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 연습장
거절에도 온도가 있다
나는 오래도록 ‘예스맨’이었다.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 못내 미안했고, 상대방이 실망할까 봐 조심스러웠다. 누가 부탁을 하면 고개를 끄덕였고, 모임이나 행사에 불러주면 마지못해 따라갔다.
그렇게 하루가, 한 달이 되고 또 몇 년이 흘렀다. 어느 날 빽빽한 약속들 속에서 문득 생각했다.
‘이 많은 약속 중 정작 나를 위한 시간은 어디에 있을까?’
그 순간 나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아니요’라고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거절은 단순히 입술로 “안 돼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라는 작은 세계에 경계를 세우는 일이다.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기는 첫 번째 약속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나는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지인의 이야기다. 믿는 사람들과 돈을 조금씩 맡기고 서로 순서를 정해 돌려받는 작은 약속의 모임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권유와 “다들 하고 있어요”라는 말에 마음을 열었다고 했다.
매달 정해진 금액을 네 차례 입금했지만, 결국 그 모임은 실체가 없는 모임이었다.
돈도, 사람도, 관계도 사라졌다.
스스로를 원망하며 지인은 말했다.
“내가 너무 쉽게 믿었나 봐요.”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나도 사람을 쉽게 믿는 편이다.
그 순수함이 때로는 나를 상처 입히기도 한다.
나는 부탁을 받으면 습관처럼 “네”라고 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자료를 찾고 방법을 익히고 결국 해냈다.
상대방의 고마운 얼굴을 보는 것이 좋아서였다.
그러나 어느새 내 하루는 타인의 요청으로 가득 메워졌고, 나는 조용히 고갈되어 갔다.
세상에는 나와는 반대인 사람들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니요”를 먼저 말하고, 타인의 호의를 경계한다.
그들은 손해 보지 않으려 애쓰며, 항상 계산적이고 신중하게 거리를 유지한다.
가끔 그런 사람들을 보면 표정이 굳어 있고, 사소한 말에도 시비를 거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런 태도 덕에 원치 않는 책임이나 불필요한 부탁을 피해 가는 이점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들에게 차갑고 까다롭다는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예스맨은 자신을 희생하며 관계를 지키려 하고, 그로 인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반면 부정맨은 자신을 지키지만, 인간관계에서 소외되거나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는 그 둘의 경계 어딘가에서, 조금씩 나만의 선을 지키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
아직도 그 말들은 입술 끝에서 오래 맴돈다.
“이번에는 어렵겠어요.”
“죄송하지만 도와드릴 수 없어요.”
그렇게 어렵게 꺼낸 한 마디가 나를 숨 쉴 수 있게 한다.
거절은 차가운 단절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더 오래 타인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따뜻한 경계였다.
나는 오늘도 아주 천천히, 나를 위한 작은 거절을 연습한다.
누군가의 기대에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기로 한다.
거절은 끝이 아니라, 더 진실한 관계로 나아가는 시작임을 이제는 안다.
언젠가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아니요”를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나라는 세계를 지켜주는 가장 사적인 선언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