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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isBoucher Jul 04. 2017

한옥, 왕슈, 르코르뷔지에, 그리고 지역 건축

지역 건축이란 흐름으로 본 한옥 르네상스

2017년 오늘에도 한국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에게 한옥은 일생에 한 번 정도는 그 공간을 맛보고 싶은 건축 양식입니다. 한옥의 이런 매력은 한국인들에게만 국한되어 어필되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에 오는 많은 외국인들도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그것을 체험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옛 사대문 안쪽에 남아있는 한옥 마을을 가보면 골목마다 한 집 정도는 어김없이 게스트 하우스로 단장을 해 놓았지요. 한옥의 고즈넉함과 백두대간의 기운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산사들의 템플스테이도 비슷한 맥락에서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최근에는 한옥만으로 마을을 만들어서 필지를 분양하는 등 한옥이 하나의 독립된 주거양식으로 각광받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건축 공부를 시작할 즈음부터 한옥에 관심을 갖고 유학을 하면서도 한국에 갈 때마다 고택들과 궁궐, 절들을 찾아다녔던 저 같은 건축가로서는 퍽 행복한 현상입니다.

그런데 한옥이라는 것, 한동안 춥고 비위생적이고 고루한 건축물로 여겨졌던 이 나무 건축술이 21세기에 재조명되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요? 그저 잊고 있었던 전통을 다시 찾고자 하는 현대 도시민의 바람의 또 다른 표현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한옥과 한국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이미 맺어왔고, 설령 20세기 내내 한옥을 잊으려는 노력을 각계각층에서 했어도 이 미려한 건축양식은 한국인의 삶에 너무나도 깊숙이 들어와 그 자체로 생활양식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한옥은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아파트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이 그 대안으로 자연스럽게 한옥을 다시 찾고 있는 것이지요. 이번 글에서는 한옥이 한국인의 생활양식에 어떤 방법으로 영향을 끼쳤는지와 그러한 영향이 2017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한옥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옥이란 무엇일까요? 한옥을 규정하고 정의하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한옥은 대한민국의 법률로도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 법률은 한옥이란 건축양식이 전통적으로 갖고 있는 건축 언어들을 현대에 다시 구현시킬 때 따라야 하는 법칙들을 써 놓은 것인데요, 한옥이라는 범주에 들어 건설에 있어 국가의 혜택을 받거나 할 경우를 위해 마련해 놓은 '한옥 건축 기준'입니다. 이 법률을 살펴보면 한옥의 겉모습을 이루는 주된 내용은 '목재'와 '기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재와 기와는 한옥이라는 건축양식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그려지는 두 건축 재료일 것입니다. 기둥과 보를 비롯한 다양한 나무 골재 위에 숫기와와 암기와가 결합된 기와지붕을 얹은 건물이 바로 한옥이라고 머릿속에 그려지죠. 이 법에서는 또한 에너지 효율에 관한 부분도 꽤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건축물의 구조 및 설비 등의 설계를 하는 경우에는 에너지가 합리적으로 이용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라는 부분에 오면 상당히 추상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에너지 효율에 관한 점을 한옥 건축 기준에 명시함으로써 한옥이 갖는 '추운 집'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노력을 국가가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법률은 2015년에 제정된, 현대의 건축 시장과 사회 환경 속에서 한옥을 지을 때 따라야 하는 규정을 정해 놓은 것이고 실제 한옥이란 양식은 이 법에서 규정하고 있지 않은 몇몇 요소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구들과 아궁이가 빚은 따뜻한 땅의 예술 - '온돌'일 것입니다. 기와와 목재 골조, 그것이 만들어 내는 수려한 지붕의 선과, 흙으로 빚은 벽체에 나무로 조각해 놓은 창이 만들어 내는 특유의 입면의 멋이 한옥의 외관을 대표하는 건축 언어라면, 한옥의 내부를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건축 설비는 바로 온돌입니다. 온돌은 오늘날 한국의 대부분의 주택에 여전히 바닥 난방이라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난방 방식으로 남아 있습니다.

