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수선의 명품을 2대째 잇는 아들과 어머니의 공간
통인 시장 골목 안. 작은 가게 안 3평이 채 되지 않은 공간. 똑 똑. 딱 딱. 깍. 깍.
수 십 개의 시계가 저마다의 박자에 맞춰 움직인다. 한쪽 벽을 가득 메운 시계들을 바라보니 순간 어지럽기도 하다. 옷을 짓는 양장 전문가인 엄마와 2대째 시계를 고치는 아들이 함께 일하는 공간이다.
그의 아버지(고 김이현)가 50년 넘는 시간 동안 이곳에서 시계를 수리했다. 통인 시장 맞은편 외국 공사관과 청와대에서도 시계를 그에게 맡겼었다. 그는 3년 전 세상을 떠났다.
벽 중앙에는 그의 아버지가 작업 중에 찍은 흑백사진이 붙어 있다. 그의 책상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80년대 철제 사무용 책상이다. 오는 사람마다 바꿀 때가 되지 않았냐고 묻지만 불편하지 않아 계속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가업을 이어받은 아들 (김승환 님)은 어렸을 때부터 시계를 만지며 놀았다. 그는 아버지 몰래 아버지가 수리하던 시계를 가져다가 부수고 다시 조립하는 놀이를 했었다. 어떤 날은 몰래 가져온 시계를 다시 조립하지 못해 도망 다녔다. 그렇다고 해도 아들은 시계 수리공이 자신의 업이 될 것이라고는 3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다.
70년 대 서촌 지역에는 7곳의 시계방이 있었다. 현재는 일성사 밖에 남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이 지역에서 뛰어난 시계 수리공이었다.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명품 시계를 수리하러 올 정도였다. 그런 아버지는 다른 일을 하던 아들에게 죽기 전 가업을 이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아들은 모든 일을 정리하고 시계를 만지기 시작했다.
*인터뷰 내용 발췌.
- 인터뷰 담당 : 커피앤도넛 (박) , 일성사 대표 김승환 (김)
박: 가업을 이을 생각이 전부터 있었나요?
아들 : 처음에는 피해 다녔어요. 아버님이 4년 전부터 아프시면서 일을 못하게 되었고, 제가 이어서 했죠. 처음에는 안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한번 시계를 잡아보니 ' 내가 할 수밖에 없겠다. 운명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 제대로 배우지를 못했지만, 아버님이 수리했던 시계를 보면서 배우게 되었죠.
박 : 가족들이 가업을 잇겠다고 했을 때 반응이 어땠나요?
아들 : 지켜봐 줬어요. 그 당시 아들이 저에게 ' 아빠, 세계를 바꾼 발명품 중에 시계가 있어'라고 자랑스러워하더라고요.
아버지가 떠난 후, 어머니는 한 동안 아들을 ‘여보’라고 불렀다. 아들은 아버지가 작업을 마치지 못한 시계를 고치며 아버지를 보았다. 아들은 아직도 아버지의 물건과 도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시계를 고치는 일은 참 예민한 작업이다. 눈에 확대경을 끼고 작은 부품을 들여다보기를 1시간 남짓. 잠시 눈에서 확대경을 빼고 나면 몇 초간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가업을 물려받기로 마음을 먹고 나서부터 연습용 시계는 잡지 않았다. 무작정 손님의 시계를 고치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부터 시계를 만져온 터라 손의 감각은 있었다. 시계 속에 남아있는 아버지의 흔적을 따라 손님 시계를 고치기 시작했다. 100개쯤 시계 수리를 했을 무렵, 감이 왔다. 그는 이제 시계 수리공을 넘어 시계를 만들고 와치 아티스트로서의 꿈을 꾸고 있다.
박 : 사장님께 시계는 어떤 의미일까요?
아들 : 시계는 기억이에요. 기억은 값을 매길 수 없죠. 분해하고 조립하고, 부품을 세척하고, 작동을 확인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들죠. 시계에는 각자 소중한 기억이 담겨있어요. 시계의 가치를 아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제가 하는 일에 대한 가치도 알아주시는 거 같아 기분이 좋아요.
박 : 지금까지 가장 고치기 어려웠던 시계가 있다면요?
아들 : 한 할아버지께서 시계를 가져오셔서 손자가 대학시험 보러 갈 때 차고갈 시계라면서 수리를 맡기셨어요. 부담이 많이 되더라고요. 혹시나 이 시계가 손자의 중요한 순간에 영향을 끼칠까 봐서요. 하하.
일성사의 멈추지 않는 시곗바늘 소리, 그의 등 뒤에 어머니의 간간이 들리는 재봉틀 소리, 다림질의 따뜻한 수증기 내음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참고] 일성사 대표 김승환 02-723-1713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 55
통인시장 정문 입구에서 2분쯤 걸어가면 오른쪽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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