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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빕 Nov 02. 2024

난 이제 혼자여행은 안 해 2

불안과 긴장으로 점철된 프랑스 남부여행 - 니스와 앙티브




아날로그식 지도 여행


생테티엔에서 어학을 하면서 프랑스 도시는 어디든 기차역에서 관광용 도시 지도를 나눠준다는 사실을 배웠다. 프랑스 남부에서 여행할 도시들에 도착하자마자 한 것은 매번 기차역에서 종이 지도를 얻은 것이다. 그리고 종이 위에 쓰인 길 이름들을 확인하면서 나의 위치를 확인하고 갈 곳의 루트를 파악했다. 인터넷이 잘 안 되는 프랑스에 한 달 정도 있었다고 나도 그새 아날로그로 돌아간 것이었다. 배운 걸 그렇게까지 무조건 써먹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왜 스마트폰을 쓰면서 ‘구글'의 존재를 잊었는지 나도 정말 모를 일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 당시의 나를 이해할 수가 없다.


니스의 아쉬운 일정


세 시간 연착 후 도착한 니스는 벌써 저녁이었다. 계획한 모든 일정은 물거품이 되었다. 마침 니스에 먼저 도착해서 여행하고 있던 어학원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랑 2층짜리 시내투어 버스를 타고 구경을 했다. 니스에서 한 건 결국 그게 다였다. 다른 관광객들은 내리쬐는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일광욕을 하는 다음 날 오전에도 나는 아쉬운 마음에 해변을 조금 걷다가, 내가 세워둔 일정에 떠밀려 앙티브로 이동해야 했다.


앙티브 도착과 함께 닥친 문제들


앙티브에 도착하자마자 기차역 앞 광장에서 지도를 보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도와줄까?' 하며 다가왔다. 나는 그 사람에게 지도상의 현재 위치를 물었는데 그는 지도를 볼 줄 몰라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남자는 그냥 나한테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본인의 비즈니스가 있어서 기차를 타러 가야 하는 상황인 것 같은데도 계속 나와 대화를 하길 원했다. 물론 나도 낯선 여행지에서 낯선 남자와의 우연한 만남?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로망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 상황에 내 모습이 그런 몰골일 거라고 상상한 적은 없었다. 나는 그때 이미 기차 이동을 한 후라 피로에 절은 채 백팩을 메고 있었는데, 그렇게 다가오니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었다. 내 외모가 어떤 어필을 했다기보다는 아마 동양인 여자가 혼자라서 다가온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는 한사코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는 결국 아쉬워하며 자리를 떴다.


곧 문제가 또 생겼다. 이동 거리를 단축시키려고 일부러 기차역 앞에 호텔에 숙소를 잡아놨는데, 알고 보니 내가 내린 기차역이 아니었다. 어떻게 어떻게 지도상 현재 위치를 파악하고 나니 알게 된 사실이었다. 아니, 이 작은 마을에 기차역이 두 개나 있을 건 또 뭐람! 앙티브 역에 도착해서 받은 종이 지도를 손에 쥔 나는 대충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동쪽으로 볼록 튀어나온 지형에서 가장 끄트머리에 앙티브의 주요 일정으로 정해둔 ‘피카소 미술관’이 있었다. 좋아, 그럼 내린 기차역에서 미술관까지 걸어가서 구경하고, 거기서 숙소가 있는 기차역으로 걸어가자. 삼각형의 세 개 꼭짓점처럼 위치한 지점들을 그렇게 이어서 하루 계획을 세웠다. 


발로만 걷는 여행자


문제는, 종이 지도는 걸리는 시간을 계산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도 축척 파악을 하고 계산한 게 아니었으니, ‘몇 분 안 걸리겠지’하는 생각에 호기롭게 발로 걷기로 한 것이었다. 사실 거리가 그렇게까지 멀었던 건 아니다. 지금 찾아보니 기차역에서 피카소미술관까지 1.1km가 나온다. 하지만 이 정보를 찾아보기 전까지 내 체감으로는 3시간을 걸은 듯한 느낌이었다. 아마 전날부터 계속 이동한 피로도 있었고, 초행길을 지도에 의지한 채 계속 확인하면서 다니는 것도 피곤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미술관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마감 시간이었고,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서 작품도 보는 둥 마는 둥이었다. 미술관에서 보이는 바다뷰는 절경이었을 거다. 그럼 뭘 하나? 내 눈에 그런 게 하나도 들어오지를 않는데. 그때 보았던 피카소의 작품들은 엄청난 평가를 받는 것들도 아니었다. 그렇게 주요 코스로 파리의 루브르처럼 찾아갈 만한 곳도 아니었는데, 참 괜히 미술관에 집착을 했구나 싶었다.


앙티브의 기억


다시 나와서는 이제 숙소를 향해 또 걸어야 했다. 다시 지친 다리를 열심히 놀렸다. 교통편은 왜 이용하지 않았냐고? 모르겠다. 구글 지도도 잊은 애가 대중교통의 존재를 잊었던 건지, 아니면 찾아봤었는데 뭔가 맞지 않았는지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먹을 것도 제대로 못 챙겨 먹었다. 그냥 샌드위치 정도 사 먹고 다녔던 것 같다. 열심히 걸어 도착한 호텔은 다행히 컨디션이 좋았다. 호텔 주인 부부도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온정 있는 사람들이었다. 완전히 쓰러져서 그냥 잠만 잤다. 많은 여행객에게 앙티브의 풍경과 햇살은 굉장히 따사롭고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평온함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아마 피카소도 그래서 그 도시를 사랑했을 것이고. 지중해의 푸른 물결과 어우러진 고즈넉한 거리들은 일상에서 벗어나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었겠지. 나는 앙티브에서 내가 늪에 빠지듯 삼켜졌던 그 오래된 호텔의 침구만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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