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학다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 스테파노 Jun 01. 2022

권력이란? "눈금"을 정할 힘

공론의 가치(2) - 공론이란  이 시대의 '정상'을 규정할 척도

왕권의 상징 "금척"


금척(金尺)이란 신라의 옛 전설에 나오는 신비한 도구입니다. 신라의 건국자인 박혁거세가 가지고 있었다는 신묘한 '자'를 말합니다. 네 눈금이 있고 길이와 정도를 재는 그 '자'입니다. 금척으로 해당 사람을 재면 죽은 사람을 살리고 병든 사람을 고칠 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신묘한 영험을 탐내던 중국에서 사신이 와서 완력으로 빼앗아가려 했다고 합니다. 이에 금척을 땅에 파묻고 주변에 무덤을 여러 개 만들어 감춰버리고 이후 다시 못 찾았게 했다는 전설이 전해 집니다.

실제크기로 복원한 금척

이 전설이 지명으로 남은 곳이 경주시 금척리 고분군입니다. 경주 삼기팔괴 중 삼기의 하나로 금척을 꼽습니다. 참고로 신라 삼기(三奇)는 금척과 "만파식적"으로 알려진 태평성대를 부르는 마법 피리 옥적(玉笛), 그리고 선덕여왕이 지니고 다녔다는 햇빛을 비추면 불이 붙는다는 수정구슬 화주(火珠)를 일컫습니다.


이 "금척"은 조선 건국기에 이르러 다시 등장하게 됩니다. 태조 이성계가 꿈에서 신인에게 금척을 받은 뒤 왕이 되었다는 내용으로 노래를 정도전이 만들어 바치게 됩니다. 이 노래를 <몽금척(夢金尺)>이라 한다지요. 그 외에 용비어천가와 장편 서사시 〈몽수금척송병서 夢授金尺頌幷序〉, 죽지사의 〈몽금척〉, 고종 시절 〈금척대훈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금척 이야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조선의 계속되는 금척 이야기는 신라 시대부터 전해 내려 오는 왕권의 상징물인 금척을 이용해 왕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됩니다. 훗날의 대한제국 시대 최고 훈장의 이름은 여기에서 따온 금척대훈장(金尺大勳章)이었다니 조선 왕조의 왕권 강화의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금척"이라는 물건의 신묘한 영험 외에 "자"라는 '단위의 원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물건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도량형은 국가가 정하는 기본 단위로써 세상 만물에 대한 지배력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도량형", 그깟 것이 무엇인데?


도량형(度量衡, Standard unit)이란, 물리량을 측정하기 위한 표준 단위를 정의하는 개념으로 단위계, 도량법이라고도 한다. 쉽게 이야기하지면 길이, 무게, 거리 등의 기준 단위를 말합니다. 진시황의 업적에 대해 암기가 필수인 것도 도량형 통일이 됩니다. 영토와 부족, 민족, 국가의 물리적 기준이 되는 단위가 지역마다 다르다면 통합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어찌 보면 언어와 정서적 통일보다 현실적으로 중요한 일이 됩니다. 이런 연유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경제 활동, 조세 행정 등에 있어 도량형의 엄밀한 정의와 체계 일원화(통일)는 매우 중시되었습니다. 그 통일의 주체가 바로 권력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미터, 킬로그램 원기

전통적으로 도량형은 그것을 정의하는 원기(原器)가 있었습니다. 그 원기가 무엇이냐에 따라 그 도량형의 신뢰성에 큰 영향을 미치곤 하였습니다. 이 '원기'는 절대 권력자의 소유가 되곤 하였고, 이따금 그 권력욕으로 원기를 임의대로 적용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치 사회가 진보하고, 과학이 발전할수록 인간이 측정하기에 불변한다고 생각되는 것으로 조금씩 그 기준을 대체해 왔습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도량형 SI단위계(The Inter­national System of Units)는 2018년 kg의 재정의를 마지막으로 물리적 원기를 모두 폐기하고 물리 상수로 대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외에도 야드파운드법, 미국 단위계, 척관법 등이 쓰입니다.


