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잊혀지면 슬픈 가족을 가진 이들에게

by 하루 노을

세상에 혼자 그냥 태어난 사람은 없다.


분명 나를 낳은 남과 여가 있을 것이고,

그들을 남은 남과 여가 있었을 것인데,

그들이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시고,

자식이 있다면, 내 자식에게 나는 생물학적 아버지, 어머니로 부터 시작될 것이다.


나는, 13세살의 행려환자였던 한 아이에게 주민등록을 만들어 주었던 일을 한적이 있다.

1살에 버려졌던 아이, 장애가 있어 병원에서 보호하던 아이는, 병원에서 지어준 이름과 발견당시 성장한 상태를 보고 출생년도와 발견한 날짜가 생일이 되어버린, 13살의 행려환자 000..


나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행려환자는 보통 중장년 주취자이고 노숙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틈에 13살 행려환자라니, 병원을 먼저의심했고, 진짜 가봐야한다고 생각했다. 진짜 그 아이가 행려환자란 말인가.


토요일이었다. 내 의심이 그 아이가 장기입원했어도 됐을 공공병원, 비오는 토요일 캄캄했던 병동 바닥에,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몇명이나 있었을까, 많았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낯선 나를 반겨하며 나에게 몰려들었다. 흔한 TV하나 라디오도 없었던 소독약 냄새 그득한 넓고 넓은 그 병실 한 쪽에 커다란 병원용 침대가 줄지어 있었는데, 그들은 한눈에 봐도 어른이었고, 창 밖을 내다 보이는 방향도 아니고, 문쪽을 보는 벽에 기댄 카시트처럼 생긴 의자에 자그마한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나이 어린 행려환자 000이었다.

얇은 팔에 감긴 붕대는 대화도 하지 못하는 그 아이가 본능적으로 하는 몇 안되는 행동 손가락을 입으로 넣어, 토하는 걸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었고, 심한 뇌병변 장애를 가지고 오랜 병원 생활을 하여 혼자 걷지도 못한 아이는 변비약과 칼슘 처방으로 13년간 병원에 입원하여 있었다.

나이든 환자는 몇 십년째 입원 중인 환자들이었고, 아장아장 걷는 애기들, 기어다니는 아기들, 그 아이들의 장애를 확인하는 순간, 우리의 인류애가 도대체 왜 이따위인지....... 너무 화가났었다.


나는, 000을 병원 밖 세상으로 데리고 나와야했다. 그 아이는 아픈게 아니라, 퇴원시킬 사람이 없어 입원만 하고있었을 뿐이었다. 아이는 생활하고, 교육받고, 관심받고, 보호받고, 성장할 권리가 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봄, 여름, 가을, 겨울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고, 살게 하고 싶어졌다. 그로부터 3, 4개월 뒤, 그 아이가 시설로 갔던 그 날, 1년을 키우고도 구의동 어느 골목에 1년을 애써서 키우고도 끝가지 키우지 못해 겉싸개에 싸서 한 여름 아이를 잘 발견될 수 있는 곳에 내려다 놓은 그 생물학적 부모에게 빚진 사회의 책임이 조그미나마 대신해 주었길 기도했었다.


그 아이가 1년 동안 길러졌던 그 시간을, 그 아이를, 그 아이는 기억하지 못해도, 그 시간을 함께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아이를 유기하였다. 왜 아이를 버려야했을까. 키우기가 어려워서. 어린이집이 없어서. 키워줄 손이 부족해서.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무슨 이유가 있었던 간에, 아이는 피해자다. 그런데도, 나는 그 부모에게 미안하다. 아이를 키우는데 도움도, 지원이라는 것도, 평생 두려워했을 그 부모에게 우리 사회는 무엇을 지지했었는지.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는다 하더라도 가장 죄책감을 느낄 자는 그들이다. 생물학적인 부모가 이러지 않도록 사회는 무엇을 준비하고 함께 키웠는지 13년간 병원에 둔 것도, 13년 이상 어찌됐을지 모를 아이의 인생에 관해 우리 정말 제정신들인가.


2026년 장애인통합돌봄을 시작한다고 한다. 65세 미만 심한 뇌병변, 지체장애인과 65세 장애인을 대상으로.

그런데 우리 정말 준비되어 있는가. 우린 정말 장애인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돌봄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는지 확인이 된 것인가. 되 물어야 한다. 돌봄의 범위를 다시 정하고, 돌봄의 영역을 다시 정하여야 하고, 돌봄의 에산까지 확인하고 부족한 것을 서둘러 챙겨야 한다. 민간의 손에만 맡기지 말고, 생물학적 부모가 안되면 사회적 부모가 책임지는 확실한 책임이 되지 않으면서, 돌봄의 사회책임을 제도가 시작되었다고 다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잊혀지지않을 기억을 가지고 사는 가족들의 소망에 우리 사회가 함께 노력해줘야 한다.


000은, 그 후 1년 뒤 봄, 경기도의 한 장례식장 유택동산에 모셔졌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의료급여사업안내를 통해 주민등록이 없는 행려환자에 관해 성본창설과 주민등록번호 부여하여 이들에게 법적 돌봄기준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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