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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Nov 10. 2020

용서의 의미

어리석은 사람은 용서하지도 않고 잊지도 않습니다.

순진한 사람은 용서하고 잊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용서하되 잊지 않습니다.


-토마스 사즈-



대상을 동정하고 받아들이는 일


용서는 ‘얼굴 용容’과 ‘용서할 서恕’라는 단어가 결합하여 이룬 단어입니다. 이 두 단어 모두 ‘용서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용容은 집 안에다가 항아리를 들여놓은 모양을 본떠 만든 단어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담다. 받아들이다.’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恕는 ‘같다.’라는 의미를 가진 여如와 ‘마음’이라는 의미를 가진 심心을 결합해서 만든 단어인데요. 이 단어는 ‘남의 입장을 헤아려 동정하다. 사랑하다.’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내 마음인 양 바라보고 아끼는 것이 동정이고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두 마음을 같게 하다.


한자어 용서容恕는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을 동정하고 그 사람(또는 그 상황)을 받아들인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용서의 어원


이번에는 forgive의 어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forgive는 용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영어 단어입니다.


forgive는 ‘for’라는 어원과 ‘ghabh’라는 어원을 결합하여 만든 단어입니다. 어원 for은 ‘떨어진 곳, 다른 곳, 건너편, 완전히, 전적으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원 ghabh는 ‘주거나 받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원 for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곳’ 그리고 ‘완전히’. 그래서 forgive의 근본적인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방향은 총 네 가지입니다.


-다른 곳에 주다.

-다른 곳에서 받다.

-완전히 주다.

-완전히 받다.


forgive의 어원을 설명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다른 곳에 주다.’라는 문장을 활용해 forgive를 해석합니다.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다른 곳에다가 버리는 것이 용서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그런데 forgive는 수용의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저편에서 우리에게 닥쳐 온 것들을 우리가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 또한 용서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어원 for을 ‘완전히, 전적으로’라고 해석하는 편을 좋아합니다. 용서는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전적으로 내려놓아야 가능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우리가 우리 눈앞에 벌어진 상황들을 완전히, 전적으로 받아들여야 가능해지는 일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용서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용서는 개인적인 생활과 집단적인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쭉 그랬습니다. 일어난 갈등들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관계가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용서를 가능하게 하는 마음


어느 날 공자의 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죽을 때까지 실행할 만한 한 마디 말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자공의 질문을 받은 공자는 자공에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그건 서恕다.”


이 대화는 『논어』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공자가 말한 서恕는 용서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공자는 ‘타인을 자신처럼 여기는 마음’으로서의 서恕를 말하였습니다.


공자가 말한 서恕는 용서를 가능하게 만드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용서의 조건이자 바탕입니다.


용서는 물리적인 행위인 동시에 마음의 작용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마음의 근본을 이루는 것은 ‘저 사람도 나처럼 행복해지고자 하는 보통의 사람이구나.’ 하는 동정의 마음입니다.


나에게 막심한 피해를 입힌 사람은 내 눈에 사람이 아닌 무엇으로 보이기 쉽습니다. 이때 서恕의 마음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게 합니다. 사람을 연민하게 합니다. 결국 이것은 사람의 사람다움을 이해하게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용서는 대상을 거스름 없이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용서는 단순한 망각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용서해야 할까요. 우리에게 벌어진 일들을 다 잊어버리는 게 용서일까요. 그것들을 없던 셈 치는 게 용서일까요. 상처를 무작정 외면하는 게 용서일까요. 그 모두는 용서가 아닙니다.


흔히 잊어버리는 게 용서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런데 용서는 단순한 망각이 아닙니다. 용서는 그보다 더 적극적인 행위입니다.


내 발로 내 상처에서 벗어나는 것이 용서입니다. 나에게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똑똑히 기억하지만 내가 거기에 더 이상 사로잡혀 있지 않는 것이 용서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용서하는 사람을 가장 먼저 이롭게 하는 행위입니다. 용서는 용서하는 사람을 가장 먼저 자유롭게 해 주는 행위입니다.



용서는 합리화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 우리가 상대를 마음으로 이해해야만 상대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해는 이해이지 합리화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잘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을 잘못이 아닌 것으로 만드는 건 용서가 아닙니다.


‘나에게 그런 짓을 저지른 그 사람’이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하고 그 사람을 내 마음에서 이만 내려놓는 것이 용서입니다. 내가 나에게 벌어진 상황과 더 이상 다투지 않는 것이 용서입니다.


내가 그 사람 편을 들어 주는 건 용서가 아닙니다.


그 누구도 이미 일어난 사실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가해는 가해로 남아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우리를 그 가해의 순간에 가둡니다. 그런 반면 용서는 우리를 그곳으로부터 해방시켜 줍니다. 용서만이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용서하기 그리고 용서받기》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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