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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Dec 25. 2016

커튼콜 (2016, Curtain Call)

The Show Must Go On


성인 애로물을 올려 극단을 겨우 유지해 나가는 삼류 극단 ‘민기’는 매일매일이 문 닫기 직전의 위기상황이다. 아슬아슬한 극단의 상황에서 별다른 돌파구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던 어느 날 연출가 민기(장현성)는 셰익스피어 탄생 450년을 기념하는 <24가지 햄릿>이라는 연극 경연 공모를 보게 된다. 극단으로 돌아와 단원들과 제작자 철구(박철민)를 설득하여 자신들만의 햄릿을 만들어 간다. 극단주의 눈을 피해 몰래 연습을 하고 극단주의 낙하산으로 점지받은 걸그룹 출신 여배우를 오필리어로 캐스팅하는 등 준비과정 마저 만만치 않다. 한 달여의 준비를 거치고 드디어 극단 민기의 햄릿은 막을 올리게 되는데. 이들은 무사히(?) 연극을 마치고 커튼콜을 받을 수 있을까?



연극을 담아낸 액자 소동극 <커튼콜>

영화와 연극은 다른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묘한 관계성을 지니고 있다. 극 전달이라는 본령이 같은 장르에서 출발한 연극과 영화는 유사하면서도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야기를 드라마 설정으로 배우를 등장시켜 관객에게 전달하는 과정은 동일하면서도 둘러싼 외부의 환경이나 산업적 변모에서 둘의 진화는 사뭇 다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연기의 정석과 역량을 위해 연극무대에서 시작을 하거나 슈퍼스타가 되어서도 연극무대에 꾸준하게 오르는 영화배우들도 있듯, 두 장르 중에서 ‘어려운’ 장르는 연극이라 생각이 된다. 그 어려움은 즉시의 시제성을 지닌 연기의 어려움, 그리고 공간의 한계로 보다 비유적 공간을 설계하는 제작의 어려움, 그리고 무엇보다 그 어렵다는 선입견으로 관객의 다가섬이 쉽지 않기에 다가오는 현실적 경제의 어려움이 그것일 것이다. 영화 <커튼콜>은 그런 연극을 제작하고 연기하는 극단의 모습을 담아낸 영화이다. 영화 속에 또 다른 연극이 존재하는 일종의 액자구성의 극영화라 할 수도 있다. 장르적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연극에 대한 오마쥬 또는 트리뷰티드 같은 그런 영화가 <커튼콜>이라 생각이 들었다. 연극 없이는 오늘날의 영화란 성립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플롯과 주제의 설정을 보면서 몇 가지 연극과 영화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20여 년 전 대학로 바탕골 소극장에서 올린 장진 연출의 <리턴 투 햄릿>이라는 연극이 우선 떠오른다. 젊고 재기 넘치던 천재 연출가 장진이 훗날 은막의 스타들이 되는 신하균, 장진영 등을 캐스팅한 액자구성의 연극이다. 마당극 형식의 <햄릿>을 올리는 극단의 마당극 진행 과정에서의 무대 뒤의 모습들을 소동극으로 담은 연극으로 기억이 된다. 햄릿이라는 소재와 액자구조의 극단 배경이라는 점에서 영화 보기 전에 먼저 떠 올린 연극이 <리턴 투 햄릿>이다. 다른 하나는 십 수년 전에 한국에서 개봉한 <웰컴 미스터 맥도널드(2000)>라는 일본 영화이다. 라디오 드라마를 생방송하는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벌어진 소동을 다룬 작은 소품이다. 극 진행 중에 돌발적인 변수로 인해 원래 설정한 대본대로 진행되지 않은 소동을 사회적 함의를 담아 재미있게 풀어낸 소동극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는 2년 전 아카데미가 인정한 영화 <버드맨(2014)>이다. 전성기를 지닌 히어로물 주인공이 극단에서 연극을 올리며 진행되는 다 큰 어른의 성장통 이야기에서도 이런저런 소동은 이어진다. 영화는 연극에 대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열등감이 관객에게 평가가 되고 회자가 되는 부류에서는 그 역전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바로 ‘삼류’ 작품의 경우에는 특히 그러하다. 삼류로 평가가 되는 순간 영화보다 연극은 자본의 창출이라는 궁색한 핑계마저 찾아보기 힘들어 지기 때문이다.



