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라고 말고, 꿈을 꾸었다 말해요.
별이 가득한 도시 라라 랜드 LA, 하늘에도 별이 쏟아지고 할리우드 거리에는 별들이 오고 간다. 그 속에는 언제 이룰지 모를 꿈을 꾸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언젠가 그럴듯한 배역을 맡아 진정한 연기자가 되기를 꿈꾸는 연기 지망생 미아(엠마 스톤)나, 사기로 넘어간 자신의 정통 스윙 재즈 클럽을 되찾아 진정한 재즈를 펼치고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도 그런 꿈을 꾸는 사람이다. 만만치 않은 일상 속에서도 서로를 사랑하며 각자의 꿈의 무대를 위한 응원을 한다. 미아와 세바스찬 모두 각자가 바라는 그 꿈을 이루게 될까?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지킬 수 있을까?
마음속 깊이 이루길 바라고 고대하는 것을 우리는 꿈이라 부른다. 그 기다리던 꿈의 실현은 좀처럼 다가오지 않지만 어김없이 시간은 흘러가고 계절은 절기의 바퀴를 돌린다.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한해의 마지막 날은 코앞에 서있다. 이 무렵이면 크리스마스 영화들이 극장에 걸리게 마련인데, 기억 속에 남는 영화라고는 <세렌디피티(2001)>, <러브 엑츄얼리(2003)>, <어바웃 타임(2013)> 같은 현실감으로 위장한 판타지 러브스토리가 대세였다. 거대 사건은 없어 보이나 영화를 냉정히 꼬집어 보면 모두 허상인 판타지일 뿐이다. 실제 일상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적 만남이 다가오고,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랑을 이루며, 하다못해 시간을 거슬러 여행을 한다. 올해의 크리스마스 영화 <라라 랜드>는 그러한 판타지 러브스토리의 연장선에 있을지도 모른다. 우선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리얼리티의 구현이라는 사실적 서사와는 거리를 두는 것이고, 할리우드라는 엔터테인의 본령에서 인정을 받기란 일반적이지 않고 매우 특수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첫 시퀀스인 LA 고속도로 정체 상황에서의 급작스런 군무와 떼창은 시작부터 우리에게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라는 친절한 설명의 프롤로그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이야기 진행과 결말의 매듭을 보고 난 직후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현실적인 과제를 극복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매듭짓는 성공적인 러브 판타지는 아니지만, 우리가 익히 보았던 또 다른 형태의 플롯을 던져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이 영화를 보고 누구나 말할 수 있는 ‘만약에’라는 가정의 판타지일 것이다. 그것은 ‘if were- then’의 가정법 과거와 같은 절대 성립될 수 없는 가정이거나 이미 결론이 난 것에 대한 후회와 반추의 상상일 뿐이다. 크리스마스 무렵 자주 볼 수 있었던 가정법의 러브스토리 <이터널 선샤인(2004)>, <500일의 서머(2009)>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조금 더 곱씹어 보는 영화 <라라 랜드>는 그저 ‘만약에’라는 전형적인 가정법의 판타지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들이 마음속 깊이 이루길 바라고 고대하는 ‘꿈’이라는 것에 대한 냉정한 정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꿈과 사랑을 쫓는 두 청춘 미아와 세바스찬의 사계절을 보여 준다. 처음 만난 크리스마스를 잠시 보여 주지만, 결국 그들의 이야기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단락으로 나누어 전개된다. 얼핏 보면 4계절의 흐름으로 그들의 사랑과 꿈 이룸에 대한 여정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사실 영화에서의 시간은 크게 둘로 구분된다. 그것은 한해의 봄, 여름, 가을로 이어지는 꿈을 이루기 전의 이야기와 5년 후의 겨울인 각자의 꿈을 현실화한 때의 이야기로 나누어진다. 누군가는 이런 설정이 편집의 힘이 달려 시간이 비약이 된 것이라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의도된 단절로 보인다. 이런 시간의 이분으로 영화는 ‘꿈’ 이룸에 대한 현실을 극대화하는 판타지 설정으로 더 선명하게 도드라지게 말한다. 꿈은 누구나 이룰 수 있지만, 그 꿈을 이룬다는 것이 꿈을 이루기 전의 상상대로 현실화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는 ‘만약에’라는 가정법의 회한이 부질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꿈’이라는 것이 일상에 실제 할 수 있지만, 그것이 꿈을 꾸던 시절의 상상처럼 매듭지어지지는 않는 게 현실이라는 관조적 결말을 던져 주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꿈을 꾸는 그 시간이 좋은 것인지, 꿈을 현실화한 그 매듭이 좋은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만들 수 있는 최선이 집합되어 있다.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그러하고, 그 무대를 할리우드라 직관하는 이야기 설정이 그러하다. 더욱이 복잡한 복선이나 갈등구조 없이 그냥 있을 법한 삶에 대한 모습을 판타지로 엮어 가는 서사가 그러하고,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이라는 영미권 밖에서 환호받기 힘든 비주얼의 연기자를 사랑스러운 그들로 만든 연출이 그러하다. 전형적인 뮤지컬 스코어를 잘 지켜가면서도 존 레전드 등의 뮤지션을 등장시켜 지금의 트렌드와 소통한다. 미아가 등장하는 장면은 지극히 연극적인 테이크를 만들어 연기자라는 배역을 강조하고, 세바스찬이 나오는 연주 장면은 콘서트의 그것 같이 뮤지션으로서의 그를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결말에서 ‘만약에’라는 가정이 현실이 아니라 그저 상상의 반추라 단번에 파악할 수 있을 만큼의 회화적인 배경과 세트 구성도 인상적이었다. 할리우드가 아니면 절대 만들 수 없는 치밀한 영화였다. 큰 이야기와 큰 설정으로 덤벼 들다 마무리 힘을 잃어 흐릿해져 버리는 요즘의 한국영화의 풍조를 보았을 때 부러운 작품에는 틀림없었다.
누구나 꿈을 꾼다. 그것이 거창하고 비현실적이든 작고 소박하며 달성 가능하든 말이다. 그리고 누구는 그 꿈을 이루고 누구는 그 꿈을 한 번도 이루어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꿈을 꾸는 것은 늘 비현실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거를 회귀하고픈 만약에의 가정법과는 매우 다르다. 꿈의 판타지는 내일을 바라보고 서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꿈이라는 것이 이루어지면 현실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꿈의 실현이라는 것이 내가 꿈꾸던 그 상상의 모습 그대로 일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꿈은 이루었지만 소중했던 두서너 가지는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죽도록 사랑했던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미아는 마지막 관문의 오디션에서 ‘The Fools Who Dream’이라는 노래로 꿈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말이다. 서로 사랑을 완성하는 꿈을 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 각자의 꿈에 서로의 사랑을 담아서 꾸면 꿈도 사랑도 현실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고 지난 사랑을 연결하지 않은 것, 꿈을 이야기한 것, 그리고 그 꿈을 새로운 사랑으로 이야기하는 것, 이것만으로 내게 의미 있는 선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