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다가 멈춘 이유

그리고 다시 쓸 용기를 가진 이유

by 트래블메이커

2년 전부터 핸드폰 메모장과 A4 이면지, 컴퓨터 워드창에 책을 쓰기 시작했다. 목차를 잡고 한 달 동안 뿌듯해했고, 어렵게 쓴 서문을 백번 넘게 고치며 이미 책을 다 쓴 듯한 엉뚱한 감동도 받았다.

' 아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싶어 했구나!'

그리고 글감이 생각날 때마다 메모장에 연필로 메모하며 아이디어를 쌓아갔다. 생각보다 틀을 잡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그러다가 글쓰기가 싫어졌다.


책 쓰기를 멈춘 이유

나는 청개구리인가 보다... 책을 쓰기 싫어졌다. 주변에서 책을 빨리 내라는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인들의 책이 출판되기 시작했다. 질투가 나지는 않았다. 단지 출판 이후에 달라지는 그들의 활동 범위를 인스타그램을 통해 관찰했다.


어떻게 책을 그렇게 빨리 출판할 수 있었냐는 나의 질문에,

'일단 첫 책은 그냥 빨리 내는 거야'

'아이디어만 있으면 GPT에 일단 돌려봐. 찰떡같이 알아듣고 글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줘'

'첫 책은 원래 지인들이 사주는 거야' 등등 고객을 끄덕이면서도 마음은 허했다.


지인들의 책을 구매했다. 그들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진 공통적인 생각은 이러했다.

' 이 사람은 이보다 더 깊이 있는 책을 쓸 수 있는데 왜 이것밖에 하지 못했을까.'

빨리 출판을 하기 위해 시간에 쫓긴듯한 내용, 대학원 석박사를 수료한 사람들의 책에 인터넷 기사가 출처로 가득했다. 그 사람만이 가진 특별함이 단절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인공지능 사회에서는 이런 책을 써야 하는 걸까? 아니면 작가가 아니라면 이런 책밖에 쓰지 못하는 걸까?

이런 책을 쓰는 거라면 나는 이제 그만 쓰련다.



서문을 AI에 돌려보았다


서점에 AI가 쓴 책이 쏟아진다. AI가 50% 쓴 책도 베스트셀러가 된다.

다들 빨리 책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다음 책을 쓰기 위해.


이런 상황 속에서 책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쓴 서문을 AI에 돌려보았다. 기가 막혔다. 문장 앞뒤에 살을 붙여주고, 국내외 사례를 가져와서 예시를 들어주고 다음 단락에는 이런 이야기를 써야 설득력이 있다고 나에게 자문을 해주었다. 이렇게 갖다 붙이기를 하다 보면 정말 한두 달이면 출간은 시간문제다. 하지만 난 이런 책을 출간하고 싶지 않다. 2000원짜리 전자책을 목적으로 하더라도 팔고 싶지 않다. 다음을 위해 일단 대충 써보는 책은 쓰지 않겠다.




더 빨리 갈수록 책은 천천히 읽을 수 있었으면


최근 한 독립서점 대표님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선물해 주셨다. 아이들 책부터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식물과 관련된 책, 한동안 읽지 않았던 소설까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꾸역꾸역 끝까지 읽었다. 되팔 생각도 없이 밑줄치고 생각을 적어가며 읽었다. 다양한 분야에 깊이 있는 책을 억지로 읽은 것이 신기하게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줬다. 자기 계발서와 트렌드 서적에 질려버렸던 마음을 지우개로 쓱싹쓱싹 지운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시 이면지를 펼쳤다. 당분간은 손으로 원고를 쓰려고 한다. 머릿속에 원고는 가득 차 있으니 뽑아내보자. 책에 삽입될 그림도 손그림으로 하면 어떨까 싶다. 다들 빠르게 갈 때 나는 더 천천히 가볼까 한다. 그래봤자 1-2년이겠지. 다음 책은 생각도 하지 않으련다. 일단 이 책에 진심을 담아 최선을 다 해보고 싶다.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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