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슬픔
그는, 작은 슈퍼를 하던 사장이었다.
큰돈은 못벌었지만, 그래도, 모아놓았던 돈으로 지방에서 집이며, 가게를 가지고 장사를 하면서 딸 하나를 두고 부부가 함께 슈퍼를 운영해도 먹고살만큼은 되었던 그는 아빠였다.
그의 입장에서는 마누라가 돈을 갖고 튄게 도대체 무슨 이유였는지 모를 그 시기에 마침 IMF가 닥치자 그는 정말 하루아침에 중학생이던 딸과 함께 알거지가 되었다.
정말 갈곳이 없었다. 친구에게, 가족에게 마누라가 빌려간 돈도, 가게를 저당잡히고 작은 집도 이미 자기것이 아니었다는 것으로 매일매일 찾아오던 빗쟁이들이 괴롭히던 어느날에 딸과 함께 여향가방하나 들고 일자리가 많을 서울로 무작정 올라왔다.
서울역에는 그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있었다. 밥도 빵도 줄을 서서 먹을 수 있었다. 집나간 마누라가 왜 그랬는지 용서하지 못할 숙제가 그를 밤낮으로 꿈으로도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를 따라 나온 딸은, 무척 밝은 아이였다. 정신나간 그를 대신 해 그를 챙기는 아이였다. 그저 그 아이에게 미안할 뿐, 지금은 어떻게 살아야할지 생각하기도 힘든 나날이었다.
그가, 그렇게 서울역에서 보낸 시간이 훌쩍 1년이 넘어가면서, 그제서야 그가 노숙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저 그를 잘 챙기던 딸은, 순찰하던 경찰과도 친할 정도로 서울역생활에 적응해버렸다. 그때는 몰랐다. 그 아이가 경찰과 친할 정도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그 정도의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못하였다.
'노숙자다시서기센터'라는 것이 생겼다. 밥도 주고 일자리도 주고 상담이라는 것을 하면, 숙소도 준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의 딸을 데리고도 다시 무언가를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였다. 그러던 날, 그가 아이를 찾기 시작하였다. 열다섯여섯살 난 아이가 딸이었고, 여자였던 것을. 생리도 하고 학교도 가고, 교복도 입어야 했던 딸에게 그가 아무것도 못한 것을 깨달은 것이 너무 미안하였던 것도 다시 서야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그의 머리를 때렸다고 했다.
그 시기에 노숙자를 보호하는 시설은 가족이 함께 들어갈수없었던 모양이다. 아이은 미성년이라 청소년보호시설로, 그는 공덕동에 시설로 보내졌다. 그는, 그곳에서 그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과 공공근로를 하며 돈을 좀 모았다. 그는 딸과 함께 살아야했다. 다시 고향으로 가지는 못해도, 서울에 작은 방이라도 고시원이라도 얻어서 나가고 싶었다.
어느날, 어떤 이가 그에게 그의 딸 소식을 전해왔다. 그의 딸이 서울역에서, 몸을 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숨이 쉬어지지않았다. 만리재고개를 단숨에 넘어 서울역을 뒤졌다. 그를 닮은 딸이 스무살도 안되었을 아이가 시설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던 아이였는데, 그 아이가 코끼리만한 덩치를 가지고 그곳에서 '여성노숙인'이 되어있었다. 나를 보고 욕을 하였다. 니가 아빠냐고. 그에게 그 모습이 끊었던 술을 다시 시작하게 하였고, 다시 설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그에게 더이상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그는 바닥에 앉아 아무것도 못할 또다른 절망에 빠졌다. 앞니가 빠져 간이 망가져 버린 그를, 그리고, 아무런 치료도 하지 못한 채 또 나가버린 그를 본 것은 그 후 몇년이 지난 지방의 한 역에서였다. 내가 본능적으로 그의 주변의 딸을 찾았던 것이 바보스러웠을것 같다. 딸은, 거기에 없어야 했고, 딸은 잘 지내고 있어 그 자리에 없었길 바랬다. 부디......
노숙자들은, 전국의 역을 기점으로 돌아다닌다. 역주변이 편안한 것은, 교회나 절이 그들을 위한 무료급식을 쉽게 제공하고, 그들의 입장에서는 역을 통해서 어디를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충분하진 않아도 최소한의 인프라가 있다는 것도, 또 잘하면 그 지역의 지자체가 공공근로나 물품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기도 하다. 노숙자라고 하는 것도 나중, 노숙인으로 바꿔쓰기도 하나, '자'나 '인'이나 사람이다. 사람. 그들이 개인적인 게으름이나 경제적인 붕괴로 터전을 나와 그 누구도 보호하지 못하는 거리로 나왔을때, 혹자는 그들이 원래 거지였다고 말한 사람도, 혹자는 어떤 범죄를 저지른 인간이라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절망적이게도, 오랫동안 길위에 놓여지면, 그들은 이미 말이 좋아 '자유로운 영혼'으로 그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을 정도의 길위의 생활에 적응해버리는 것이다. 그들이 그리 살다 결국은 무연고사망자가 되기도 한다. 그들이 처음부터 '무연고'였을리가 없었을 터인데, 결국은 그들 스스로가 무연고의 삶을 선택해버리게 되는 것이다. 요즘 지자체는 그런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매번 그들을 관리하고자 하고, 동사하지 않도록 기본적인 지원을 한다. 그들의 그 삶조차 그렇게라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아무리 보호해주고 싶어도, 그들은 그런 돌봄을 거부하고 있고, 손을 잡지 않는다. 못하는 것도 맞다. 가두지 못한다. 들어간다하면 정말 좋겠지만, 함부로 억지로 강제로 그들을 보호할수도 없다. 그들의 인권을 존중해야한다는 것 때문이다.
나는 매일 아침 사무실 주변의 노숙자를 본다. 지나가던 사람이 천원, 오천원을 그에게 쥐어주는 모습, 김밥집사장님이 건네는 한 줄의 김밥, 편의점 사장이 건네는 빵과 물..... 1년 내내 패딩을 입고, 털모자를 쓰며, 배낭을 메고 다니는 그에게 이웃이, 사람이 전하는 그 관심도 본다. 또한 그 관심이 우리 사무실로 다시 민원으로 들어오는 모습으로, 우리 사회가 가진 그 관심과 존엄을 같이 하고픈 따뜻한 마음을 목격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길위의 딸을 위해 기도한다. 잘 지내고 있길, 마음으로 마음으로 그들의 평안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