한국의 경우 대한제국 시절 광무개혁을 통해 미터법 도입을 추진했습니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미군정, 한국전쟁 등 수많은 변화들을 겪으며 한동안 SI 단위·척관법·야드 파운드 법이 혼용되다가 도량형 통일 정책에 의해 현재는 SI단위계를 표준으로 합니다. 특히 거래나 제증명 등에서는 SI 단위(미터, 킬로그램 등)만 사용할 수 있고 야드 파운드 법이나 척관법 등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지도에서 빨갛게 칠한 미국, 라이베리아, 미얀마를 제외하고 전부 SI 단위를 쓴다.미국이 "글로벌 스탠다드"라니, 맙소사


"눈금"을 정할 힘, 권력의 원천


"눈금"", 즉 "도량형"은 인류의 역사에서 생각보다 중요한 역할과 존재가 되었습니다. 도량형은 여러 단계와 과정을 거쳐, 상당한 사회적 갈등과 저항을 물리치고, 또 사람들의 고착된 선입견을 혁명적으로 바꾸고서 얻은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도량형 단위는 처음에 사람의 몸에서 출발했습니다. 사람들은 팔(길, fathom)이나 손(뼘, span), 발(보, feet), 팔꿈치(자, el) 따위로 길이를 재왔습니다. 힘이나 시력, 청력 등을 기준으로 삼기도 했답니다. 오아시스와 오아시스까지 거리가 얼마냐에 생사가 달려 있던 사하라 사막 유목민들은 막대기를 던져 날아가는 거리나, 화살이 날아가는 거리, 또는 평지나 낙타 등에서 보이는 거리 따위의 범주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라트비아 사람들은 황소 우는 소리가 들리는 거리를 길이의 단위로 썼다고 합니다. 한국의 땅 면적에 쓰이던 '마지기'는 농사를 짓던 곳에서는 땅의 넓이를 의미 없는 산술적 길이가 아니라 그 땅이 얼마나 쓸모 있는지로 측량한 것이지요.


이렇게 무게나 길이를 재는 방법이 무수할 정도로 많고 다양한 이유는 교역이 드물고, 자급자족의 폐쇄적인 작은 규모의 경제적 고립성 때문이었습니다. 한 지역의 도량형은 각각 자기 방식을 앞세우던 사람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다투고 얼른 끝에 확립된 것으로, 대체로 그 지역에서만 통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사람들이 자기는 누구고 또 ‘남’은 누군지를 가리는 기준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그 시대에서 변화는 질서의 파괴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도량법의 등장은 거기에 익숙하지 않은 생산자나 소비자들을 속이는 수단이 될지도 모른다는 잠재의식에서 더욱 그러했을 것이니까요.

도량형

그렇기 때문에 수천 년 동안 도량형은 사법과 주권의 기본적인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권력이란 ‘눈금’을 정할 힘을 갖고 있다는 의미가 되었으니까요. 이런 것의 반증으로 도량 단위를 결정하는 쪽이 세금 징수관이나 교역을 주도하는 사람이었을 때는 권한을 남용하는 경우가 발생하였습니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 중국에는 두 개의 도우(斗)가 있었는데, 둘은 3분의 1이 넘게 차이가 났다고 합니다. 관리들은 농부들한테서 빌려준 곡물을 받을 때는 보통 큰 도우를, 곡물을 빌려줄 때는 작은 도우를 사용했다고 전해지는데, 한국의 전해지는 탐관오리들 이야기와 유사합니다.


봉건제 아래서는 영주가 자기 영지에서 사용할 도량 단위를 정했고, 도량 단위를 놓고 다툼이 생겼을 때는 궁정 회의에서 심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슐레지엔(Silesia)처럼 작은 영지들이 모여 있는 데다 교회와 왕권까지 개입해 각각 다른 도량형을 주장하던 지역에서는 그 복잡함이 더욱 심화되곤 하였습니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가들이 미터법을 만들어 전파한 뒤에야 비로소 도량형이 통일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까지 사용하던 도량법들이 사람의 몸에서 비롯되었던 것과는 달리, 사람의 느낌 따위에 영향을 받지 않고 불변할 기준이 필요하게 됩니다. 따라서 변하지 않는 천문학상의 계산(1미터는 적도에서 자오선을 따라 극점에 이르는 거리의 1,000만 분의 1이다)에 근거한 미터법이 성공하려면 사람들의 인식에서도 혁명이 일어나야 했을 것입니다.

미터? 야드?

