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끝나지 않은 경고

사람답게 살자

by 빡작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경고

토요일 오후, 문학기행의 일정표에 적힌 ‘장흥 석대들 동학농민기념탑’.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간 들판은 생각보다 무거운 바람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도착한 그곳은 문이 닫혀 있었다. 시계는 아직 5시가 되지 않았고, 일정상 충분히시간 맞춰 도착했지만, 전시장은 굳게 닫혀 있었다. 누군가의 퇴근이 역사의 문까지 함께 닫아버린 것 같았다.

그날 동행한 이들과 함께 담장 밖을 천천히 걸었다. 무언의 목소리로 다가왔다. 안타까움, 분노, 각성의 숨결이 들판에 고요히 내려앉아 있었다. 그들은 누구였을까. 왜 싸웠고 무엇을 바랐을까. 동학은 단순한 민란이 아니었다. 그건 “사람답게 살자”는 절규였고, 탐욕과 억압에 맞선 가장 조용하고 가장 강렬한 외침이었다.

장흥 동학 농민혁명기념관은 동학혁명의 4대 격전지 중 최후 격전지가 바로 장흥 석대들이다. 석대들 전적(戰績)은 정읍 황토현 전적, 공주 우금치 전적, 장성 황룡 전적과 더불어 동학농민혁명의 4대 전적지로 평가된다. 특히 동학농민혁명의 최후의 보루였던 석대들 전적은 공주 논산 전투 패배 이후 꺼져가던 혁명의 불씨를 되살려낸 역사적 장소이다.

기념관 입구의 석상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으로만 보던, 나팔을 입에 문 병사의 조형물이었다 그날따라 유독 크게 보였다. 돌로 만들어진 입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대로 괜찮은가? 너는 지금 깨어 있느냐?“

기념관에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은 오히려 지금 마주한 소중한 순간들을 더 깊이 느끼게 해 주었다. 가끔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이나 현재 경험하고 있는 다른 아름다움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그리고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 공간에 대한 호기심, 들어가 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수필로 피어난다. 기념관은 인터넷으로 봤다. 전시실, 체험전시실, 영상관, 특별전시실, 카페테리아로 되어있고 박진화 화가의 ”사인여천“이라는 작품도 스마트폰으로 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담장 밖에서 본 풍경은 더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 이토록 빨리 닫혀버린 공간. 우리는 투덜거렸지만, 곧 침묵 속에서 각자의 감정에 잠겼다. 혹시 우리도 누군가의 외침을 너무 일찍 닫아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날 들리지 않았던 설명 대신, 나는 바람 소리를 들었다. 바람이 들판을 스칠 때, 그 속엔 나팔 소리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경고였다. 살아야 했고, 바꿔야 했고, 일어나야 했던 누군가의 절박한 외침이었다.

동학농민군의 외침은 시대를 넘어 여전히 메아리치고 있다. 나팔은 울리고, 깨어난 자는 걸어간다. 그 울림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그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단 한마디가 울렸다. 경고. 그날 울려 퍼졌던, 하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소리. 역사관의 문은 닫혔지만, 나의 내면에서 문 하나가 열렸다. 그곳에서 나는 들었다. 조용하지만 단호한 외침을.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내 안에서 깨어나야 하는 감각이다.

그날 들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경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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