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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Jun 23. 2016

백 엔의 사랑 (2014, 100 Yen Love)

서른 두 살의 성장통 하지만 낯설지 않은

일본 어느 작은 마을 도시락 집 큰 딸 이치코(안도 사쿠라)는 말 그대로 루저(Loser) 백수의 표본이다. 작은 도시락 가게이자 집에는 부모님과 얼마 전 이혼하고 돌아온 여동생과 조카와 살고 있다. 32살 전문대 졸업을 한 이치코가 하는 일이라고는 조카와 비디오 게임을 하거나, 동네 백 엔 상점에 들려 주전부리나 만화책 등을 사 오는 것이 전부이다. 치주염 치료비까지 밤낮으로 도시락을 만들어 파는 엄마에게 손 벌리는 큰 딸이 고와 보일 리가 없다. 그러던 중에 여동생과 한바탕 드잡이를 하고 홀로서기를 선언하고 방을 얻어 독립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애용하던 백 엔 상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독립생활도 아르바이트도 축 처지다 못해 눅눅한 비닐장판에 쩍 달라붙은 자신의 일상에 활력소를 가져다 주지는 못한다. 여러 우여곡절의 소동을 겪고 사람들에게 상처받게 된 이치코는 권투를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이 권투가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해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권투도장으로 들어선다. 권투이든 일상이든 그녀가 원하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


일본 영화 <백 엔의 사랑>은 처음에 이런저런 일들이 벌어지는 소동극으로 보인다.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한 것 같은 여동생이랑은 매일 싸움이 계속되었고. 독립 후 최저 임금에 준하는 시급을 주는 백 엔 상점에서의 인연은 견디기 힘들다. 변태 이혼남 동료부터 우울증에 걸린 점장, 매일 유통기한을 지난 음식을 털러 오는 노숙자, 그리고 바나나만 사가는 복서까지. 이치코의 일상은 별 볼일 없지만 이런저런 소동으로 가득 차 있다. 소동극답게 다소 우울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생뚱맞은 배경음악에 이런저런 사건들과 특이한 등장인물들로 경쾌해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경쾌한 리듬의 소동이 점점 애처롭게 보인다. 변태 이혼남 동료에게 서른두 살 까지 간직(?)했던 첫 순정을 빼앗기고, 진심이라 생각한 바나나 복서도 그녀를 현실적으로 이용만 하고 두부장사 여인에게 떠나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장을 보고, 비좁은 작은 앉은뱅이 밥상에 가득 음식을 차려내는 그런 평범한 삶을 그리지만, 이치코에게는 이마저 넘을 수 없는 그저 ‘남들’의 이야기가 되어 버리는 것 같기만 하다. 이런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파편적 이야기, 그 이야기의 연결과 사건의 해결이나 상쇄, 이런 소동극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2009년 개봉한 (개봉해도 사람들은 잘 모를) 독일 영화 <소울 키친>의 파티 같은 영화처럼 보인다. 적어도 이치코가 권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영화는 이치코가 이유가 어떻든 간에 시작한 권투에서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시작한다. 경쾌한 소동극은 다소 무게 잡는 성장극으로 전환된다. 서른두 살의 성장극이라니 말의 모순이 될 수도 있으나, 분명 이치코는 권투를 배우고 권투를 시작하면서 성장하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이라는 것은 물론 스스로 돈을 벌어 본 적도 없다. 서른이 넘도록 엄마가 벌어 오는 돈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무엇을 하더라도 되지 않을 것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것 같은 그런 처지이다. 언제부터 인지 모르겠고,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느새 내 삶은 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무엇을 하고 싶지도, 하고 싶어 한적도 없을 것 같은 그런 이 세상 기준에서의 패배자로 연명하는 것. 그것이 유일한 호흡의 목적이 된다. 이거 기시감처럼 묘하게도 동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패배자이거나 패배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강박적인 공황장애에 모두 빠진 세대이기 때문이다.



‘아직 덜 갠 하늘이 너무 가까워 숨쉬기가 쉽지를 않다. 수만 번 본 것만 같다.
어지러워 쓰러질 정도로 익숙하기만 하다. 남은 것도 없이 텅 빈 나를 잠근다.’
- 장기하와 얼굴들 [싸구려 커피] 중-


