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경제의 부상과 노동과정의 변화>
10여 년 전에 "적성"과 "기회"를 이유로 아끼던 마케터 한 친구가 사직을 하였다. 그가 선택한 것은 놀랍게도 "연구"였다. 대학원에 진학해 "연구"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희망 전공을 듣고 말려 볼까도 싶었다. "사회학"이었다. 사회 과학 중 가장 광범위하고 광활하여 좀처럼 두각을 내기 어렵다는 "경쟁의 논리"가 앞 선 훈수의 마음이었다.
그러던 친구가 10년이 훌쩍 지나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논문을 PDF로 보내왔다. 한 자 한 자 읽다 보니 입가에 웃음이 올랐다. "데이터 최적화(Data Optimization)"와 "모바일 퍼스트"라는 비즈니스 타워를 이끌며 현장에서 고민하며 나누었던 인사이트가 묻어 있었다. 제목이 <플랫폼 경제의 부상과 노동과정의 변화>이다. 3년간의 포커스그룹 인터뷰와 앱의 구동과 네트워크의 작동을 진행한 정성 가득한 연구가 마음에 와닿았다.
https://alternative.house/wp-content/uploads/2022/12/2022-Alternative-Symposium-IPEA.pdf?fbclid=IwAR2PEjnbxqdFJDbJ6So6DIsaHX5810shmNIdTsGtxuIsbrlVhzcynxMvFkQ
이 연구는 기술의 발전이 사람들의 공간경험을 바꾸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작업장의 변화로 이 어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배달노동자들의 노동과정에 회사의 통제력이 커지는 상황 은, 플랫폼 기업이 기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신기술을 통해 시공간을 통제한 결과이다. 기존에 는 일터로 인식되지 못했던 이동노동자들이 일하는 공간에도 감시와 통제가 가능해짐에 따라, 이동 노동자들의 일터에도 회사가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연구의 목적은 변화하고 있는 이동노동자들의 일터가 만들어진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디지털 시대에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일터의 성격을 규명하고, 더 나아가 ‘혼종적 작업장’이라는 개념을 통해 작업장의 개념을 확장하는 것이다. -논문 초록 중-
배달을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노동과 배달산업을 알고 싶으면 이 논문으로 스키마가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급속도로 변한 배달플랫폼산업에 대한 발로 뛴 기록이자 그 성실함을 받쳐 주는 고뇌의 사고의 흔적이다. 다양한 사례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실체"를 드러내어 주었다.
단지 노동자의 측면의 미시적이고 각론적인 사유에 그치지 않는다. 노동과 노무관리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자의 가치 충돌을 표상화하였다. 거시적인 산업의 측면에서 플랫폼 자본의 특의 "축적과 증식"이라는 문제부터 그로 인해 야기되는 각종 "소외와 차별"의 문제까지 종횡단면을 가리지 않는 고찰이 담겨 있다.
일상의 이동공간이자 공공재인 도로에 대한 장소의 혼행성(하이브리드)과 그 괴리를 이야기한다. 일반 시민과 배달노동자에게는 '공적공간'과 '작업공간'으로 함께 사용하면서도 그 목적의 괴리가 발생한다. 배달노동자에게는 '구체적인 노동 현장'이지만, 플랫폼 기업에게는 '가상의 플랫폼 공간'이라는 작업장의 괴리도 있다. 배달노동자들의 실행하는 노동 과정과 기업의 최적화를 위한 알고리즘의 통제도 괴리를 낳는다. 그리고 '노동'이라는 구체적인 배달노동자의 노동행위가 있지만, 플랫폼 자본은 그저 "데이터 경제"라는 추상적인 지표를 양산하는 괴리도 있다.
또한 놀라운 것은 플랫폼 배달 노동자들에게도 "숙련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의 매개를 통해 등장한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은 양가적이다. 혼종적 작업장을 지배하는 기술, 알고리즘이 요구하는 정보를 제공시기도 하지만, 반면 알고리즘의 판단을 평가하는 새로운 종류의 노동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배달노동에 필요한 숙련성도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알고리즘이 배달노동자의 인지능력과 숙련도를 흡수하면서 상대적인 탈숙련이 나타나지만, 동시에 새로운 숙련이 요구되는 것이다.
흔히 데이터가 지배하는 알고리즘의 시대에서 "숙련"은 불필요한 노동의 가치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이는 새로운 세대들이 지난 세대의 전수적 이행을 "~라떼"라고 무시할 근거가 되기도 한다. 정보통신기술과 플랏폼이 제공하는 정보가 "탈숙련"을 유도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현장성을 모르는 이야기가 된 듯하다. 실제로 행하여지는 노동은 결국 인간의 행위인데, 이는 시간과 병행되는 "숙련"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 숙련의 차이가 노동 생산성의 차이를 발생한다. 도로의 사정, 배달지역의 특이성, 가게의 위치, 엘리베이터와 대기 시간의 유무는 "숙련"의 영역이다.