기와지붕과 뚜렷하게 드러나는 나무 구조체, 그리고 닫힌 공간의 바닥을 이루고 있을 구들장 등이 한옥을 대표하는 건축 언어입니다. 사진 : 서울 낙선재 / ParisBoucher


외관에서는 목재와 기와지붕, 내부 설비에서는 온돌로 대표되는 한옥이라는 건축 양식은 궁궐부터 종교건축, 학교와 집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모든 건물들이 따랐던 것입니다. 서울 경복궁의 지붕이 지리산 자락에 있는 화엄사의 그것과 다른 재료로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그 모양도 전국 곳곳에서 다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규모와 공간의 구성 방식은 집집마다, 건축물의 용도에 따라 큰 차이가 있지만 외관과 건물의 설비의 측면에서는 옛 조선땅의 건축들이 전국적으로 상당한 통일성을 갖고 있었음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기와와 목재, 그리고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는 지붕의 모습은 한옥이라는 것을 하나의 양식으로 규정짓게 하기에 충분하고 이러한 양식이 전국 8도에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퍼져 있는 것입니다. 한옥에서 건축가의 역할보다 목수의 역할이 더 중요한 것도 아마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입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옥은 그 집의 주인에 의해서 구성된 공간을 목수가 구현하는 방식으로 지어졌습니다. 시대상에 따라, 그리고 각 가정에 따라 집주인이 필요로 하는 공간 구성을 목수에게 전달을 하면 이미 전국적으로 퍼져있는, 그리고 목수로서는 평생에 걸쳐 실행해 온 바뀌지 않는 기술로 집을 지어 온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현대 건축이 규정해 놓은 건축가는 그다지 할 일이 없습니다. 새로운 재료, 새로운 양식에 대한 탐구의 여지가 크지 않은 환경에서는 건축가의 역할이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반도의 인간에게서 만들어진 이러한 건축 양식은 조선시대에 태어난 것도 아니고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한반도와 옛 고구려 땅을 살아갔던 사람들이 긴 역사를 거쳐 집단지성을 통해 만들어 낸 것입니다. 한옥이라는 건축양식의 특허를 갖고 있는 그 어떤 역사적 인물도 우리는 들어본 적이 없고, 심지어 그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들의 건축가의 이름도 찾기 힘듭니다. 이 방식의 공포(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물)는 어떤 건축가가 처음으로 사용했다거나, 팔작지붕은 어느 건축 학파에서 유행했다거나 하는 것은 한옥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옥은 삼국시대보다도 이전 선사시대에 생겨나기 시작한 움막에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온돌이라는 것이 삼국시대 고구려에서부터 시작되어 한반도에 곳곳에 전파되었다는 것을 정설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온돌이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을 갖추기 전, 그러니까 고구려에서 구들장이 생기기 이전에도 그 비슷한 것이 이미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움막 건축에서 지금의 부엌의 역할을 했었을 부뚜막이 점점 길어지더니 방바닥(구들)으로 발전하는 것이 이미 기원전 3세기부터입니다. 김남웅의 "문헌과 유적으로 본 구들 이야기 온돌 이야기"에 따르면 이러한 구들의 초기 형태가 기원후 1~3세기가 되면 이미 한반도 남쪽에서까지 발견되고 있다고 하니, 한옥이라는 건축양식의 역사의 시작점도 늦어도 이때 즈음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온돌의 사용과 나무 골조에 기와로 올린 지붕 양식을 한옥의 기본적인 건축 언어로 본다면, 한옥이라는 건축양식이 지금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조선시대 건축과 비슷하게 성립되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한옥은 한반도에 내려오는 지역 건축 Vernacular architecture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 건축'은 지속 가능한 성장이 주요 의제가 된 사회의 건축의 모습에 대한 고민들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개념입니다. '지역 건축'은 한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역사를 통해 만들어 낸 건축양식을 뜻합니다. 그리고 부가적인 의미로 건축가가 없이 지역에 발달돼 있는 건축 언어로만 만들어진 건축이란 뜻도 있습니다. 현대 건축이 지어지는 모습, 그러니까 건축가가 설계를 하고 건설 업자들이 그 도면을 따라서 건설을 하는 것과는 꽤 다른 건축방법입니다. 하지만 인류는 역사 속에서 대부분의 주거공간을 지역 건축 양식을 통해서 만들어 왔습니다. 주거공간에 한해서는 건축가가 개입해서 설계를 해 집을 짓는 것은 오늘날에도 흔치 않은 일입니다. 단독주택의 경우 여전히 건설업자가 갖고 있는 도면, 이웃집과 비슷한 모양의 건축 도면을 가져다 놓고 집주인이 특별히 필요한 몇몇 공간 구성을 덧입혀 집을 짓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다만 이런 방식이 지역 건축이라 불릴 수 없는 이유는 재료의 사용이나 건축양식의 발전이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스탠더드화 되어 있는 재료와 건축양식을 이용했기 때문이죠. 따라서 한반도의 지역 건축은 현재로써는 한옥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 건축 Vernacular architecturer이 전 세계적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지역 건축은 그 지역의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그 지역의 재료만을 이용해 만들어집니다. 산업시대 이전에는 운송수단이 마땅치 않았으니 근처에서 찾을 수 있는 재료로 건축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건물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자연의 변화무쌍함에서 빗겨 나와 안전한 공간, 편안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긴 역사 속에서 한 지역에서 만들어진 건축양식이 그 지역에 가장 적합한 공간 생성 방법이란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지역 건축은 현대 건축의 필수 재료인 시멘트나 철근처럼 큰 공장이나 특별한 운송수단이 따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의 기후에 적응된 건축양식이기 때문에 난방이나 냉방을 위한 에너지 사용이 현대건축에 비해 대체적으로 적습니다. 건설과 사용 양쪽에서 모두 친환경적인 건축이지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지향하는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들을 갖춘 건축양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집안의 중앙 공간인 마당은 장독대를 놓고 일을 하는 생활공간으로, 위로 올라와 있는 대청마루는 여름 해를 피해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되는 한옥의 다양한 공간들은 오늘날 우리 삶에도 상당 부분 녹아 있습니다. 사진 : 구례 운조루 / ParisBoucher


