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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욱 Mar 30. 2022

너무 연하고 부드러워 파괴할 수 없는 마음

우리가 잃어버린 눈으로 투명하게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는 / 시인 이승일

지적장애가 있는 그와는 대화를 길게 이어나갈 수 없었다. 동행한 어머니 고혜영 씨가 그의 입이 되어 그가 지은 시와 그가 찍은 사진에 얽힌 내력을 들려주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그에게는 당연한 과정이 아니었다. 지적장애를 지닌 많은 이들처럼 말과 글은 획득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소통 수단이었다. 그래서 책을 두 권째 펴낸 작가라는 성과는 그가 넘어온 벽의 높이만큼이나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올해도 멈추지 않고 달려온 그의 이야기를 어머니의 목소리로 만났다.     


편견일 수 있으나 지적장애라서 글쓰기는 물론이고 글 읽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그런데 이미 책을 두 권째 펴낸 시인입니다.     

고혜영 제주도에는 특수교육 기관이 별로 없었어요. 당시는 언어 치료를 받으려면 2년을 대기해야 했고, 그나마도 1년밖에 교육을 못 받았어요. 승일이가 공적 기관에서 특수교육을 받은 기간은 딱 1년입니다. 그것도 2년을 기다려서요.     


몇 살 때인가요?     

고혜영 대여섯 살 때입니다. 그 후부터는 순전히 엄마 몫이었죠. 제가 직장을 다니면서 선택한 방법은 책이었습니다. 당시 신문에서 제 눈에 들어온 한 줄이 “태아부터 치매 노인까지 책을 읽어주면 좋다. 잠자기 전에 아빠가 책을 읽어주는 5분이 자녀에게 가장 좋다”였어요. 그래서 승일이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저희가 맞벌이 부부라서 아이를 맡아줄 분이 필요했는데, 독서지도사 선생님을 구해서 그분에게 아이가 자든 무엇을 하든 간에 책만 읽어주라고 했어요. 그렇게 10년을 했어요.     


주로 어떤 책을 읽어주셨나요?     

고혜영 어렸을 때는 당연히 무슨 내용인지 잘 못 알아듣습니다. 그래도 예의를 가르치기 위해서 《명심보감》, 《채근담》 같은 동양 고전을 읽어줬습니다. 그다음에 사람의 심리를 알려주기 위해서 소설을 읽어줬고요. 그다음에는 지혜를 가르치려고 각 나라 민화를 읽어줬습니다.

장애아라도 저 밑에 본능은 남아있어요. 어쩌면 동물적이고 순수한 본능에 가깝죠. 그런데 그 본능을 표현하고 사회적으로 소통하는 부분이 손상된 겁니다. 사회에서 같이 살아갈 수 있는 관계 면에서 부족한 겁니다. 승일이도 사회 속에서 살아야 하니까 그걸 책을 통해 배운 거예요.    

 

무척 길고 지난한 작업이었을 것 같습니다.     

고혜영 놀라운 것은 3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니까 아이가 말하는 게 달라졌어요. 10년이 지나니까 텔레비전을 보면서 이야기의 앞뒤를 파악해요. 눈만 봐도 알고, 음악에 담긴 감정을 이해해요. 이게 소설의 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신문에 연재되는 동시를 제가 수첩에 스크랩해두었다가 승일이한테 읽게 시켰어요. 왜냐하면 은유를 몸에 익혀야 하니까요. 그리고 시는 낭송이잖아요. 승일이 발음이 어눌하니까 짧은 글로 연습도 시킨 거예요. 저는 모든 게 치료였어요.     


잠시만요남이 읽어주는 책만 들은 게 아니라본인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건가요?     

