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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길숙 Dec 26. 2021

풍등(風燈) 8

양병집 오라버니가 아주 갔다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김예나 기자 = 1970년대를 풍미한 '1세대 포크 가수' 양병집(본명 양준집)이 지난 24일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70세.  25일 가요계에 따르면 양병집은 친분이 있던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와 생전 자주 찾던 마포구의 한 단골 카페에서 약속을 했으나 나타나지 않았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카페 주인이 112에 신고해 경찰이 자택에서 고인을 발견했다.  고인은 학창 시절부터 음악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유명 음악감상실을 드나들었다.

그리고 음악의 꿈을 좇아 서라벌예대 음대 작곡과에 입학했지만 부친의 반대로 음악학도의 길을 접고 증권회사에 입사했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도 음악을 향한 그의 꿈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고인은 입사 1년여 만인 1972년 한 포크 콘테스트에 동생 양경집의 이름으로 참가해 3위로 입상했다. 당시 부른 노래가 바로 밥 딜런의 '돈트 싱크 트와이스 잇츠 올 라잇'(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에 스스로 노랫말을 붙인 그의 대표곡 '역'(逆)이었다.  주최 측은 시상식에서 그의 이름을 '양병집'으로 잘못 불렀는데, 그는 이를 계기로 아예 양병집이란 예명을 정했다고 한다.  고인은 1974년 1집 '넋두리'로 가요계에 본격 데뷔했다.  그의 노래는 현실을 비꼬는 노랫말과 구수한 가락으로 당시 젊은 지성인의 심금을 울렸다. 이 때문에 김민기, 한대수와 함께 1970년대 3대 저항가수로 불렸다.  


                   (사진 출처; 양병집 블로그)


양병집 오라버니가 아주 가셨다. 24일 영면하셨으니 3일장이면 내일이 발인이다. 그래서 풍등을 건다. 70년대부터 지금까지 양병집을 많이 좋아했다. 앞으로는 더 많이 좋아할 거 같다.  넋두리 같은 그의 노래는 참 좋다.  특히 '소낙비'는 구구절절 내 가슴에 내린다. 소낙비를 듣기 위해 무수히 드나들었던 음악다방에서 양병집의 소낙비를 맞으며 김민기의 봉우리에 올랐고, 한대수의 물 좀 주소에 갈증이 더 타올랐다.


홍차에 위스키를 타서 마시며 금지곡에 심취했던 그 시절 덕분에 한 끼 밥을 위해 투쟁할 줄 아는 힘이 배양됐다. 낯 선 곳에서 낯 선 경험을 하고 낯 선 정보를 받아들여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간 것도 이 노래 덕분이다. 양병집을 통해서 밥 딜런(Bob Dylan)과 피터 폴 & 매리(Peter Paul & Mary)를 안 것도 내게 커다란 행운이다. 나라에서 양병집 노래를 듣지 말라 엄포를 놓았을 때 몰래 듣는 <소낙비>는 이른 봄의 취우(驟雨 -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가 곧 그치는 비), 추워서 입술은 새파랗게 질렸고 옷에는 살얼음이 얼어 달그락거렸다. 허나, 마음은 뜨거웠다. 가방 끈이 짧아도 주눅 들지 않았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는 용기가 생겼다. 모르는 게 있으면 자꾸 묻게 됐고 누군가 험담으로 나를 까면 나를 제대로 알면 흉볼게 더 많을 텐데 내 단점을 더 까발리고 싶었다. 내게 양병집의 소낙비는 그런 노래다. 지금 양병집 오라버니를 위해 풍등을 걸면서 듣는 <소낙비>가 나의 결핍과 열등감을 데리고 바다로 흘러간다.  


소낙비     https://youtu.be/Ff5 slliqpCk

어디에 있었니 내 아들아

어디에 있었니 내 딸들아

나는 안개 낀 산속에서 방황했었다오

시골의 황톳길을 걸어 다녔었다오

어두운 숲 가운데 서있었다오

나는 시퍼런 바다 위를 떠 다녔다오

무덤들 사이에서 잠을 잤었다오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     


무엇을 보았니 내 아들아

무엇을 보았니 내 딸들아

나는 늑대의 귀여운 새끼들을 보았오

보석으로 뒤덮인 행길을 보았오

빈 물레를 잡고있는 요술쟁일 보았오

새카맣게 타버린 초가집을 보았오

하얀 사다리가 물에 뜬것을 보았오

녹슬은 칼과 총을 가진 애를 보았오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     


무엇을 들었니 내 아들아

무엇을 들었니 내 딸들아

나는 비 오는날 밤에 천둥소릴 들었오

세상을 삼킬 듯한 파도소릴 들었오

성모앞에 속죄하는 기도소릴 들었오

남편 잃은 여인네의 한숨소릴 들었오

나는 배부른 송아지의 웃음소릴 들었오

물에 빠진 시인의 노래도 들었오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     


어디로 가느냐 내 아들아

어디로 가느냐 내 딸들아

나는 비 내리는 개울가로 돌아갈래요

빈 손을 쥔 사람들을 찾아서 갈래요

영혼을 잃어버린 산동네로 갈래요

뜨거운 사막 위를 걸어서 갈래요

나는 부모님이 기다리는 내 집으로 갈래요

나에게 무지개를 따다준 소녀 따라갈래요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     

끝없이 비가 내리네

양병집 오라를 위한 풍등은 벗이 사진 찍어 보내 준 <등가시 버섯>. 양병집 오라버니가 지금 막 점등(點燈)하신 듯 등잔 밑도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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