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3.
내나이 스무살에 군대에 간 남편이 억울하게 구타를 당하였다.
그는 급성 신우신염으로 의과사 제대를 한 후 한달 만에 하늘로 떠났다.
아들 하나를 두고 어찌 살수 있을까 시댁 식구들은 내가 도망갈거라 생각했다.
화장하여, 바다에 유골을 버려버리고,
자식을 못 데려가게 늘 단도리를 했다.
스무몇 살.. 억울하다 억울하다 찾아간 곳이 부산역 앞 변호사사무실이었는데,
변호사는 내게 "함부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이라니..간도 크다.. 600만원 가져오시오!"라고 하였다.
600만원이라니.. 쌀 한되 500원하던 때에.. 600만원이 어딨노.. 억울한 마음으로 평생을 지내기보다 내 새끼를 건사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재봉일을 하면서, 열 몇시간씩 공장에서 아예 살았다.
그렇게 키운 내 아들이 고등학교때 목사가 되고 싶다고 하였을때, 하느님께 감사하다감사하다 했다.
그러나,
너무 큰 꿈이었는지, 우리 아들은 목사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이런일 저런일 전전긍긍하더니.. 결혼도 못하고, 50살에 당뇨로 시력을 다 잃었다 했다.
미안하다.. 애미란 것이 지 새끼 어디가 아픈지 알지도 못하고, 마음만 단디해라고 달랬던 것이 모자란 애미란 년이 해줄수있는것이 뭐가 이리 없는건지.. 나는 이제 살고 싶지도 않다..
내 남편은 국가의 부름을 받고 의과사제대로 2달만에 하늘에 가더니, 내 희망인 내 아들은 무엇으로 그리 괴로워 당뇨로 눈을 잃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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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 황망한 마음을 가지고 죽고싶다고 하였다.
나는 남편의 의과사제대의 자료를 바탕으로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신청하였다. 이후 그녀는, '사자에 대한 부검'을 통해 국가유공자의 유가족으로 나라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50년간 참고 살던 억울함이 아들마저 잃을것 같단 불안감에 막막했던 그녀는, 남편의 억울한 죽음이 '국가유공자'가 되어 한이 풀렸다고 하였다.
그녀는 여전히 팔순이 넘는 나이에 포도밭, 사과밭에서 품을 팔 정도로 건강하시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시각장애가 있는 아들을 위해 집을 준비해두었다. 어머니의 마음을 아는 아들은, 어머니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아 그룹홈에서 지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하루하루 하느님께 기도하며 성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건강했던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도 슬픈데, 그 억울함을 '함부로' , '간도 크다'라고 말했던 변호사의 핀잔을 듣고도 50년을 견디게 했던 힘, 그것은 자식이다. 자식은 그런 힘이 있다. 어리고 어린 20살의 어린 엄마가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야했던 힘이 남은 가족이다. 서로에게 애석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시는 두 분께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