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잘 끝났어요

by 빡작가

엄마, 잘 끝났어요


어제의 기저귀 가방 대신 오늘은 마이크를 들었다. 삶이 멈춘 적은 없었지만, 달려가는 방향이 바뀌었을 뿐이다. 아이들의 젖병을 씻고, 잠든 얼굴을 토닥이던 손이 이제는 조명을 향해 올려졌다. 장난감이 굴러가던 거실은 언젠가부터 대사가 흐르는 무대의 연습장이 되었고, 밤마다 아이들을 재운 뒤 남은 시간이 연습실로 이어졌다.

무대의 막이 오르기 전, 딸은 잠시 무대 뒤 커튼에 기대어 숨을 골랐다. 손끝은 떨렸고, 마른 입술 위로 조명이 스며들 듯 긴장감이 번졌다. 그 순간, 엄마였던 시간과 배우였던 시간이 교차했을 것이다. 아이의 손을 붙들고 유치원 문을 나서던 발걸음과,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발걸음이 겹쳐졌다. 긴 공백 끝에 다시 서게 된 무대는, 단순히 공연장이 아니라 삶의 또 다른 장이 되어 있었다.

딸은 결혼 후 10년 동안 오직 육아만 하며 살았다. 무대는 늘 마음 빛나고 있었지만, 그 불빛을 붙들 만큼의 여유는 없었다. 그러나 기회가 찾아왔을 때, 딸은 주저하지 않았다. 어린이 만화 시리즈로 히트 쳤던 것이다. 이 뮤지컬은 해마다 다른 대본과 배역으로 아이들을 만난다. 지난 시즌에는 악당이 되었다. 아이들이 객석에서 야호하고 환호하던 순간, 딸은 더 큰 몸짓으로 어둠을 흔들며 무대 위를 장악했다. 그 환호는 단순한 박수가 아니라, 다시 자신을 불러 세우는 목소리처럼 들렸다.

이번에는 다른 배역을 맡았다. 이야기의 숨을 이어주는 시계 토끼. 귀를 쫑긋 세우고, 장면과 장면 사이를 가볍게 건너며 아이들의 시선을 붙잡아 주는 존재. 전보다 더 부드럽고 유연하게,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게 무대를 메웠다. “노래 잘한다, 연기 잘한다.” 퇴장 뒤 복도에서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들이 앙코르처럼 그녀의 등을 밀었다. 무대의 커튼이 닫히는 순간, 딸의 눈빛은 더 깊어져 있었다.

무대에 서 있는 딸을 바라보며, 나 또한 젊은 날 짧게 스쳤던 꿈들을 떠올린다. 배우가 되기를 꿈꾸었던 적도 있었다, 빛나는 순간을 향한 동경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일찍 가정을 꾸렸고, 무대 대신 부엌의 불빛 아래에서 나의 장면을 써 내려갔다. 세월은 그렇게 지나갔지만, 딸의 무대는 내 안에서 꺼지지 않았던 불씨를 다시 지펴 올렸다.

막이 내렸다. 공연이 끝난 직후 전화가 울렸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떨림이 없었다. “엄마, 잘 끝났어요.” “그래, 수고했다.” 그 짧은 대화 뒤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긴 장면들이 서 있었다.

유치원 준비물을 챙기며 새벽부터 분주히 움직이던 발걸음, 공연장으로 뛰어갔던 날들, 미처 화장을 다 지우기도 전에 아이들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잠을 재우던 밤. 연습실의 형광등 아래에서 대본을 붙들고, 자신에게 묻고 또 묻던 그 고단한 표정들.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분명 존재했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 모든 날의 끝에서야 비로소 “잘 끝났어요.”라는 말이 태어났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불 꺼진 거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뛰놀던 흔적이 남아 있는 빈 공간은 묘하게 따뜻했다. 오늘의 소리는 고요해졌는데, 이상하게 집 안의 공기는 한 톤 더 밝아진 듯했다. 딸이 토끼가 되어 이어 붙인 이야기가 무대 위에서만 빛난 게 아니라, 우리 집에도 반짝임을 데려온 것 같았다.

딸과의 짧은 대화에서 많은 문장이 숨어있다. 네가 그동안 붙들었던 믿음과 연습, 아이들의 무게와 노래의 날개,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 드린 기도의 시간. 나는 그것을 말로 다 전할 수 없기에 글로 전한다.

무대는 끝났지만, 삶은 계속된다. 세 아이의 엄마가 무대 위에서 토끼가 되어 달리면, 객석의 어린이들은 웃음을 터뜨리고, 엄마는 믿음의 고리를 단단히 한다. 무대와 집, 신앙과 일, 사랑과 노동이 하나의 곡처럼 이어져 흐른다. 나는 그 곡의 끝에서 조용히 박수를 친다.

“엄마, 잘 끝났어요.”

“그래, 수고했다.”

그 짧은 대화가 오늘 우리 집의 커튼콜이다. 내일이면 다시 아이들이 엄마를 찾고, 딸은 일상의 분주함 속으로 뛰어들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기도로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끝남이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지는 것을 안다. 막이 내릴 때마다 삶은 한 장 더 열린다. 그리고 무대 위의 딸과 무대 밖의 우리가 함께 써 내려가는 이야기는, 여전히 계속된다.


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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