고혜영 승일이가 글도 모르고 대소변도 잘 못 가려서 초등학교 입학을 늦췄거든요. 그 시기에 어느 날 아이를 잃어버렸어요. 당시는 삐삐를 쓰던 시절이라서 매일 전 가족이 나서서 아이를 찾는 게 일이었어요. 그런데 하루는 밤 9시가 됐는데도 못 찾았어요. 겨울이라 날도 춥고 깜깜했어요. 교통사고라도 났을까 싶어 경찰서에도 연락하고 애태우고 있는데 승일이가 혼자 집을 찾아서 왔어요. 어떻게 찾아서 왔냐고 혼내니까, 가족끼리 갔던 노래연습장에서 이 길 저 길로 해서 집으로 왔다고 해요. 알고 보니 엄마 아빠가 없을 때 노래연습장에서 혼자 노래를 한 거예요. 노래연습장 화면에는 자막이 나오잖아요. 노래를 먼저 듣고 그에 맞춰서 자막을 읽는 거예요. 그런데 그 집에서 아이가 매일 온다고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하루에 5천 원씩 달아 놓고 아이가 가면 노래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죠. 그러면서 글을 깨쳤어요. 글을 깨치니까 학교에 보내야겠다 싶어서 3년 늦게 초등학교에 입학시켰죠.     


승일이도 대단하네요그런데 시가 짧은 글이라서 읽기는 좋지만워낙 함축적이라서 어려워하지는 않던가요?     

고혜영 아무래도 책을 읽어준 지가 10년 가까이 돼서 그런지 어릴 때부터 이상한 표현을 가끔 했어요. 제가 퇴근하기 전까지는 승일이가 혼자 있어야 해서 언젠가 “밖에 눈 오니까 문 잘 닫고 있어”라고 했는데, “엄마, 눈들이 싸우고 있어요”라고 하더라고요. 제주는 바람이 세니까 그렇게 보인 모양이에요. 그런데 듣고 보니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또 한번은 “고추가 철봉을 해요”라고 해요. 텃밭에 고추가 매달린 걸 보고 그렇게 말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물었죠. “승일아, 고추가 철봉을 하는데 지금 쉬고 있니, 아니면 올라가 있니?” “지금 쉬고 있어요”라고 대답하더라고요. 팔을 늘어뜨리고 있다면서요. 자기가 보고 경험한 것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점점 자연으로 데리고 가서 많은 것을 보여줬어요.      


그동안은 책을 통해 계속 받아들이기만 하다가 점점 자기표현을 하네요.     

고혜영 자연 속에서 그 표현을 더 하도록 했어요. 주말이면 나갔거든요. 제가 “저 억새는 왜 심겨 있을까?”라고 물으면, “여름을 쓸어버리려고요”라고 해요. “아까 하늘에 뭉게구름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네. 어디로 갔을까?”라고 하면, “하늘이 마셔버렸어요”라고 하고요. 그런 표현들이 계속 나오니까 기록해두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먼저 관찰일기를 쓰려고 글쓰기를 시작했죠. 저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이가 직접 글을 써도 좋겠다고 하셔서 제가 배운 방법을 승일이에게도 적용했죠.     


승일이가 읽어주는 책을 듣기만 하다가 글을 깨치고 드디어 글쓰기까지대단한데요.     

고혜영 선생님이 집 마당에 뭐가 있냐고 물으셔서 단풍나무가 있다고 하니까, 그 단풍나무를 보고 매일 글을 쓰라고 했어요. 승일이도 같이 그 앞에 가서 앉았어요. 아까 이야기했듯이 승일이는 신문에서 스크랩한 동시를 읽고 있었고요. 제가 “눈을 감고 가만히 들어봐. 무슨 소리가 들리고 무슨 냄새가 나는지 볼까?”라면서 오감을 여는 이야기를 했더니, 승일이가 “나무가 떨고 있어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끝말놀이가 시작됩니다. “떠는 건 뭐야?” “두려움이에요.” “두려움은 뭔데?” “학교 폭력이요.” 저는 깜짝 놀랐죠. 계속 이어갑니다. “누가 그랬는데? 어떻게 했는데?” 그러니까 자기를 때린대요. 엄마하고 이렇게 주고받는 거예요. 그다음에 승일이가 글을 쓸 줄 아니까 글로 써보라고 해요. 그대로 쓰면 승일이의 시가 됩니다. 그렇게 해서 첫 시집 《엄마, 울지 마세요. 사랑하잖아요》가 나왔어요.     


승일이가 무척 아팠을 자기 속을 글쓰기로 드러내고 나눌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고혜영 승일이가 글을 써서 그 마음을 알 수가 있었어요. 생선이 싫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몰랐어요. 그런데 이런 글을 썼어요. “밥상 위에 올라 온 생선이 눈을 뜨고 나를 쳐다봤다. 그래서 나는 생선을 싫어한다.” 학교 폭력도 마찬가지예요. 그때 승일이가 당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마음 상태가 어떻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 남들은 이걸 문학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어쩌면 사회와의 소통이고 치료예요.     


