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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Oct 08. 2024

당신의 생일을 축복합니다. 그저 이 편지로

자신만 아는 이야기, 그 엄청난 이야기

사랑하는 어여쁜 아내 여니에게 07


소중한 당신,

오늘은 당신이 세상과 마주한 날입니다. 올해도 커다란 케이크도 거창한 선물도 없이 그저 초라한 편지 한 장 이렇게 드립니다. 햇살처럼 따사롭고 샘물처럼 드맑게 내 세상을 가득 채워주는 당신의 생일을 진심을 다해 축복합니다.


올해만 지나면 당신 생일엔 풍족한 가을이 노래 불러 주길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의 힘이 모자랐는지 암에 걸린 남편이라는 더 무거운 십자가만 당신께 지게 했군요. 참 미안합니다.


"대체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니?"


이제 허접해지고 용도 폐기된 내게 여전히 힘을 주는 친구의 탄식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더군요.


무슨 "일"이라... 그저 "일"이라 설명되지 않은 일들과 시간, 사고들. 모두의 근원적 이유는 나에게 있으나 부족한 마음에 '나에게만'이라는 푸념을 쏟고만 싶은 엄청난 '서사'가 있었습니다. 본인만 온전히 진실을 알고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이지요. 우리는 제법 긴 시간을 그 감당하기 어려운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살아 내었습니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이해를 구하는 하소연 해도 저마다의 기준과 각자의 서있는 입장으로 선뜻 이해를 줄 수 없는 일들입니다. 그저 분명한 것은 숨쉬기도 힘든 순간에 처해 있다는 것, 나의 역량으로 넘어 서기 어렵다는 것, 다 포기하려 해도 저 멀리 출구는 여전히 빛나고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이 괴로운 날들을 거듭해 줍니다.

그런 날에는


끊겨 버린 전화기의 연락처와 SNS로 아직 이어진 인연들에게 ㄱ부터 ㅎ까지 쪽팔리고 염치없고 경우 없는 메시지를 돌리며, 앵벌 같은 도움을 청해 보기도 하고, 아무도 응답 없는 메신저 앱을 이리저리 다시 고침 해 보기가 일쑤였지요.


생각보다 참 보잘것없고, 부질없고, 신뢰 없이 살았나 봅니다. 생각이 깊어지다 못해 멈추어 버린 좋은 시월의 어느 날... 숨은 쉬어가니 살아 있는 것인지. 숨만 살아 쉬는 것인지. 그래도 사는 것이 더 나은 세상이길 바라봅니다.


문뜩 그전 어설픈 대학생의 모습이 떠 올랐습니다.


군대를 다녀와 복학을 하고 일산에서 신촌 학교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은 좌석버스였는데, 가물한 기억으로 편도 800원 정도의 비용으로 한 번 승차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나름 나름의 고학생이었습니다. 방과 후에 초, 중, 고생 과외도 하고 틈틈이 이런저런 시급 알바를 하면서 학비와 함께 부친의 부채 이자를 상환하는 그런 복학생이었지요.


월급으로 지급되는 아르바이트비가 몰려있어서 매달 보릿고개를 겪곤 했는데, 낭패는 버스 비용이 한 푼도 남지 않을 때였습니다. 보통 두 가지 경우가 발생하는데, 학교를 갔으나 집에 올 비용이 없을 경우.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껍데기에 소주로 마지막 동전을 탈탈 털고 800원만 억지로 남겨 일산 집으로 가는 막차에 올랐으나, 결국 종점 대화에서 기사님이 나를 흔들어 깨우는 경우였습니다.


학교에서 빈털터리로 남겨진 경우 차비를 한 푼 두 푼 구걸해 모으거나, 친구라는 미명으로 애인과 동침하는 친구 녀석 자취방 한편에 웅크려 자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답은 한 가지였습니다. 그냥 걸어서 일산 초입인 장항동까지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아파트 천지지만, 그때는 대화 버스 종점 주변에는 인가나 상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완전 외지였습니다. 재수가 좋은 날은 귀가하는 막차 기사님에 집 언저리까지 태워 주신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걷는 것이었습니다.


이정표도 없고 방향도 가물 한 취중 시골길은 무척이나 어둡고 음산했습니다. 그때 길을 찾는 유일한 방법은 저 멀리 늘어 선 가로등이 빛나는 길을 오른쪽에 두고 걷는 것이었습니다. 그 길은 '자유로'가 분명할 것이고 오른쪽에 두고 걸으면 동쪽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찌어찌 새벽이 다되어 집에 찾아든 그 몇 날 밤이 기억에 참 많이 남습니다.


그렇듯 제게 20대는 죽어도 다시 돌아가기 싫은 그런 시절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십여 년이 흘러 되돌아본 그때의 내 모습에서 딱 한 가지 거두어 간직하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걸어서라도 내 힘으로 가던 그 걸음에 대한 기억입니다.

같이 걸어요


지금 내가 어디를 걷고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해 봅니다.


바닥을 딛고 다시 어느 능선인가를 걸어 올라가는 그 길의 시작 어디쯤이 아닐까 나름의 가늠을 해 봅니다. 최근 몇 개월 동안 그 걸음을 그만두고 싶어 한 적이 꽤 있었습니다. 800원도 없어 걸어야만 했던 그 시절에도 하지 않았던 '포기'를 떠 올렸던 것입니다. 사실 요즘은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형편도 상황도 좋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한 상승세에서 꾸준한 걸음을 약속하지 않은 채 그저 희미해진 '세상 탓'만 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나의 800원도 없던 시절을 인정해 주던 사람들이 있는 한, 저는 걸어갈 것입니다. 물론 오르막 길이겠지요. 하지만, 언젠가 곧 저 위 넓진 않지만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그곳에서 우리 다시 만나겠지요. 그때, 눈으로 웃고 맘으로 울면서 당신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 덕에
 내 걸음 멈추지 않게 되어 참 고마워요.

바람은 제법 차고
밤은 깊어지고
슬픔은 아련하게 가물대고
그런 밤, 아침, 그리고 한낮
그런 날에는

-시월 어느 날-


계절을 건너며, 나 또한 풍경이 돼... 너라고 안 그럴까'
p.s 10에 대하여, 한자로는 종횡의 길이가 모두 같은 '십(十)'- 음과 양 모두 자신으로 수렴하고, 동서를 뜻하는 ㅡ 와 남북을 뜻하는 | 이 모두 갖추어져 완전성을 상징한다고 하네요.

음지와 양지 모두 살피고, 동과 서, 강남과 강북 모두 아우르라는 성소(聖召)의 의미가 강한 10월 그리고 당신의 생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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