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학원 0 레벨 교실의 여섯 친구들
생테티엔의 어학원 첫 학기는 먼저 언급했다시피 '레벨 0의 시작반'이었다. 한국인은 나, 나와 함께 온 친구 예진, 그리고 한 세 명정도 더 있었지만 그 셋과는 끝까지 가까워지진 않았다. 나와 예진이는 적극적인 한국인이었다. 소심하고 말없이 조용하고 수업 참여도가 낮은 '스테레오 타입'의 한국인 이미지가 있다면, 우리는 그 범주 밖에 존재했다. 적어도 그 시기에는 그랬다. 그래서 덩달아 시끄러운 친구들과 친해졌다. 우리처럼 '일본인의 스테레오 타입'과 정반대에 있는 유카,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온 세 명의 흑인 친구인 디오니지아, 엘리잔드라, 릴리안. 우리 여섯은 매일 함께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었다. 활달하기 그지없는 이 다국적 여섯 친구는 수업 시간에도 열정적이었고 많이 배우려고 노력했다. 워낙에 서로 친해지니 수업에도 더 활발하게 참여했던 것 같다.
어학원에서 언덕을 조금 내려오면 어학원이 속해있는 대학의 캠퍼스가 나온다. 프랑스 지방 도시의 대학교는 한국처럼 캠퍼스가 존재한다. 그래서 여러 건물이 한 부지 안에 들어있고, 학교 도서관이나 학생 식당도 함께 있다. 나도 생테티엔에서 프랑스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이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조금만 큰 도시로 가도 대학들의 모습이 그렇지가 않다. 어쨌든 우리는 대학 부설 어학원 학생으로서 학생증을 발급받아 학식을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었다. 이 사실을 몰랐을 때는 매번 점심을 피자나 케밥 같은 고칼로리의 식사에 비싼 돈을 지불해야만 했다. 먹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다른 선택지를 몰랐다. 학생 식당은 매일 다른 메뉴가 두, 세 종류쯤 다양하게 제공되었다. 여러 문화와 종교가 다양하게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식사도 그런 요소들이 항상 고려가 되어 준비된다. 식사의 퀄리티도 나쁘지 않았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고 괜찮은 수준의 식사였다. 학생 식당의 존재로 우리는 매일의 메뉴 고민을 하지 않으니, 정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줄일 수 있었다. 이미 저녁 식사 메뉴를 고르는 데에도 머리가 아팠다. 대충 때운다면 그거대로 또 뭔가를 사 와야 했기 때문이다.
9시에 시작된 어학원 수업이 12시가 되어 끝나면, 우리는 함께 학생 식당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원하는 메뉴를 각자 알아서 받아오고 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식사를 하면서는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제 있었던 일, 아까 있었던 일, 옛날에 본인의 나라에서 있었던 일, 오늘 수업 중에 있었던 일, 앞으로 우리가 할 일 등 매일 말해도 매일 말할 거리가 쏟아져 나왔다. 아프리카에서 온 친구들은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그래서 무조건 프랑스어로만 말해야 했다. 그런데 우리는 가장 낮은 레벨의 같은 반 친구들의 모임이었다. 이 모든 대화가 절대 유창한 프랑스어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아마 지금 그때의 대화를 들어보면 정말 엉망진창이고 웃길 거다. 예진이와는 아직도 얘기한다. 그때 대체 우리는 뭘 어떻게 말한 거야? 걔네랑 어떻게 말이 통했던 거야? 아마 그때 우리 그룹에 프랑스인이 끼어있었다면 오히려 그 프랑스인은 우리 대화를 알아듣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비불어권 사람들이 하는 직관적이고 단순한 말들은 오히려 같은 비불어권의 사람만이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어학이 끝난 직후, 그때 습관처럼 말했을 때 프랑스 교포는 내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정말 다양한 이야기 주제가 있었지만, 늘 가장 활기차고 웃음이 넘쳤던 주제는 ‘성’에 관한 것이었다. 만국 공통의 언어가 아닌가! 게다가 내 친구들은 모두 엄청나게 개방적인 성격들이었다. 여자 여섯 이서 얘기를 하니 정말 수위가 엄청나게 높아졌다. 일본인 친구는 프랑스 남성과 사귀고 있었기 때문에 경험에 의한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더 풀어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마음 한 뜻으로 재미있게 식사하고 나면 학생식당 앞에서 인사하고 헤어진다. 그리고 다음 날 또 수업에서 만나 하루의 일부를 함께 하는 것이다.
수업과 점심식사 외에도 우리는 각자의 집에 놀러 가거나, 먹을 것을 싸들고 다 같이 소풍을 떠나기도 했다. 한국의 친구들과는 놀지 않는 방식으로도 많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음악 틀고 춤추고. 이런 건 내 친구들과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 친구들과는 뭔가 더 단순하고 즉흥적으로 놀았다. 소박한 음식을 나눠 먹고, 공원에서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웃음소리를 울리던 시간이 많았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 복잡한 계획 없이, 거창한 준비 없이도 그때는 충분히 행복했다.
특히 그때 자주 틀었던 노래 중 하나가 Khaled의 "C'est la vie"였다. “On va s’aimer (우리는 서로 사랑할 거야), on va danser (우리는 춤출 거야). Oui, c’est la vie (그래, 이게 인생이야), la la la la la.” 노래 가사 그대로, 우리는 사랑하고 춤을 췄다. 그게 바로 인생이라는 듯이. 준비된 무대도, 거창한 계획도 없었지만 그 순간의 자유로움과 단순함이 너무 좋았다.
"C’est la vie (이게 인생이야)"라는 노래처럼, 우리는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 있었다. 복잡한 생각 없이,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며 함께 웃고 춤추는 그 시간이 정말 행복했다. 겉으로 보면 아무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그 단순하고 소소한 순간들이,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남아 있는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친구들과는 2학기가 되면서 반이 나뉘어 조금 멀어졌다. 같이 대화할 시간도 적고 밥도 같이 먹게 되지 않아서 더 그랬다. 각자의 꿈이 있었기 때문에 모두 자신의 앞에 놓인 일들을 열심히 헤쳐나가고 있었다. 지금도 아직 그 친구들과는 SNS로 연결되어 있다. 두 친구, 유카와 릴리안은 프랑스인과 결혼해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예쁘게 잘 살고 있는 모양이다. 심지어 릴리안은 아직도 생테티엔에 거주하고 있다. 다른 두 친구, 디오니지아와 엘리잔드라는 학업을 지속하고 프랑스에서 직장까지 찾아 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진이와 나는 파리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 번은 엘리잔드라가 파리에 인턴을 하러 올라와서 고맙게도 연락이 왔었는데, 나도 당시에 너무 바빠 만날 수가 없었다. 생테티엔이라는 회색 도시에서의 메마른 일상에 단비 같은 존재들이었다. 매일이 똑같은 지루한 날들이었지만 그래도 그때가 프랑스어로 제일 많이 말했던 시기다. 그리고 가장 재미있게 프랑스어를 썼던 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