이 뿐만이 아닙니다. 지역 건축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가족 내에서, 그리고 한 문화를 살아온 사람들 속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삶의 문화가 녹아있는 유일한 건축양식입니다. 현대건축이 소개하고 있는 그 어떤 건축 방법도 충족시킬 수 없는 부분입니다. 오스트리아 출신 환경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이반 일리치 Ivan Illich는 지역 건축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주거 건축을 만드는 것은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같은 방법으로 살아가는 두 개의 커뮤니티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각각의 지역 건축은 그 지역민 자신들의 건축 언어다. 그것은 자신을 총체적으로 살아가는 예술이며, 사랑하고, 꿈꾸고, 아파하고, 죽어가는 것의 예술이다. 지역 건축은 우리 각자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 Ivan Illich, 1992, "In the mirror of the past", Marion Boyards, 런던


한옥이 20세기 산업혁명의 시대를 넘어 21세기에 들어와서 다시 각광받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 일 것입니다. 이런 움직임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 각국에서 자신들의 지역에 있었던 건축양식에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런 흐름은 주거 공간을 넘어 박물관이나 정부 청사 같은 공공 건축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2012년 중국 건축가 왕슈 王澍의 프리츠커 상 수상도 이런 흐름 속에 있습니다. 왕슈는 유학을 하지 않고 중국 내에서만 공부하고 중국 내에서만 활동한 건축가인데요, 자신의 활동 지역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깨진 기왓장 같은 재료들을 이용해 중국의 전통적 주거방식의 공간 형태를 자신만의 언어로 재현해 내는 것으로 프리츠커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왕슈가 수상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일차원적으로 이제 중국이 받을 때가 되었나 보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수상의 진정한 의미는 건축의 지역성에 대한 새로운 고찰에 있습니다. 프리츠커 심사위원들의 이런 의도는 올해 수상한 RCR 건축사무소에게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카탈루냐에 뿌리를 두고 주로 이 지방과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만 활동을 하는 건축가들로, 올해 프리츠커상 수상 이전에는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고 할 수 없는 건축가 그룹이었습니다.


