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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Jan 01. 2017

사람에게서
기품을 느끼게 되는 순간

사람 귀한 줄 알고 사람 예쁜 줄 아는 그런 마음



   몇 달 전에 한 사람을 알게 되었습니다. 순하고 선량한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눈매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말씨가 차분해 듣는 이의 가슴을 가만히 토닥여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눈꺼풀을 잠시 깜박이는 모습에서마저 모두를 존중하려는 배려심이 드러나는 사람이었습니다. 

   맑지만 가볍지는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려 깊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진중한 건 아니어서, 상대의 기분을 어렵게 만들지는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가진 그 개인적인 분위기를 좋아했습니다. 그 침착한 분위기 근처에 머물며 들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던 순간들이 감사했습니다. 유쾌할 때는 어디에서도 방해 받지 않고 다만 유쾌해질 수 있는 그 사람의 순수를 배워 나가는 게 너무도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기가 가진 원래 분위기를 깨고 나와 한껏 휘청거리는 모습도 저는 좋아했습니다. 제가 가진 흔들림도 벅찬 마당에 그 사람의 흔들림을 감히 바라보고 감히 감당해내려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사람의 흔들림을 지켜보고 같이 견뎌 주는 일은 가능하더군요. 

   물론 제가 그 사람 흔들림의 전부를 함께 무릅썼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 사람이 삶에서 흔들리는 모든 순간을 제가 다 알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는 제가 목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그 사람의 이런저런 흔들림을 알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눈에 보이는 그 사람의 모든 흔들림을 정면으로 응시했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 흔들림으로 인해 제가 허물어지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단 한 순간도 거짓되게 살지 않아서였던 것 같습니다. 그토록 진솔했기에,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저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지쳐 하고 무너지려 하는 것이 저마저 힘겹게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리 험난한 진실이어도 그것이 잘 꾸며진 거짓보다는 감당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저는 무섭지만 괜찮다고 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있는 것보다, 무서우면 무섭다고 겁내는 사람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이 훨씬 견디기가 쉽습니다.    





   그렇게 그 사람은 제게 여러 가지 배움을 주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독특한 배움은 그 사람의 밝은 인사성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열심히 하는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직접 알고 지내지는 않는 사람에게도, 생판 처음 보는 타인에게도 아주 친절히 인사를 건넸습니다.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는 이유로, 얼마간 함께 일을 하게 될 거라는 이유로, 꾸준히. 이변 없이 꾸준히.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에요. 잘 모르는 사람한테 인사 건넸다가 ‘저 사람 뭐지?’ 하는 듯한 눈길을 받는 건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사가 규칙이나 의무였던 조직에 몸담고 있을 때마다 저는 그런 눈길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런 때마다 저는 대찬 거절이라도 당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한동안 의기소침해져 있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상대가 인사를 받아 주든 아니든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은 변함없이 묵묵히 자신의 인사에 열중할 뿐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인사가 대화로 이어질 때, 그 사람은 상대에게 반드시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상대의 말이 끝나기 전까지 그 상대로부터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를 대하고 있는 동안 그 사람은 그 누군가에게 모든 집중력을 쏟았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인생에 나타나 준 데 대한 답례로 그 사람은 온 힘을 다해 그 누군가에게 몰입해 주었습니다. 그 누군가가 어떤 사람인지와는 상관없이, 그 어떤 차별 없이, 모두에게…….





   그런 그 사람의 모든 행위에서 저는 품위를 느꼈습니다.



‘저 사람 참 품위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어김없이 모두를 존경하고 배려할 줄 안다는 건, 그 자신의 품격이 무엇으로도 훼손되지 않는다는 걸 믿기 때문일 테니까. 고개와 허리를 굽힌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가 꺾이거나 줄어들거나 상대의 것보다 떨어지는 게 아님을 아는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을 테니까. 모든 이들을 향한 그 사람의 그 한결같은 사려 깊음은 단단하고 위엄 있는 기품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콧대를 세우고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어떤 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대접’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그저 언제나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갈 뿐이었습니다. 그곳에 가서 고개 숙이며 모두에게 관심과 감사와 공경을 표현했습니다.


   저는 이런 부분에서 인간의 우아함을 느껴요. 그리고 이런 인격의 우아함은 유행을 타거나 세월 따라 흐려지는 법 없이 저를 이끄는 매력입니다.

   조건 없이 모두를 사랑하고 모두를 위할 줄 아는 사람을, (안치환 씨의 노래처럼) 사람이 정말 꽃보다 아름답다는 걸 아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재간이 없는 것입니다. 눈이 아니라 마음에 밟혀서 자꾸만 애틋하게 생각이 나고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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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과 산문집을 발행하는 

WRIFE MAGAZINE은 
삶의 순간들을 다룹니다.
너무 흔하면서도 너무 각별해서 절절한 
삶의 순간들 그리고 그 속의 느낌들을 나눕니다.
WRIFE MAGAZINE은 언제나
'사람'과 '마음'과 '함께'를 생각합니다.




책 속 한 문장 :


작은 형은 더 이상 손우정을 만나지 않았다. 그 부풀었던 마음 다 없던 걸로 치고 계속 친구로 남긴 어려운가 보았다. 

-소설집『우리가 눈물을 흘릴 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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