삼류 세상

흔히 저급하거나 가장 열등한 부류를 ‘삼류’라 지칭한다. 고대 중국에서 사람들의 계급을 하는 일로 구분하는 ‘삼등 구류(三等九流)’에서 유래한 ‘삼류’라는 말 뜻은 어떤 방면이나 가장 낮은 지위나 부류를 지칭하는 말이다. 우리는 이 ‘삼류’에 대한 평가를 상품이나 물건보다는 작품이나 콘텐츠, 재능이나 직능에 많이 붙이곤 한다. ‘삼류 영화’, ‘삼류소설’, ‘삼류가수’, ‘삼류 요리’ 등가장 낮은 질의 결과물을 일컬어 흔히들 ‘삼류’라고 이야기한다. 영화 <커튼콜>은 삼류인생들이 모인 삼류 극단의 생존기를 웃음으로 승화시킨 소동극이다. 대부분의 소동극이 그러하듯 뜻하지 않은 사고가 사고를 낳고 그 사고를 수습하다 눈덩이처럼 조절할 수 없는 거대 사고가 되는 그런 구조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코미디 코드를 담아 보는 내내 웃음이 유발되고 극의 진행도 유쾌하다. 그러나 웃음을 지으면서도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은 불편하다. 불편하다 못해 서글픔이 밀려든다. 웃어도 웃는 게 아닌 그런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비록 내 현재의 삶의 모습이 삼류 처지이지만, 내가 꾸는 꿈마저 삼류 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극단 ‘민기’가 삼류 극단이고 그 극단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이 삼류배우들 일지 모르지만, 그들이 꿈꾸며 만들어 내는 연극 <햄릿>마저 삼류 연극이 될 것이라는 단정은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다. 그 삼류를 벗어나려는 절박한 노력이 뜻하지 않은 소동으로 가려지고 폄훼되어 그들이 꾸는 꿈마저 삼류가 될지 않을까 서글프다. 다른 측면에서 서글프고 안타까운 것은 영화 <커튼콜>의 애매한 포지션 때문이다. 총제작비 5억이 든 저예산 영화가 스크린을 확보하거나 황금시간대에 영화를 걸기란 하늘에 별을 따는 일에 가깝다. 예술영화 전용관에서는 <커튼콜>이 장르적으로 상업영화라 거절이 되고, 상업 영화관에서는 상업성이 떨어지기에 외면받는 영화가 <커튼콜>인 것이다. 예술영화이거나 상업영화이거나 이 영화는 일류, 이류에 포지션 하기 어렵다. 이런 관점에서 영화의 완성도와 연출에 아쉬움이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소동극은 티끌 같은 뜻하지 않은 사건 사고가 서로 이를 물어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연쇄하며 시간을 점유하게 마련이다. 즉 사건과 사건, 사고와 사고들의 연쇄가 우연이 아닌 개연성 있게 물려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영화 <커튼콜>에서의 개연성은 많은 공백이 보인다. 연극 햄릿도 잘 보이지 않고, 극단 민기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보다 치밀한 소동의 설계는 많은 아쉬움을 좋았다. 그래서 예전 연극 <리턴 투 햄릿>과 철 지난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널드>가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The Show Must Go On

내가 대학생일 때 공부는 미덕이 아니었다. 교문에서 뛰어서도 10분 넘게 걸리는 교양수업 장소 종합관까지 올라가는 것마저 큰 결심이 필요한 때였다. 교문에서 언덕 위의 종합관을 바라보며 심정적으로 출석했다 자위하며 당구장으로 술집으로 향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그 시절 들은 강의나 수업, 교재는 머리에서 생생하게 떠올려진다. 그중 하나가 1학년 교양영어 교재 <Modern College English>’에 실린 제 1과의 에세이 ‘The Show Must Go On’이라는 글이다. 내용은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어떤 어려움과 역경에서도 삶의 바퀴는 굴러가야 한다는 그런 이야기로 기억이 된다. 락그룹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동명의 유작 노래도 떠 올릴 수 있다. 우리가 사는 모습은 다 한결같지는 않다. 누구는 태어나면서부터 무언가 많이 쥐고 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아무리 바지런히 몸을 굴려 보아도 좀처럼 주머니에 든 것을 찾기 어려운 형편이다. 내 태생이 나의 이력이 삼류여서 그런가 한탄스럽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현 가능성을 떠나 내일에 대한 삶에 대해 누구나 꿈을 꾸기 마련이다. 그 꿈의 크기나 경중에 상관없이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바라는 마음을 품는다. 비록 내가 사는 오늘이 비루하게 삼류 일지 모르지만 내가 꿈꾸는 내일은 삼류에서 벗어나고픈 소망이다. 오늘처럼 내일도 삼류인생이라면 이 세상을 계속 살아가는 이유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살아갈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소동이 있더라고 연극은 계속되어야 하고, 마침내 커튼콜을 받으며 관객과 마주 서서 이야기해야 한다. 나의 연극이 나의 삶이 어떠했냐고 당당하지만 겸허하게 말이다.


The Show Must Go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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