과학적 이해 보다 우선되는 것은, 모든 인간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즉 법률을 제정하는 사람이나 도량권을 가진 사람들이 더는 분명한 근거도 없이 자의적으로 권한을 휘두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산업화가 기반으로 작용하는 상품화가 필수적으로 진전되어야 했습니다. 멀리 떨어진 지역에 팔려고 물건을 만들게 되면서 개별 생산자나 소비자가 물건에 부여했던 개성은 점차 사라지고 표준화되어 갔습니다. 측량할 수 있는 공통의 특성들을 갖고 있는 대량 생산품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즉, 도량형의 혁명은 천부인권과 절대 왕권에 대한 사회적 혁명과 동시에 산업화와 표준화라는 산업의 혁명의 방아쇠가 되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물건들이 상품화되어 가고 측량 가능한 양으로만 그 특성들을 표시하게 되면서, 종류만 같으면 물건들을 서로 대체할 수도 있고 같은 도량 단위로 잴 수도 있게 되었다. 덕분에 농민들은 지방 관리라 상인들의 ‘장난’에 더는 골탕을 먹을 필요가 없게 되었지만 상당수 국제 무역상들은 장사를 그만둬야 했다. 무역상들만이 그 많은 지방의 서로 다른 도량형들을 알고, 또 환산할 능력을 갖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기술들이 더는 필요 없게 되었고, 중간에서 이들이 맡았던 그 중요한 역할은 큰 소비 시장의 대형 수입업자들이 가져가 버렸다. 도량법은 더는 지방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싸움과 승리를 상징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오늘날 우리가 거의 돌아보지도 않는 상자나 저울 따위가 되어 버렸다. -《설탕, 커피 그리고 폭력: 교역으로 읽는 세계사 산책》 중-


(참조 인용: 《설탕, 커피 그리고 폭력: 교역으로 읽는 세계사 산책》, 케네스 포메란츠·스티븐 토픽)



노멀과 스페셜, 권력을 만드는 공론의 힘


길게 잘난 척 떤 "도량형"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지금부터 하고 싶은 말의 애피타이저였을지도 모릅니다. 금척과 도량형의 이야기는 모두 무언가를 재고 측정하는 기준으로 삼을 '원칙'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물과 재물의 양과 크기를 재기도 하고, 기준점과의 차이를 측정하기도 하며, 원칙과 규격에 정한 대로 이행되었는지 평가하는 도구를 '척도'라고 이야기합니다. 영어로 "스케일"이라 불리어지는 '척도'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중요한 필수 요소가 됩니다. 그 '척도'가 개인에겐 양심과 상식의 도덕 기준이 되고, 사회와 국가에겐 법률과 규칙이라는 사회 원칙이 되는 것이니까요. '눈금'을 정한다는 것은 결국 개인과 사회가 합의와 약속한 '주권'을 부여하는 일이 됩니다.


흔히 사람들은 그 척도에 기준하여,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고 구별해 냅니다. 우리가 쉽게 쓰는 '정상'이라는 의미의 영어 'normal(보통의, 평범한)'의 어원은 ​"정사각형의, 정방형의"라는 뜻의 라틴어 형용사 normalis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이 ​라틴어 형용사 normalis는 "목수들이 사용하는 직각자(곡척)"를 뜻하는 라틴어 여성형 명사 norma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라틴어 형용사 normalis는 나중에 "직각자에 꼭 들어맞는"이라는 뜻에서 "(유별나게 튀지 않고) 평범한"이라는 뜻으로 발전하여 지금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norma, 곡척

한편 "직각자(곡척)"를 뜻하는 라틴어 명사 norma는 파생되어 "기준, 표준" 등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결국 "규범"을 뜻하는 영어 단어 norm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같은 어원을 가진 고대 그리스어 명사 gnomon 영어 단어로 들어와 "해시계" 또는 "해시계의 지시 침" 등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으니, 우리가 쓰는 "노멀"은 도량형의 규격과 그 척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멀(normal)"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ab-라는 접두어로 반대 의미의 부정어를 이야기할 수도 있으나, 영어권에서는 흔히 "스페셜(special)"이라는 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여기는 척도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비정상'이 아니라 '특별'하고 '독특'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특별하다"라는 뜻의 형용사 special은 "특정한(specific)"이라는 뜻의 라틴어 형용사 specialis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그리고 라틴어 형용사 specialis는 영어 단어 species(종류, 생물의 종)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 여성형 명사 species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라틴어 여성형 명사 species는 "바라보다"라는 뜻의 라틴어 동사 specio에서 파생된 단어로 원래 "보기, 보는 것"이라는 의미였으나, 나중에 "(보이는) 겉모습"으로, 다음에는 "(겉모습에 따라 구분되는) 물건의 품질 또는 종류"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영어 단어 special은 "보다 >> 보기 >> 겉모습 >> 품질/종류 >> 특정한 >> 특별한"의 순서로 의미가 발전해 왔습니다. 우리말로 가장 듣기 편한 표현은 아마도 "고유한"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은 저마다가 유일무이한 "고유한" 존재이며, 그러한 이유로 인권과 인격을 존중받아 보호받고 있는 것이지요. 그 고유한 저마다의 개인이 모여 합의를 만들어 규칙을 만든 것을 우리는 '척도'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척도는 법과 규범, 기준과 표준, 그리고 '정상의 범주'를 부여하는 '권력'이 됩니다. 그 권력은 의미 깊게도 고유한 객체들의 '공론'에서 나온다는 정치 사회 원칙이 바로 민주주의가 아닐까 합니다.