그렇게 2008년에 첫 시집이 나오고, 2018년에 낸 두 번째 시집 직진 버스 타는 구름에서는 승일이가 시도 쓰고 사진까지 찍습니다.     

고혜영 첫 책을 내고 나서 승일이 오른쪽 눈에 망막박리가 왔어요. 그런데 인지가 떨어지니까 양쪽 눈이 다 잘 안 보이는 때가 돼서야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지금 한쪽 눈은 안 보여요. 일주일에 한 번은 서울에 가서 안압 체크를 해요. 그때 눈이 안 좋아져서 자연으로 데리고 가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냥 가면 잘 안 가니까 뭔가 수단이 있어야 해서 카메라를 들고 나갔어요. 그런데 3년 정도 지났는데 저만 사진을 찍고 있는 거예요. 승일이는 따라만 다니고. 제가 사진에 너무 몰입했던 거죠. ‘승일이 때문에 시작한 건데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어요. 그때 제 카메라를 승일이한테 줬어요.     


3년을 따라다니다가 드디어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거네요.     

고혜영 3년 만에 카메라를 줬더니 저랑 똑같이 사진을 찍어내는 거예요. 배우지도 않았는데. 심지어 찍어내는 사진이 달랐어요. 복잡하게 어그러지고 엉킨 사진, 서너 개 물건이 있으면 그중 하나를 외롭게 찍은 사진, 쓰레기가 버려져 있는 사진. 제가 피사체를 보고 울었어요. 이 아이 마음속에 있는 소회와 찌그러진 상처와 복잡함, 그 세 가지가 그냥 피사체에서 보였어요. 두 번째 책은 길가에서 찍은 그 사진들과 시를 모은 거예요.

그전까지는 그냥 내 아들로 봤는데 그 속에는 찌그러지고 상처 난 마음이 있었어요. 저도 모르게 승일이를 구박도 했을 테고 짜증도 냈겠지요. 그것들이 오롯이 남아서 피사체로 나왔어요. 그래서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이런 작품을 모아서 결과물로 묶으면, 하나의 껍질을 벗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꺼풀을 벗는 거예요.     


그게 승일이의 힘 같아요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투명하게 드러내니까 우리가 그동안 간과하거나 어쩌면 회피했던 진실을 직면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세 번째 책도 기대가 되는데요.     

고혜영 가족을 주제로 한 책이에요. 제목은 《가족사진》입니다. 올해 쓴 시를 포함해서 시 100여 편과 사진 30여 편이 실립니다. 워낙 숙제처럼 일주일에 세 편씩 계속 시를 쓰니까요.     


승일이가 올해 작업하는 데 이번 장애예술인 창작준비금 지원사업이 도움이 됐는지도 궁금합니다.     

고혜영 결과물로 나오는 책만 눈에 들어오기 쉬운데, 거기까지 가려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특히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그 시간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해요. 비장애인하고는 학습하고 숙련되는 속도에서 어쩔 수 없이 차이가 납니다. 그만큼 예술 창작을 ‘준비’하는 데 더 많은 노력과 자원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번 창작준비금이 더 단비 같았어요. 그리고 지원 대상에 선정됐다는 사실이 아이 자존감에도 좋은 영향을 주었고요.     


매달 보내주시는 활동보고서에 창작준비 과정을 자세히 써주셔서 놀랐습니다.     

고혜영 창작준비가 멀리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상이 창작의 바탕이니까요. 여름에는 5시, 겨울에는 6시에 일어나서 아침 산책을 해요. 9시부터 2시까지는 바이올린을 배웁니다. 아무래도 또래와 어울릴 기회가 적어서 장애인 오케스트라에 들어갈 연습을 하면서 그 시간을 가집니다. 오후에는 늘 가는 카페에 가서 같은 자리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집에 돌아가 쓴 글을 컴퓨터에 옮깁니다. 주말에는 야외로 나가죠. 오감을 열어서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고, 꾸준히 글을 쓰면서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냅니다. 이게 늘 반복되는 승일이 일상인데, 모두 창작활동의 바탕이 됩니다.     