왕슈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닝보 박물관. 외관의 자잘한 마감재 하나하나가 지역의 폐 건축자재에서 모은 기왓장들입니다. 사진 : Mare / flickr.com


프랑스, 독일 등 지속 가능한 성장이 국가적 이슈로 떠오른 지 몇십 년이 되어가는 환경 선진국에서는 이미 지역 건축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건축 교육에서도 이런 것들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꼭 지역의 건축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건축재료가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그것을 현대의 건축에 맞게 사용하는 방법들을 배운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연구가 진행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짚단'에 대한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공유되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인류는 지구 방방곡곡에서 자신들만의 지역 건축을 발전시키면서 공통적으로 짚단을 흙과 섞어 벽채로 이용했습니다. 한옥에서도 마찬가지죠. 지푸라기는 그 자체로 단열에 굉장히 뛰어난 재료인데 흙이 마르면서 부스러지는 것을 막는 역할도 합니다. 짚단은 한동안 잊혀진 건축재료였지만 현재에도 쌀과 보리와 같은 농장물을 수확하면 항상 생기는 부산물입니다. 이런 짚단을 그 지역에서 건축에 어떻게 소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 이것도 지역 건축의 재발견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환경적인 측면에 더해 이반 일리치 같은 철학자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지역 건축에 단순한 지역 재료의 이용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 정부의 건축도시공간 연구소 AURI가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옥에 살아보거나 여행에서라도 한옥을 경험해본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한옥에서 정서적인 안정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지역 건축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그것이 그 지역을 살아간 사람들의 문화를 온전히 담고 있는 건축양식이라는 것입니다. 한옥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이후로 많은 핍박을 받았고, 한국전쟁 이후 급격한 산업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시멘트나 철근 같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재료들에 밀려 그 맥이 끊겼습니다. 약 백여 년간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집을 위해서 한옥을 짓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한옥이라 하면 궁궐이나 민속촌이나 가야 볼 수 있는 박재되어 있는 우리 역사의 일부분으로 취급된 것이 무려 근 1세기입니다. 물론 티비 사극 프로그램이나 관광지에서 경험할 수 있긴 했습니다만 한옥 그 자체를 살아온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한옥에서 정서적인 안정감을 느낀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한옥이 우리의 생활양식을 가장 잘 담고 있는 건축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아파트나 연립주택, 혹은 양옥 같은 20세기에 발전한 건축양식들이 한반도에 살아온 사람들의 생활양식에는 맞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한국사람들의 삶을 변화하 시키는데 실패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는 가능성도 희박한 것 같습니다. 사실 모더니즘으로 대표되는 20세기의 건축양식이 변화시키는데 실패한 생활양식은 비단 한국인의 삶뿐이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건축양식들을 '서양 건축'이라고 부르는데요, 아마 르코르뷔지에 Le Corbusier 같은 모더니즘 건축가들이 이런 얘기를 들으면 좀 짜증을 낼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건축양식을 '국제 건축'이라고 부릅니다. 자신들의 건축은 세계 어디서든 통한다는 개념이고, 따라서 그것이 지역 건축보다 우위에 있다는 생각을 내포하고 있는 건축 사상입니다. 우리가 모더니즘 건축양식을 서양 건축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것의 태생이 유럽과 미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모더니즘 건축의 화신인 르코르뷔지에가 활동했던 프랑스에서도 이런 현대적인 주거양식은 민중에게서 배척당했었습니다. 이런 예를 잘 보여주는 것이 르코르뷔지에가 페싹 Pessac이라는 도시에 설계한 주거단지입니다. 페싹 주거단지는 르코르뷔지에가 발전시킨 모더니즘 건축양식이 그대로 적용된 단독주택들로 이루어진 주거단지인데요, 여기에 건설 당시에 이주한 사람들은 이런 건축양식이 정말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창문을 자기들 마음 가는 데로 바꾸고, 건물 내부에 벽을 설치해 각자 필요한 공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문화재로 인정받아 건설 당시의 모습을 되찾고 있습니다만, 프랑스의 건축 연구가 필립 부동 Philippe Boudon이 "르코르뷔지에의 페싹 Pessac de Le Corbusier"을 집필하기 위해 그 거주민들을 인터뷰했을 당시의 사진들을 보면 그 건물들이 모더니즘 건축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것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페싹은 르코르뷔지에가 만든 주거 단지라는 이유로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지만 프랑스인들의 삶의 양식을 변화시키지는 못한 것입니다.