요즘 청년세대들, 그리고 그 이후 세대들의 걱정은 현실적이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입사원서를 수십 번씩 보내도 면접 초대 한번 없는 경우나 그런 좌절을 애써 회피하기 위해 휴학을 하고, 대학원을 진학하기도 한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매 한 가지 현상이지만 ‘Gap Year’라는 그럴싸한 포장으로 이 확률 미약한 정글에서의 생존경쟁을 늦추어 보기도 한다. 심지어 ‘N 포 세대’라고 불리듯,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더 이상 ‘꿈’이라는 단어를 상기하지 않는다. 비단 청년세대뿐일까? 시작하지 않으면서 패배를 두려워하는 것이 청년세대의 현상이라면, 패배를 밥 먹듯 직간접적으로 경험해서 다시 일어서기 힘들어하는 지금의 장년세대도 마찬가지이다. 내일이 언제 끊길까 걱정하고, 이 직장에서 언제 퇴출될지 노심초사하는 것이 일상이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붙이기 힘든 버거운 일상 덕분에 부모라는 미명으로 다음 세대인 아이들에게 되지도 않을 희망고문을 실제적으로 한다. 학원 셔틀을 돌리고, 선행학습이라는 것을 시키고, 한국에서 도태될 것 같으면 허리가 휘어지더라도 돈만 있으면 입학하는 미국 주립대학에 입학시키려 노력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서울대’를 나와도 백수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도 명문대를 진학하는 것이 확률적으로 높을지 모르지만 그 확률도 부모의 유전자가 80% 좌우되니 이래저래 깜깜하긴 마찬가지이다. 이 소동극에서 성장극으로 전환하는 작은 이야기에 우리가 몰입할 수 있는 이유는 딱 한 가지이다. 이 답답한 현실을 디디고 일어나 멋지게 한방 먹이고 세상에서 ‘역전’하여 결국 승리하는 모습을 투영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치코가 권투에 빠지는 이유는 세렝게티의 법칙인 약육강식의 그것에 동화된 것은 아니다. 그저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뿐이다. 그리고‘이기고 싶다’는 희망을 품어 보는 것이다. 아무런 욕망도 희망도 없었던 패배자의 삶을 떨치고 딱 한번 만이라도 ‘승자’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둘만 남겨진 공간에서 자신의 온 힘으로 힘껏 싸우다 승부를 보고, 끝나고 나서 서로 등을 두드려 줄 수 있는 그런 삶을 꿈꾸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모두의 바람대로 이치코의 시원한 역전극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것이 삶이고 일상인 것이다. 이치코의 수련과정을 통해 그녀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지만, 그 성장이라는 것이 드라마틱하게 현실에서 작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치코는 다시 패배자가 되었을까? 답은 정해져 있을 것이다.



영화는 이치코를 관찰하며 서사하고 있지만, 다분히 여성 중심의 영화이다. 남자는 그저 주변에 머물러 있거나 비정상적인 반면 캐릭터들이다. 권투시합 전에 아버지와의 식사 장면에서 그려지는 아버지의 모습은 달리 보일지 모르지만, 영화 처음에 등장하는 그의 집에서의 미약한 존재감을 생각한다면 이영화는 여성이 중심에 서있다. 억척스럽게 가게를 이끄는 이치코의 모친이나 다혈질적이고 직설적인 여동생, 그리고 매일 유통기한 지난 음식들을 훔치다가 나중에 강도로 돌변하는 노숙인 할머니까지, 영화에서의 여성은 남성들보다 강하다. 이것은 여러 의도가 있을 수 있겠지만, 생물학적으로 사회적으로 태생적으로 약자인 여성의 세상 극복이 더 극적일 수도 있고, 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사멸된 남성의 존재에 대한 경고일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세상은 힘센 사람들 중심으로 돌아가게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권투를 잠시 한 적이 있었다. 보기에 쉬워 보이나 초보자에게는 3분 1라운드를 보내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무수하게 쏟아지는 펀치를 맞고 시야는 점점 좁아지고 귀는 멍멍거린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두 손은 천근의 추를 메단 것처럼 들고 있기 조차 힘들다. 1초가 1시간 같고 1분이 하루 같은 링 위에서 의지할 것이라고는 그저 ‘내 의지’뿐이었다. 단체 구기 운동보다 개인 투기 운동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정작 보여 주는 시간보다 준비하는 시간은 대단할 수밖에 없다. 매일매일 러닝으로 하체를 단련하고 기본적인 푸드웍을 수없이 반복한다. 약속된 쉐도윙을 몸에 배일 때까지 계속한다. 체중을 조절하기 위해 식단을 줄이고 좋아라 하는 술과 고기도 줄인다. 수도승처럼 생활하며 시합의 그날까지 흐트러짐 없는 매일을 보낸다. 그리고서는 3분 3라운드, 브레이크 타임까지 십 여분 될까 말까 하는 시합에서 그 과정의 결과를 기다린다. 어찌 보면 불합리한 일일 수도 있지만, 우리들 삶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매일매일 일상을 버겁지만 빼곡히 채워 나가고, 결국 어느 시점에 매듭을 짓기 위한 평가를 받게 된다. 시험일 수도 있고 취업일 수도 있으며, 사랑의 쟁취일 수도 있고 결혼과 가정의 구성일 수도 있다. 그 매듭의 순간은 찰나처럼 보이지만 그 매듭을 위해 우리는 수많은 일상을 켜켜이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권투는 자기만족이 아니듯 우리들 일상도 자기를 만족하기 위해 채우는 것은 아닐 것이다. 승부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이미 지어지고 있을 것이니까 말이다.


2주 만에 촬영했다는 이영화. 주연 안도 사쿠라의 연기는 소름 끼칠 정도이지만 그보다 놀라운 것은 체형의 변신이다. 퍼질 때로 퍼진 루저의 모습에서 단단한 복서까지 열흘 만에 몸을 만들었다니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 배우를 발견하는 이유에서도 이영화는 볼만하다. 문제는 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나도 결국 IPTV ‘극장 동시 상영’으로 보았으니 말이다. 이렇듯 세상에는 극복해서 이겨 나가야 할 것이 많은 것 같다.


PS: 영화의 마지막 부분과 엔딩크레딧에 이어지는 노래를 꼭 들으시라.

곧 이영화도 끝나가니 시시한 내 얘기는 잊어주세요
지금부터 시작될 매일 매일은
영화로 만들어 지지 않아도
평범한 날들이라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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