승일이한테도 하나 물어볼게요올해 한 것 중에서 뭐가 제일 재미있었어요?     

이승일 바이올린이요.     

고혜영 최근에 시작한 활동이고 친구들이 있으니까요. 제가 실패한 것은 승일이한테 또래를 만들어주지 못한 거예요. 제가 같이 붙어있으면서 숨 쉴 공간이 너무 없었어요. 저도 숨을 쉬려면 아이를 분리해야 했는데 지금까지는 그러지 못했죠. 계속 좁혀와서 저도 숨이 막히고 아이도 숨이 막혔어요. 틈을 만들어서 바람이 통하게 해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 품을 떠나야 하는 날이 오겠지요.     

고혜영 승일이에게 친구가 없다는 고민을 하면서 창작 공간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싶었어요.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고 승일이와 비슷한 아이들이 드나들 수 있는 그런 공간이요. 몇 군데 자리도 보고 건물도 보면서 구체적으로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적은 비용이 아니니까 개인이 추진하기는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장애인을 위한 공간, 가령 수영장을 만들어도 비장애인이 같이 사용하면서 처음 의도가 희석될 때가 많아요. 장애인만 가면 운영이 어려우니까 비장애인도 받는데, 그러다가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오는 걸 꺼리니까 주객이 전도돼요. 그런 면에서 좀 아쉽죠.     


그런 공간이 생기면 승일이한테 그랬듯이 예술이 장애 아동들에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고혜영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방법은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이든 그림이든 예술은 사람의 감정과 본능을 건드려서 치유하게 만들어요.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데, 이 아이들은 그 부분이 손상된 거예요. 하지만 저 밑에 있는 동물적이고 순수한 본능은 살아 있거든요. 예술은 그걸 건드리는 일이거든요.

저는 제주도에 특수교육 관련 기관이나 선생님이 부족해서 책을 선택한 거죠. 10년 넘게 했더니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고요. 저는 예술을 권하고 싶어요. 그리고 기관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지만, 특수교육비가 일반교육비에 비해 서너 배 비싸거든요. 오히려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읽히고 자연으로 나가는 거예요. 자연은 모든 걸 받아주니까요.     


장애 아동도 아동이지만 그 부모들에게 승일이가 해나가는 모습은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고혜영 부모들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죠. 저도 처음에는 정말 고통스러웠어요.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천벌을 받나!’ 그랬는데 자식이니까 딛고 일어나야 했어요. 일어났다가도 다시 지쳐서 쓰러지고 좌절하고, 그 반복이 엄청났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느낀 건 ‘내 안에 벽이 있다’였어요. 저는 허들 경기하듯이 계속 그 벽을 넘는 사람이었어요. 벽 앞에서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어요. 쓰러지느냐? 넘느냐? 드릴로 구멍을 뚫든 망치로 부수든 어떻게 해서든 벽을 넘으면 사람들은 ‘승화’라고 하고, 벽 앞에서 무너지면 ‘좌절’이라고 하는 것 같아요.

넘고 또 넘는 반복을 계속하다가 어느 날 너무 지쳐서 딱 포기했어요. 내가 포기하니까 승일이도 같이 뒷걸음질 치더라고요. ‘내가 기분이 좋아야 이 아이도 기분이 좋구나’ 싶어서 이 아이를 무한대로 나갈 수 있게 내 안에 있는 벽을 허물었어요.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늘 웃고 다녔어요. 회사 직원들은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데 왜 저렇게 웃고 다닐까’ 싶었겠지만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어요. 제게는 승일이밖에 없었으니까요. 뒤돌아서본 적이 없고 아파서 누워본 적이 없어요. 아파서 누울 시간이 없었어요.


그야말로 30년 넘게 고군분투하며 여기까지 오셨습니다.     

고혜영 이 아이를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잖아요. 처음 이 아이가 주어졌을 때 찰흙 한 점을 받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찰흙 덩어리에 코를 붙이고, 눈을 붙이고, 귀를 붙이고, 맨 나중에 숨을 불어 넣은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온 게 여기까지예요. 승일이도 잘 따라와줬어요. 처음에는 고통과 선물이 같이 온다는 사실을 잘 몰랐죠. 아들 승일이가 제게는 스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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