위가 건설 당시의 페싹 주거단지고 아래가 거주민들이 원하는 데로 집을 고친 사진입니다. 정돈되고 퓨어한 모더니즘 건축의 맛은 온데간데없습니다. 가늘고 긴 창은 가운데를 막아 보통의 창으로 바뀌었으며 1층 필로티 공간은 더 이상 외부공간이라 할 수 없는 보통 가정집의 1층이 되었고, 편편했던 지붕은 가운데 부분을 올려 자잘한 멋을 냈습니다. 사진 출처 : Philippe Boudon, 1969, "Pessac de Le Corbusier", Dunod




그 양식의 태어난 나라를 사는 사람들도 적응을 못한 모더니즘 건축이 머나먼 한국 땅에서 한민족이란 이름을 걸고 사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품을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아파트로 대표되는 이런 모더니즘 건축의 폭력성에 대해서는 이후에 좀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만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최근 한옥이 이런 우리 몸에 맞지 않는 건축에 대한 대안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20세기 내내 한국의 건축가들과 건설사들은 아파트를 한국인의 생활양식에 맞추려고 부단한 애를 썼고 그것은 어느 정도 먹혀들어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파트를 본질적인 의미에서 인간의 '삶'을 만져주는 공간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한옥은, 그 부분에서는 적어도 한국인에게는 최적화된 건축양식입니다. 한국인의 지역 건축이기 때문이죠. 좀 더 자세히 파고 들어가면 각 지방별로 그 기후에 따라 공간 구성과 단열과 온돌의 중요성의 정도 등에서 차이가 있고 이것도 연구해볼 가치가 충분합니다만, 한옥이라는 건축양식 자체가 한반도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의미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삶의 양식 그 자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안채에서 마루에 올라가면 마당이 내려다 보이고, 쪽마루로 이어져 있는 건넌방은 창호지로 마감된 창문이 있어 내부가 보이지는 않지만 방 안의 빛이 은은하게 올라오고, 방 안에서는 앞마당도 볼 수 있지만 뒷마당의 꽃나무도 볼 수 있는 공간. 그 공간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서사와 인간관계가 한옥이고, 아파트에서는 찾아볼 수 있는 잃어버린 생활양식이죠.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너무 오랫동안 잃어버린 나머지 한옥을 불편하고,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그런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활양식이 이제는 고루한 한옥보다는 아파트의 편리성에 많이 맞춰져 있다고 생각하죠. 과연 그럴까요? 저는 반대로 아파트가 우리의 생활양식에 맞추려고 지난 수십 년간 부단한 노력을 했고, 그 덕에 한국인들의 요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키는 생활공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부에서는 한옥이란 양식이 어떤 배경에서 탄생했는지, 한옥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아파트와 다른 현대 건축 양식들은 그것을 다시 어떻게 재해석해 나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다뤄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커버 사진 : 서울 낙선재 / ParisBou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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