다양성과 차별금지법


결국 "정상 사회"라는 것은 각각 "독특한 개인"이 모여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공론"으로 형성된 "척도의 원기"가 공정하게 작동되는 사회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정부가 시작되는 요즘 다양성(diversity)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다양성 추구라는 것은 서로서로 다른 다양한 양태와 생각, 그리고 삶을 존중하자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 ‘다양성’의 의미가 왜곡되어 확산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많습니다. 각기 서로 다른 부류들과 사람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다양성이라 주장하는 목소리가 크게 들리곤 합니다.


특히 ‘-ism’을 내세운 ‘~주의자’들이 그러한 경향이 짙습니다. 찬반의 극한 대립에 놓인 페미니즘이 그 한 예가 됩니다. 각자의 강성 주의자들은 남자든 여자든 연령이 많든 적든 간에 지향점이 한 곳이어야 한다고 외칩니다. 그 주장에서 조금이라도 이격이 있으면 ‘반동분자’가 되기 십상입니다. 젠더에 대한 고찰은 비단 여성, 남성이라는 한 편에 국한된 영역은 아닐진대, 비판적 사고로 ‘다른’ 의견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비판자는 모두 ‘남성 우월주의자 마초’이거나 '메갈 꼴페미'가 되고 맙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한 목소리에 수렴하는 것은 "정상"의 척도의 작용이 아닙니다. 진보하는 사회의 어젠다는 일상과 연계되기에 파편화되기 마련이고, 그 다양한 어젠다의 우선순위 설정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진보적 정치가 될 것인데, 비판하는 자는 ‘분열 주동자’로 왕따가 되고 맙니다. 노동자든 공무원이든 소상공인이든 주부든 학생이든 한 목소리로 대동 단결하는 것이 ‘다양성 추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무서운 주장입니다. 누군가, 어떤 우리들이 의도적으로 그어 놓은 "눈금"을 강요하는 폭거가 될 수 있습니다. 진보 정치세력이라 말하는 이들의 극단적 주장은 대학 때 NL들의 교조 패권주의가 떠올려지는 아찔함을 만나게 해 줍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55/0000973170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주말 집회가 열렸습니다. 당초 경찰이 금지한 걸 법원이 허용하면서 오늘(14일)은 행진이 가능했지만,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기사 본문 중-


또한 "차별금지법"은 소수자에 대한 연민과 이해로 받아들이는 우월적 교만함에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각자의 고유하고 특별하며 독특한 성정과 기호, 취향, 신념은 그 자체로 사회 도그마인 "정상"을 규정하는 최소 필수 원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차별을 금지하는 것은 소수와 약자에 대한 보호가 아니라, 전체와 모두를 존중하고, 편향될 수 있는 "눈금"을 '양심'과 '상식'이라는 척도의 권력을 나누는 일이 됩니다.


그 원칙을 규정하는 공론의 형성은 "다수결"이 만사가 아닌 것입니다. 다수결은 자칫 동조하지 않는 나머지가 더 큰 오작용을 하기 마련이니까요. 만장일치의 화백회의가 되기는 힘들지라도 30~40%의 무리 지음이 마치 전체의 다수로 둔갑되는 일을 막아야 합니다. 100명의 구성원 중 양자택일이 아니고 각자 네 가지의 의견이 있고, 그 비율이 40:30:20:10이라면 다수결의에 따라 60%의 민의를 배반하는 것이 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공론'은 생각보다 중요하고, 그 공론은 '비판'에서부터 시작하기 마련입니다.


이렇듯, 개혁과 진보라는 것은 치열한 비판에서 시작합니다. 어제도 그랬고 내일도 그러할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한발 나아가는 진보된 이 세상을 꿈꾸는 하루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어쩌면 "공론"은 이 세상의 뱡든 곳과 아픈 구석을 치유해 줄 진정한 "금척"이 될지되 모르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뉴-썰] IRA가 뭐길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