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 입자에서 파동으로: ‘왓칭’이 준 안도감

by 박배

부모님을 모두 떠나보내고 난 뒤 세상의 소리는 한꺼번에 소거된 듯했다. 상실감은 단순히 마음의 아픔이 아니라 물리적인 무게로 다가왔다. 어깨를 짓누르는 적막과 그 밑바닥에 고인 무기력. 그렇게 수년을 ‘슬픔 그 자체’가 돼 살았다.


기자로서 수많은 사건과 타인의 삶을 관조해왔지만, 정작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이 거대한 감정 앞에서는 관찰자적 태도가 쉽게 작동하지 않았다.


그러다 김상운의 저서 ‘왓칭’(Watching)을 만났다. 이 책은 “힘내라”는 무책임한 격려나 “시간이 약”이라는 식상한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대신 차갑고도 명확한 양자역학의 원리를 빌려와 내 마음을 다스릴 ‘시선’의 전환을 제안한다.


책을 덮고 났을 때, 기이하게도 수년간 나를 짓누르던 무기력이 한결 가벼워졌음을 느꼈다. 그 해방감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나’와 ‘감정’ 사이 한 뼘 여백이 생기다


우리는 흔히 “나는 슬프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왓칭’은 이 문장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한다. 슬픔은 내가 아니며, 단지 내 안에 머무는 에너지의 파동일 뿐이다.


책에서 강조하는 ‘관찰자 효과’는 내 감정을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순간 그 감정이 나로부터 분리돼 힘을 잃는다는 원리다.


기자로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현장과 거리를 두던 그 감각을 내면으로 돌려보았다. “나는 무기력하다”가 아니라 “내 안에 무기력이라는 덩어리가 앉아 있구나”라고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금씩 슬픔과 나 사이에 숨 쉴 수 있는 ‘여백’이 생겼다. 감정에 잡아먹히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바라보는 ‘관찰자’로서의 주도권을 되찾는 순간이었다.


상실의 빈자리는 ‘허무’가 아닌 ‘에너지’였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집, 그 텅 빈 공간은 내게 ‘부재’와 ‘결핍’의 증거였다. 하지만 이 책은 우주의 99%를 차지하는 ‘텅 빈 공간’이 사실은 무한한 지능과 에너지를 품고 있는 장(Field)이라고 말한다.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몸을 구성하는 미립자들은 끊임없이 생멸하며 우주와 연결돼 있다. 부모님은 육신이라는 틀을 벗어났을 뿐, 그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이 공간의 일부로 존재한다는 논리.


이 지적인 해석은 내게 종교적인 구원보다 더 큰 안도감을 줬다. 상실은 단절이 아니라 관계의 형태가 입자에서 파동으로 변한 것이라는 깨달음이 내 마음의 체증을 내려가게 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변화는 시작된다


애쓰지 않아도 좋다는 말. 이 책이 준 가장 큰 위안은 이것이다. 무기력을 떨쳐내기 위해 발버둥 칠수록 무기력은 더 견고해진다. 하지만 그저 가만히 지켜보는 ‘왓칭’의 행위 자체가 미립자의 움직임을 바꾸고 현실을 변화시킨다.


수년간 나를 괴롭혔던 무기력은 어쩌면 내가 제대로 바라봐주지 않아 내면에서 응어리진 채 고여있던 에너지였을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매일 내 내면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모니터링한다. 올라오는 감정들에 억지로 이입을 하지 않고, 그저 ‘지금 이런 상태구나’라고 메타데이터를 입힌다.


감정은 내가 머물고 있는 공간의 배경음악 같은 것이라 생각하니, 감정의 부침이 심해져도 일상의 리듬을 잃지 않게 됐다.


상실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그 슬픔보다 훨씬 거대한 존재라고, 그저 당신의 마음을 가만히 ‘왓칭’해보라고, 관찰하다보면 당신을 짓누르던 무게는 빛의 속도로 가벼워질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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