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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밥 짓는 사람 Jul 07. 2017

20대의 어떤 지점에서 찾은 우연의 산물들

B의 인터뷰

3월 1일 오후 1시쯤 사당 반디앤루니스에서 B를 만났다. B는 나와 짧은 인사만 나누고 오자마자 책을 살폈다. 디자이너답게 아름다운 책 표지를 살펴보며 눈을 반짝였다. “요새는 책 표지가 실용적이라기보다 예술적으로 변한 것 같아. 제목도 작게 들어가고. 어, 이 글자는 하나씩 따붙여서 만들었네. 힘들었겠다. 이 표지 색감과 배경은 진짜 예쁘지 않니?”라며 B는 요즘 자신의 근황보다 요즘 책 이야기를 하느라 분주했다. 백화점에서 신상품을 신나게 보는 여느 여자들처럼 서점에서 신간을 보느라 신난 여자 둘. 우리는 에세이, 문학 쪽 책을 한 번씩 다 쓰다듬고 나서야 겨우 배고픔을 달래러 자리를 옮겼다.




이적 팬클럽 회지 만들다 시작한 디자이너의 길


J: 프리랜서로 요새 집에서 일하는 건 어때?

B: 뭐, 이제 손에 익어서 빨리 하고 있어. 지금 디자인 작업하고 있는 회사에서 일 년에 한 번 책자가 나오고, 나머지는 브로슈어와 DM(광고지) 작업이야.


J: 집에서 프리랜서로 계속 일하지 왜 일을 찾으려고?

아무래도 지금 일은 고정적으로 들어오긴 하지만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해. 그리고 난 항상 단행본을 하고 싶은 미련이 남아 있으니까 책 만들고 싶기도 하고, 어쨌거나 이젠 혼자가 아니니까 현실을 받아들여서 일을 해야지.


J: 그런데 최근에 지원한 곳이 단행본 출판사는 아니란 말이지.

B: 응. 일을 하는 건 좋은데 일을 하면서 육아도 같이 해야 하는데, 어느 분야로 가야 나한테 가장 좋을지 찾게 되는 거야. 이제 육아와 일을 동시에 하는 첫 시기니까 첫 단추를 잘 끼워야겠지. 아무래도 일할 곳이 교육 출판사가 될 것 같네.


J: 전공이 뭐였지? 졸업하고 나서 쭉 이 일을 한 거야?

B: 멀티미디어과였어. 당시에 우리 과에서 출판사로 간 사람이 내가 처음이었어. 보통은 영상이나 웹디자인 쪽으로 빠지거든. 교수님 수업 중에 인디자인 수업이 있었는데, 그때 인디자인이란 프로그램이 처음 나왔지. 교수님도 인디자인을 잘 모른 체 수업을 개설한 거야. 우리는 해설 책을 읽으면서 익혔어.   

아, 그리고 내가 고3 때 이적 팬클럽 회장이었는데, 그때 팬클럽 회지라도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한컴 오피스 한글 프로그램으로 한 달 동안 회지를 만든 경험이 있었지. 그게 처음 책을 만든 경험이었어.


J: 무슨 내용으로 만들었어?

B: 이적 사진 넣고, 이력 넣고, 근황 넣고, 카페 회원들의 글도 담고 했지.


J: 맞아. 언니가 서울 팬클럽 최초의 회장님이었지.

B: (웃음) 응. 내가 그때 서울에 팬클럽을 처음 만들었지. 회지 만드려고 미리 돈을 받았어. 내가 회지를 만들 테니 보고 싶은 사람은 선입금을 하라고 해서 75만 원이 모였고, 100부를 충무로 인쇄소에 보내줬어. 콘서트에서 가까이서 찍은 사진도 인화해서 한 장씩 서비스로 끼워줬지. 한글로 책 만드는 게 엄청 오래 걸리고 힘들었어.

그런 경험이 있으니, 인디자인 프로그램을 배워보고 싶었지. 인디자인은 책 만드는 모든 과정을 간소화 시켜주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거야. 학교 다닐 때 책 만드는 알바도 하고 그랬어. 졸업해서 쭉 이 프로그램을 쓸 수 있게 출판사를 다니게 된 거야.


J: 맨 처음 취직한 곳은 어디였는데?

B: 유아물이 나오는 출판사. 그리고 영어교재 만드는 출판사에 갔지.


