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이가 여니에게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가을이 온다는
'처서(處暑)'.
시간은 늘 위대합니다. 처서가 되니 바람이 넓어졌습니다. 더위(暑)를 돌아 가 피해 멈춘다(處)는 절기에 더위에 뒷덜미 잡히지 않으려 잠시 피해 멈추어 봅니다.
모기도 입이 비뚤어지는 절기라는데 타는 듯한 더위에 입 비뚤어질 모기는 이미 종적을 감추고 아쉬운 여름날은 가고 있습니다. 새벽녘의 착한 바람의 폭이 넓어 지길 기다릴 수밖에 없듯이, 시간이 해결하는 많은 것들에 고개 숙이는 요즘입니다. 여름의 끝 간절히 잘 버텨야 하니까요.
처서 즈음이 되면 늘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있습니다. 바로 '가려움'입니다. 오랜 자가면역질환을 알으면서, 그 증상 중 하나가 알레르기, 아토피 같은 질환인데, 환절기에 그 친구들이 극성입니다. 30년 넘게 함께했지만 좀처럼 익숙하지 않습니다.
의학적 소견으로는 면역의 체계가 균형을 잃어 바깥의 자극에 과민을 보이는 이유라고 합니다. 거기에 더 해 증상을 극대화하는 과거의 음주습관에 눈씨름하듯 멈출 줄 모르는 지난날들의 과로, 과도한 운동, 넘치는 걱정 습관으로 인한 스트레스 등 어느 하나 이상할 것 없는 것들이 일상을 채웠습니다.
처음에 힘들게 자리 잡은 이 가려움은 이제 익숙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모진 꿈결에도 현실과 이어 주기 위해 살살 다가오는 가려움은 따끔거리거나 욱신대는 통증보다 또렸해 졌습니다. 뼈가 부러진 채 축구 한 경기를 다 뛰고, 엉치뼈에 바로 찔러 넣는 주삿바늘에도 별 반응 안 보이고, 생살에 찔러 넣는 타투 작업 중에도 새근대며 잠을 자곤 했습니다. 그렇게 미련한 곰탱이 모양 통증은 잘 견디어 내면서도 이 작고 살랑대는 가려움은 아직 견디기 쉽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암투병을 하면서도 이 가려움을 잡기 위해 항히스타민을 달고 삽니다. 벅벅 긁어 대다가 출혈이라고 비치면 사달이 나기 십상이니까요.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마음, 바로 소외되었다는 생각은 처음에 묵직한 통증으로 가슴이 아려오다 이내 가벼워집니다. 여기부터가 힘든 시간의 시작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그저 살짝 다가와 가려움을 주고 이내 흔적 없이 떠나갑니다. 밤새 시달린 가려움으로 내게 남은 것이라곤 제 손톱으로 후벼 판 상처뿐이고, 그 가려움의 근본은 좀처럼 떠 올리기 힘듭니다.
처서가 되니 가을바람이 모퉁이에 기다리는 것만 같습니다. 불같이 뜨거운 여름을 보내면 선한 가을이 온다는 이야기이겠지요. 이제 아픔이 가려움이 되어 이따금 찾아드는 그런 날이 될 것입니다. 가려움이 반갑지는 않지만 그래도 살아가고 있다는 속삭임으로 같이 가야 합니다.
일과시간에야 신경이 분산되고 집중하는 일들이 있으니 많이 느끼지 못하지만, 저녁 특히 잠자리에서는 가관입니다. 요즘 출혈 방지를 위해 잠자리에 셔츠며 긴바지를 입고 자게 되는데, 이불을 걷어 차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 아침에 일어나면 늘 헐벗고 있습니다.
몸이 가려우면 약을 먹거나 긁으면 그만인데,
문제는 맘이 가려울 때이지요.
아프고 아픈 시간을 보내고 상처가 더덕더덕 남은 마음에 새살이 올라올 때 즘 맘도 가렵습니다. 무척 가렵습니다. 아픈 것하고 참 다른데 설명하기가 쉽지 않지요.
이 가려운 마음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가을의 숙제가 되었습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책과 함께 하고 영화랑 그림과 함께 하는 시간을 고대해 봅니다. 마음의 좀 덜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삶은 아픔에 무디어져 가렵나 봅니다.
-곰탱이 남편의 어여쁜 아내와 나누는 아침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