 번 서로 잘라주는데 정도껏 만족함. 식단은 단순해서 별거 없다. 



<점심 식단>


아침: 유산균. 커피·바게트

점심: 밀프렙. 간식으로는 요거트와 무슬리 avec 영양제·견과류 한 줌. 

저녁: 자유식




외식은 베트남 쌀국수를 한 번 사 먹은 이후로 거의 안 한 듯싶다. 당연히 밖에서 먹는 게 편하고 국물도 진하지만 그냥 집에서 해 먹는 게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왜냐하면 프랑스에 와 보면 알겠지만 일단 고기가 굉장히 싸고 육질이 기가 막혀 푹 끓이기만 하면 웬만한 육수를 다 만들 수 있기에.  


유제품류는 말할 것도 없다. 치즈·우유·버터의 나라라 그런지 눈 감고 아무거나 집어도 한국 호텔에서나 나올법한 질의 치즈와 버터를 동네 슈퍼에서 2~3유로에 구입할 수 있다.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특히 토요일 이른 아침, 차가운 아침 공기를 마시며 빵집으로 가는 길이 나에겐 가장 신나는 시간이다. 도착해보면 커피와 버터 향으로 가득한 작은 빵집 안에는 이미 동네 단골손님들로 북적거린다. 

“Bonjour(봉쥬흐)!” 서로 인사를 건넨 후, 늘 그랬듯이 난 바게트와 크루아상을 주문한다. 한국에선 바게트 앞을 지날 때마다,  '바게트가 왜 맛있을까. 길쭉하기만 하고 겉은 딱딱해서 먹으면 입 천장이 다 까질 것 같은 이 빵을 왜 팔까.'라고 생각했던 내가 이제는 갓 나온 바게트를 지니고 돌아가는 이 시간을 제일 행복해하다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Pau지역 동네 빵집>


프랑스에 살면서 우리는 빵 중독자가 되었다. 매일 빵을 고르고 샀지만 언제나 즐거움을 안겨주는 일과였다···. 나는 버섯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처럼 빵에 대해서도 눈을 뜬 기분이었다. -피터 메일의 '나의 프로방스'중-


그래도 서늘하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얼큰한 것부터 찾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라면에 김밥, 돼지 김치찌개, 짬뽕, 닭볶음탕, 마라탕, 마라 볶음, 부대찌개, 양념치킨, 탕수육, 짜장면, 떡볶이에다가 튀김 찍어먹고, 어묵 국물, 호떡. 아... 한국 가고 싶다. 


유학이고 뭐고 괜히 프랑스 남부 시골에서 어학을 해가지고 그 흔한 중국식당도 걷고 갈아타기를 반복해야만 갈 수 있다. 한인마트도 없는 이곳이 때론 야속하기까지 하다. 한국에서 보내온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베이스로 해서 -나머지 재료는 비슷한 거 찾아서 때려 넣는다- 음식을 만들면 얼추 맛이 난다. 


그렇게 한국음식을 해 먹으면 그동안 참았던 식욕이 터져버리는데, 버터에다가 살구 쨈을 듬뿍 넣어 바게트에 발라 먹고도 성에 차질 않아 결국은 누텔라까지 손을 댄다.  '그래, 뭐 있냐? 여기가 바로 한국이지···' 정체불명의 음식과 함께 가볍고 향긋한 쥐헝송 와인을 마시며 아내와 하루 동안 밀린 수다 떠는 저녁이 제일 행복하고 근사한 시간이다. 그건 누가 뭐래도 작지만 가장 큰 행복의 참된 맛이다. 만약 한식만 그리워하지 않는다면 최소한의 생활비로 최고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이곳이 바로 프랑스다. C'est la France! 


매달 수입도 없고 돈 벌 구녕이 조금도 없지만, 

난 오늘도 마신다.  


데이비드 소로가 이런 말을 했다지. 


사람의 육신은 조만간에 땅에 묻혀 퇴비로 변한다. 사람들은 흔히 필요성이라고 불리는 거짓 운명의 말을 듣고는 한 옛날 책의 말처럼 좀이 파먹고 녹이 슬며 도둑이 들어와서 훔쳐갈 재물을 모으느라고 정신이 없다. 그러나 인생이 끝날 무렵이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만 이것은 어리석은 자의 인생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피레네는 이상적인 와인 재배지다. 햇빛에 노출되어 일조량이 풍부하며 해양성 기후와 산맥을 동시에 지닌 곳이다. 앙리 4세의 와인으로 알려진 쥐헝송(jurançon )은 Pau 지역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 


소로의 대작인 《월든, 혹은 숲속의 생활(Walden,   or   Life   in   the Woods )》은 소로가 에머슨이 소유하고 있던 월든 호숫가 땅에 직접 오두막을 짓고 1845년부터 1847년까지 그곳에서 보낸 2년 2개월 2일 동안의 생활을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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