글쓰기 플랫폼만 보아도 수긍이 간다. 글을 얼마나 써야 하는지, 무슨 주제를 써야 하는지, 어떤 방향이야 하는지, 그리고 보다 나은 보상을 위해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지, 어느 시간에 어느 분량으로 올려야 하는지. 이 모든 것은 "숙련의 노하우"이고 보상에 일정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들은 "알고리즘 평가"에 대한 순기능도 하지만 "빈틈"을 노리는 (어뷰징, 표절 같은) 역행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기술적 알고리즘"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기본적인 전제가 있어야 한다.
알고리즘의 통제를 받는 플랫폼 노동자는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동시에 알고리즘을 고도화하는 데이터 노동을 수행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데이터 노동이 노동자를 전면적으로 기술경제에 포섭하지는 못한다. 알고리즘의 결정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는 플랫폼 기업과 노동자 사이의 정보비대칭을 뛰어넘으려 노력한다. 알고리즘의 논리를 더 적극적으로 파고드는 능력을 키우며, 더 나아가 그 과정에서 기술의 감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빈틈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을 최적화하기 위한 리프로그래밍 과정은 노동자들의 데이터 노동을 이끌어내는 일련 의 ‘테스트’로 이루어져 있다. 소프트웨어 경제는 완성된 상품이 아니라 정식 발표 전 오류 발견을 위해 배포하는 시험용 버전인 ‘베타’의 연속에 가깝다. (Neff & Stark, 2004)
논문을 읽으면서 점차 드는 생각은 "플랫폼 자본"의 양해(excuse)는 소비자들에 대한 송구함이 아니라, 일종의 기만적 영리 행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과 같이 플랫폼자본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앱이라는 생산수단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는 것은 그저 벤처정신의 혁신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장 큰 손실은 소비자들의 불필요한 추가 비용 지불이다. 꼭 과금 지불이 아니더라도 새롭게 변모한 UI-사용자 인터페이스에 적응하는 것 자체가 시간과 노력이 드는 비용이 된다.
그다음의 피해자는 직접 손익이 당장 영향을 주는 플랫폼 위의 노동자들이다. 플랫폼이 "실험"을 이유로 계속 '베타업데이트'를 한다면, 노동자들이 어떻게 대응ㆍ저항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노동자가 순응하지 않고 대응, 저항한다면, 플랫폼 자본은 그저 "업데이트"를 하며 겁을 주면 된다. 그렇게 되면 노동자의 저항은 언제나 "과거의 시점"과 싸우는 무용의 투쟁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 수많은 플랫폼 노동자, 데이터노동자들이 당면한 생존의 과제이다.
그동안 밑밥이 되던 투자자금이 사라지면 플랫폼기업이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위기를 기회 삼은 또 다른 자본이 유입되고 결국 버티고 살아남는 기업은 독점적 공룡 플랫폼이 되어 버리는 라이프 사이클이 형성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정치나 재계는 이에 대한 견제와 조정할 의지는 없어 보인다. 그러기에 지금과 같은 양태의 데이터, 플랫폼 노동이 향후 노동자인 시민들과 그 사회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 가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된다.
https://v.daum.net/v/20210528060101814
그 누가 ‘노동의 종말’이라 했던가. 인공지능(AI) 자동화로, “새로 생기는 일자리에 비해 사라지는 일이 더 많아져, 결국 인간 노동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라는 권위 있는 국제 연구소들의 미래 노동 예측은 일부 맞기도 하지만 영 틀리기도 한다. 그들의 예측은 자본주의의 코로나19 충격과 ‘고용 없는’ 노동이 급증하는 현실을 주의 깊게 읽어내지 못했다. 신기술 자동화는 전통의 일자리를 대체하면서도, 바야흐로 ‘질 나쁜’ 노동을 대거 양산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플랫폼 등 신기술을 보조하는 ‘위태로운’ 노동들이 폭증하는 현실은 노동 종말론을 마치 비웃는 듯하다.-기사 본문 중-
담론이 유행이 된 시대이다. 구글링으로 얻은 활자들이 자신의 인사이트라고 거리낌 없이 쏟아 내는 부끄러움을 잊은 세상이다.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는 "현장성"에 있다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그 현장의 이야기를 깊게 연구된 이론과 연결하여 유의미한 결론에 도달하는 일은 엄청난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가설을 세우는 일도 만만치 않지만 그 가설의 검증을 위해 긴 시간과 많은 노력을 현장에서 탐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의 분야가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을 해낸 후배여서 더 자랑스럽다.
