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끝이 있기는 한가요?

끝이 있다고 말해주세요.

by 트래블메이커

둘째가 곧 돌이다.

아이는 걸음마 연습을 하고 맘마, 엄마, 아빠, 미미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후기 이유식 중이고 곧 모유수유도 끝낼 예정이다. 둘째 아이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아이가 나의 변화의 신호를 잘 읽어주는 것 같았다. 첫째 아이 육아에 고생한 것이 의미가 있었다.


첫째 아이의 육아는 매일매일이 떨림과 걱정의 연속이었다면 둘째 아이의 육아는 괜찮아, 첫째 때도 괜찮았어. 곧 괜찮아 질거야. 약 먹이면 곧 나을거야..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스킬이 늘었다. 또 아이의 울음 소리에도 당황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나에게 요구하는 육아의 형태는 계속 변화한다. 이제는 요리도 잘해야하고 정리도 잘해야하고 아이 교육 뿐만이 아니라 동네 엄마들과의 네트워크도 해야한다.


나의 육아는 5년차로 접어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문을 열고 샤워를 해야하고

여전히 문을 열고 볼일도 봐야하고 여전히 아이가 남긴 밥과 남은 반찬을 서서 먹고 여전히 말 안듣는 아이와의 전쟁에서 소리지름으로 마무리를 한다.

여전히 나는 아이 반찬을 고민하다 계란후라이와 김을 꺼내놓고 여전히 육아책과 육아 고민들을 보면서 '다들 똑같네 뭘..' 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첫째의 등원 준비를 하며 첫째와 실랑이를 벌였다. “ 네가 분명히 계란비빔밥을 해달라고 했잖아.그런데 왜 갑자기 요플레는 먹겠다고 하는 거니? 그럼 이거 누가 먹어?”

“ 엄마가 먹으면 되잖아.”

“....................(관세음보살) “



둘째는 그와중에 배가 고픈지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져 “맘마” 를 연발한다.


설거지통에는 접시와 반찬통이 쌓이기 시작한다.

하루에 설거지를 몇 번을 하는 거냐구.


남편의 식사도 대충 챙기기 싫은 사소한 자존심을 놓지 못했다. 살짝 옆구리가 터진 마약김밥을 내놓고 생색을 냈다.


“ 오빠, 대충 먹으면 안돼. 잘 먹어야 해.”


남편을 급히 내보내고 아이들 밥을 챙긴다.

아이는 일단 어린이집 갈 생각이 없는 듯 보인다.


“엄마, 나 이것만 보고 밥 먹을거야.. 50분만 줘.”

“엄마, 나 요플레 먹고 갈꺼야. 어린이집에서는 절대 안 나와.”


첫째는 50분이 굉장히 긴 시간인걸 알고 자기에게 시간이 필요할 때마다 50분을 이야기한다.

꼭, 절대라는 말이 단호한 느낌의 단어라는 것도 알아서 원하는게 있을 때마다 얼마나 잘 사용하는지.


어른은 왜 더이상 자라지 않는거야. 멈춘 것만 같다고. 나는 왜 능수능란해지지 않는 거냐고.


매일 하는 나의 일과가 익숙해져서 더이상 힘들지 않고, 빨리빨리 집안도 정리가 되면 너무 좋잖아.



첫째가 어린이집에 가면 둘째를 많이 예뻐해 줘야지...라고 매번 다짐하지만


막상 둘째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되면 아이와 해야할 집안일이 뒤엉켜 아이 앞에 장난감을 주르륵 늘어놓고는 너는 혼자 놀아. 엄마는 빨래 좀 갤게. 잠깐 설거지 좀 할게. 또 한번 정신없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가 울면서 보채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아이를 안고 재운다.


둘째가 자는 시간에는

내 시간이 없어. 이 시간은 무조건 쉬어야해..라는 강박으로

커피를 내리고, 책을 펼치고,

티비를 켠다.



그냥 이렇게 시간이 간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으로 위로를 해야한다면

그것도 위로가 된다.


하지만 어쩐히 헛헛한 이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누군가가 쓴 글에서

아이들은 엄마의 시간을 먹고 자란다고 하던데

오늘 그 말이 참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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