J: 교재쪽 출판물을 계속 했구나.

B: 응. 그래서 교재쪽 출판물 지겹지. 근데 지금 또 거기를 찾고 있네. 아무튼 교재 출판물 뒤에 박물관에서 관련된 인쇄물 만드는 일을 했지. 그러고 나서 우리가 같이 일한 곳에 들어간 거지.



12년 동안 한 여자만 사랑한 남자도 육아는 어렵다


J: 회사 그만두고 결혼하고 아이를 가졌잖아. 육아는 어때?

B: 엄마의 에너지가 중요한 것 같아. 아빠는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 잠시 보조해주는 거 같아. 엄마가 아이한테 주는 영향력이 큰데, 내가 힘들어하고 우울해하면 아기한테 가니까 그렇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 맨 처음에는 많이 싸웠어. 내가 혼자 낳은 것도 아니고, 근데 식사, 빨래, 청소까지 다 나한테 오니까 불공평하다고 느꼈지. 그래서 초반에 엄청 많이 싸우다가, 일요일 하루는 왠만하면 남편이 보라고 했고, 지금은 남편이 집에 있을 때는 자기가 보려고 하고 있어. 애기의 눈높이를 잘 맞춰서 놀아주더라. 그래서 애기가 아빠만 오면 자기가 놀고 싶은 장난감부터 찾아서 얼른 들고 아빠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놀아달라고 하더라고. 초반에는 이렇게 안 해서 힘들었는데, 조금씩 바뀌고 있는 중이지. 초반에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집안일을 안 도와줬을 때, 너무 힘들어서 이렇게 하면 너랑 같이 못산다라고 하면서 이혼하자고 많이 얘기했어.


J: 아니, 그런 초강수를.

B: 내가 남편이랑 12년을 연애하면서 단 한 번도 헤어지자고 말한 적이 없어. 그런데 결혼하고는 말하게 되네. 오히려 남편은 연애할 때 헤어지자고 한 5번 정도 얘기했는데, 결혼하고는 헤어지자는 말을 단 한 번도 안해. 내가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그렇게 무서운 말을 할 수가 있냐고 해.


J: 결혼 후에 변한 이유가 뭐지?

B: 결혼 후에는 가족이 되었으니 내 입장을 단호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 그럼으로 인해서 어쨌든 많이 바뀌게 되었으니까. 예전에는 “힘들다, 힘들다” 하면 내가 짐을 조금 덜어줄까 했는데, 지금은 힘들다, 힘들다 하면 “그건 아빠의 무게다.”라고 말하면서 가장의 무게에 대해 말해주지.


J: 아무래도 남자가 육아를 하는 건 여자의 그것과 다르지.

B: 응, 근데 이 인터뷰 왜 하는 거라고?


J: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태의 글로 적고, 그걸 보는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에서 시작했어. 독립잡지 인터뷰 같은 느낌으로 사는 얘기 들려줄 수 있을까.

B: 그래,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잖아. 그런 점에서 같은 감정을 느끼고 위로 받을 순 있겠네. 연예인이나 유명한 사람들도 다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도 한 집의 자식이고, 부모로 살면서 똑같은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것 같아.  

남편 얘기로 돌아가서 얘기하자면, 12년을 사귀였어도 이 남자에 대해 다 알지 못했다는 거야. 일주일에 한두 번 보고, 남자친구라고 해서 속속들이 알려고 하지 않았고, 상황에 보이는 그대로만 믿었지. 이 남자의 내면을 깊게 파고들지는 못해서, 결혼하고 나서야 알게 된 거지. 보여주는 그대로까지만 알면 된다고 생각했지.


J: 난 남자친구가 있으면 깊은 내면까지 알고 싶어. 집착과 집요함이 있지.

B: 나는 그렇지 않아. 나도 내 영역이 있고, 남편도 자기만의 영역이 있으니까 서로 그걸 지켰지. 넌, 그걸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야겠다.


J: 결혼하고 나서 알게 된 게 뭐였는데?

B: 결혼하고 나서 깜짝 놀랄만한 남편의 모습을 보았지. 게으른 편이야. 성격이랑 천성 자체가 그렇기 때문에 일찌감치 포기해버렸어.