플랫폼 자본과 데이터노동에 관심 있는 모든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논문을 접하고 처음에는 "플랫폼 배달 노동자"의 혼행성과 특수성, 그리고 노동의 환경에 대한 생각이 깊게 들었다. 그러나, 읽어 내릴수록 그 "데이터 노동"은 어느새 배달노동자 같은 특정 집단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플랫폼 자본의 근간이 되는 모든 데이터를 발생하고 제공하는 모두가 "데이터노동자"인 것이다. 플랫폼 시장의 양면을 노동의 측면에서 비추어 보면, 모든 사용자는 이미 "데이터노동자"인 것이다.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글쓰기도 "데이터노동"이다. 미세하고 하급의 노동이다. 자동화가 해 주지 못하는 영역이다. 우리는 이미 "데이터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의 글쓰기, 읽기, 클릭과 반응 모두가 이 플랫폼 기업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 자산"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보상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공정"과 "평등"이라는 잣대가 필요하다. 비정형적이고 자의적인 보상의 지급은 소비자이면서 노동자인 모두에게 기만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보상이 있으니 "감사"할 일이 아니다. 당신이 들인 노력과 시간만큼 보상을 바라고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경제활동인 것이다.
‘플랫폼 공장’에는 생계와 소득을 위해 부지불식 간에 실제 몸을 움직여 노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무한궤도의 타래처럼 얽혀 있다. 플랫폼 자본은 직접 고용 없이도 우리 주변의 활동하는 모든 인간 노동력을 포집한다. 이를 통해 신기술의 자동화는 노동의 소멸이 아닌 질 나쁜 노동의 무한 증식을 도모하는 것이다.
플랫폼은 "구인난"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사회라는 인적 구성의 네트워크만 있으면 "경제활동인구"와 관계없이 노동력은 확보된다. 우리의 일상을 보자.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키는 순간 "일터"로 변한다. 당신의 로그인은 '데이터'라는 플랫폼의 사료를 무상 공급해 주는 것이다. 매 순간 우리의 데이터 활동은 거의 자발적으로 대가 없이 이뤄진다. 그러나 이에 대해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 플랫폼의 가스라이팅이다. SNS 인플루언서나 유튜버 셀럽 등 직업적 크리에이터들이 수익을 올리는 예외는 어떻게 설명이 될까? 글쓰기 플랫포에서의 "영입"은 차별적 불공정 거래가 되는 이유이다.
우리 대부분은 거의 24시간 무급으로 노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자발적으로 한 선택이라는 합리화에 다 속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생성한 글이나 콘텐츠는 그 질적 평가와 달리 플랫폼에게 가치 있는 유의미한 데이터를 무상, 무급으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플랫폼에 "자동화"가 있다면, 그것은 공짜 노동과 생산물을 포획하는 자동 덫 푼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빅테크 플랫폼들의 성장을 안겨 주었다. 코로나 이후의 위협은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이나 의료시스템의 붕괴로 시선이 갈 뿐이다. 그러나 플랫폼 경제는 인간 노동 상황을 위태롭게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노동의 ‘불안정성’을 극대화한다. 이미 그들의 생태계에서 기득을 가진 소수의 권력이 나머지의 공짜노동의 수혜를 받는 것이다. 아직 늦지는 않았다. 우선 플랫폼 시장의 독과점적 팽창을 제어하는 사회적 공론이 필요하다. 그리고, 노동 가치가 재고되는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기술 혁신"이 또다시 필요해 보인다.
위태로운 플랫폼 노동, 데이터 노동 문제를 사회 의제로 공론화하는 일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이를 기반으로 사회적 변화에 맞춘 법제의 완성이 필요하다. 근로 기준법과 공정 거래법이 우선이다. 그리고, 각자 파편화되어 갈라져 있는 사용자이면서 노동자인 모두의 연결과 연대가 필요하다. 플랫폼 자본은 이를 최대한 저지하기 위해 서로의 단절과 반목을 야기하는 꼼수들을 들고 나올 것이다. 일조의 "조삼모사"로 당장의 이득과 혜택으로 연대의 구조를 갈라놓는 것이다. 익숙한 모습이다. 미세하다고 눈감게 되면 나중의 큰 도둑을 막지 못하게 되는 법이다. 비판적 사고는 늘 유효하다.
위의 논문에 대한 토론회는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면 된다.
https://youtu.be/frWYCtpe_n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