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 살았던 17년은 문장과의 지독한 싸움이었다. 매일 아침 마주하는 날 것의 텍스트들을 독자가 읽기 좋은 최상의 상태로 가공해 내보내는 일. 그 과정에서 얻은 직업병은 퇴사 후에도 여전하다.
길을 걷다 마주친 간판의 비문(非文)이 눈에 밟히고, 누군가 정성껏 쓴 글의 어색한 논리 구조를 보면 손끝이 간지러워진다.
그래서 첫 사업의 또 다른 줄기로 ‘교정·교열·윤문’ 서비스를 선택했다.
많은 이들이 글쓰기를 어렵게 생각하지만, 사실 더 무서운 것은 ‘잘못 쓰인 글’이다. 사소한 오탈자 하나, 맞춤법 실수 하나가 공들여 쌓은 브랜드의 신뢰도를 한순간에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기자 시절, 내 바이라인이 박힌 기사에 오자가 나가는 것은 치욕이었다. 그 결벽에 가까운 팩트 체크와 꼼꼼함은 이제 고객의 글을 향한다.
틀린 글자를 바로잡는 것을 넘어 문법적 오류를 걷어내고 문장의 기본을 바로 세우는 작업. 그것은 고객이 세상에 내놓는 목소리에 최소한의 품위를 입히는 과정이다.
단순히 틀린 곳을 고치는 것이 ‘수리’라면 윤문은 ‘수선’이자 ‘리모델링’이다. 비즈니스 현장에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졌지만 이를 글로 표현하는 데 서툰 이들이 많다. 나는 그들이 투박하게 던져놓은 단어들 사이에서 핵심 메시지를 찾아낸다.
문장의 순서를 바꾸고, 불필요한 수식어를 걷어내고, 단어의 온도를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글은 전혀 다른 생명력을 얻는다.
전문 용어가 난무해 읽히지 않던 글을 대중의 언어로 번역하고, 논리가 꼬인 글을 매끄러운 강물처럼 흐르게 만드는 일은 꽤나 흥미롭다.
내 기사뿐 아니라 후배들의 글을 데스킹하며 수없이 반복했던 이 작업은 이제 내 사업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됐다.
조직을 나와 1인 사업가로 서보니 모든 사업가의 고민은 결국 ‘어떻게 나를 제대로 알릴 것인가’로 귀결된다는 것이 선명히 보였다. 그 소통의 최전선에는 늘 ‘글’이 있다.
나는 ‘글 수선공’에 가깝다. 고객이 전하고 싶은 진심이 거친 문장에 가로막혀 전달되지 않는 안타까운 상황을 해결해 주는 일. 기자 시절 쌓아온 예리한 시선으로 글의 군더더기를 도려내고, 그 안에 담긴 본질을 가장 빛나게 다듬어주는 작업에서 나는 새로운 효능감을 느낀다.
이미 수만 번의 마감 시간을 견디며 문장을 갈고 닦아온 시간이 내 안에 축적돼 있다. 이제는 누군가의 든든한 조력자가 돼 그들의 문장이 세상을 향해 가장 당당하게 뻗어 나갈 수 있도록 내 오랜 기술을 기꺼이 보탤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