근데, 하루는 시엄마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거야. 남편이 태어나서 제일 잘한 게 있다고 시엄마한테 얘기했는데, 그게 결혼이라고 했다는 거야. 시엄마는 자기가 낳아준 것에 대한 고마움보다 나를 만나서 결혼한 게 가장 잘한 거라고 얘기해서 내심 서운했다고 하더라고. 나한테는 그런 얘기는 안하지만 자기 엄마한테는 그렇게 말했대. 남편이 친구도 없고, 오로지 여자는 나만 아니까. 남편한테 가족은 오로지 나와 딸뿐이니까. 자기 가족만 지키겠다는 마음이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운이 좋은 여자의 연애담


J: 그런 남편, 처음에 어디가 좋았어?

B: 처음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때, 황토색 떡볶이 코트를 입고 온 거야. 그것만 안 입었어도...(진지) 아무튼 그때는 남편이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하얗고 예쁘게 생겨서, 첨에 내 눈에 딱 들어온 거야. 나는 좋아하면 들이대거든. 그래서 대뜸 이 남자한테 가서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지. 그랬더니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학생부에서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여의도 불꽃축제에 같이 가자고 문자를 보냈지. 그랬더니 거기까지 못가겠다는 거야. 왜 못가냐고 했더니, 차비가 없어서 못 가겠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얘기 나를 진짜 싫어하는구나 싶었지. 대학생이 차비가 없다고 하니까 말이 안 되잖아. 그래서 바로 포기를 했지. 포기는 빨라 내가. 그리고 바로 다른 남자를 사귀었지.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 이 남자의 목표는 여자를 사귀지 않는 거였어. 당시에 게임 개발을 하고 있었는데, 그게 큰 목표였던 거야. 그때 개발한 게임이 전국 대회에서 금상도 타고 그랬어.


J: 그랬는데, 어떻게 사귀게 되었어?

B: 게임 때문에 날 밀어낸 거지, 내가 싫었던 건 아니었던 거지. 내가 잠깐 다른 사람이랑 사귈 때 엄청 상처를 받았대. 사귄 사람이랑 헤어지고, 결국 만나게 됐어.   



살림꾼, 복덩이 며느리


J: 요새 카페 운영은 어때?

B: 큰 변화는 없지만 지금은 운영은 되고 있어. 상황은 똑같지만 남편이 결혼 전과 다르게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가짐이 바뀌여서 그런지 단골손님이 늘었어.


J: 요즘도 경품 이벤트 해?

B: 잡지 독자 엽서로 신청하거나 남편이 “이거 갖고 싶은데 이벤트 좀 해봐.” 하면서 경품 이벤트 가져올 때 해. 너도 알다시피 내가 당첨 확률이 높잖아. 이번에는 울 아기 전집+세이펜 받았어. 99권. 독자엽서에 10분 투자하고 받았지.


J: 지금까지 당첨된 경품 중에 가장 큰 게 뭐야?

B:  Adobe에서 보내준 쿄토 여행. 경비를 다 대줬으니까. 신제품 나와서 한 이벤트였는데, 2박 3일 350만 원 정도 되는 여행이었어. 그 다음에는 다이슨 청소기. 경품 중에 1등이었는데 그게 딱 되더라고. 그 밖에 화장품 주는 경품은 너무 쉽게 되고. 뭐, 너무 많아서...


J: 살림꾼이야. 운이 참 좋아.

B: 내가 경품 되면 단체 톡방에 얘기하거든, 그럼 시엄마가 그래. 역시 복덩이가 들어왔다고. 손녀까지 낳아주고, 고맙다고 그래. 시댁에서는 정말 나한테 잘해주셔. 시댁에서는 그냥 내 존재 자체를 감사하고, 늘 미안해하시고 그래.

나한테 복덩이라고 하지만 나 역시 남편이랑 가장 잘 맞는 사람인 거 같아. 가장 잘 맞는 사람과 결혼한 것 같아. 상충되는 부분이 있지만, 극복해나갈 수 있고 앞으로 그렇게 살아가야지.


J: 내 20대 때 꿈이 사랑하는 사람 한 사람을 만나 그 사람과 오랫동안 지지고 볶는 결혼 생활하는 거였는데. (웃음) 오래도록 한 사람과 만남을 이어나가는 건 좋은 거 같아. 앞으로도 쭉 행복한 결혼 생활 되어요.  

B:  (웃음) 그래. 너도 곧 만날 거야.



인터뷰: 사당 

날짜: 20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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