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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하 Jun 20. 2024

언니의 상견례

언니의 결혼을 바라보는 둘째의 마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우리의 대화 주제는 변화하곤 한다. 대학, 취업이란 주제를 지나 한동안 연애가 주된 얘기였던 우리는 이제 결혼이란 주제를 달고 산다. 아마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출산과 육아에 대해 얘기를 하겠지. 비슷한 주제에 대해 함께 얘기하고 공감할 수 있는 든든한 내 편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서로에게 쓴소리로 마다하지 않는, 그럼에도 그것이 온전히 좋은 방향을 위한 일임을 아는.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은 말이다.


언니는 내게 꽤 특별한 존재이다.


부모님께선 언니가 본인들의 아픈 손가락이 늘 말씀하셨다. 한편으로는 그런 말씀을 직접 하시는 부모님께 서운함이 들었었다. (물론 지금도 서운함은 든다. 속으로만, 아니 두 분 이서만 하셔도 되는 얘기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언니는 내게도 그런 사람이었다. 언니는 딸 셋 중 장녀로서 우리에게 말 못 할 홀로 지고 있는 짐이 많을 것이었다. 나는 둘째라는 이유로 언니의 등 뒤에 숨어 있던 일도 늘 많았다. 맨날 똑똑이처럼 구는 나는 사실 헛똑똑이라 언니에게 의지하는 일이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많았다.


언니는 나와 젤 친한 친구이자, 부모님이었다. 커갈수록 부모님께 털어놓는 비밀보다 언니에게 말한 비밀들이 더 많았고, 속상한 일이 생기면 달려간 사람도 언니였다. 작년 자취방을 이사해야 했던 나는 한 달간 서울에서 지낼 곳이 없었다. 그런 나를 언니는 너무나 흔쾌히 자신의 좁은 원룸으로 데려갔다. 혼자 살기에도 좁은 집에서 언니는 내가 혹여나 불편할까 그렇게도 나를 많이 배려해 줬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동생에겐 그저 애정만을 잔뜩 쏟았다면, 언니는 조금은 더 정의하기 힘든 그런 사이였다. 치고받고 싸우는 친구가 되었다가,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는 고민상담가였다가, 그 무엇보다 든든한 가림막이 되었다가, 어떨 때는 나보다 더 동생 같은-.


그런 언니가,

내년에 결혼을 한다.










어쩌다 보니 본가로 들어온 시기가 겹쳐서 언니와 요즘 방을 함께 쓰고 있다. 아마 언니는 내년 봄이 찾아오기 전 새로운 신혼집으로 이사를 나갈 것이다. 그때까지 약 반년이 언니와 함께 방을 쓰는 마지막 기간이다. 마지막임을 생각하니 아쉬움이 자꾸만 차오른다.


아니, 사실 참 많이 아쉽다.


이제는 '오늘 저녁 뭐 먹을 거야?'라는 질문도. '청소기 좀 돌리라고.', '설거지 누가할 건지 정해.'라는 그저 투닥이던 대화도. 일상으로 가득 찼던 말들을 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각자 자취를 한 적도 있고, 둘 중 한 명이 기숙사에 들어가 한동안 떨어져 지낸 적도 많은데 그때와는 마음이 참 많이 다르다. 언니가 결혼을 한다는 생각에 그저 신이 났다가, 묘한 기분이 차오르다가, 마지막이란 헛된 생각에 아쉬움이 차오르다가. 그러다가 결국 또 같은 제자리를 반복하는 싱숭생숭한 기분.


정리되지 않은 오늘 글이 내 마음을 그대로 투영한다.


나는 참으로 이기적인 동생이라, 솔직히 말하면 이따금씩 아쉬움을 동반한 이기심이 차오르기도 한다. (이제 언니랑 못 논다는 어린아이 같은 생각이 자꾸 들어서 그런가 보다.) 물론 결혼 이후에도 우리는 둘도 없는 자매이고, 힘들 때도 기쁠 때도 떠오르는 사람일 테지만. 이제는 언니에게 나보다 더 큰 베스트 프렌드이자 인생의 동반자가 생기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언니가 늘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 그래서, 그래서인지, 내 마음의 한 모퉁이가 살포시 구겨지기도 한다.


혼자 참으로 오버한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저녁 먹고 소파에 늘어져 의미 없는 농담이나 주고받으며 깔깔 웃는 시간도,

서로 말없이도 통해 냅다 야식으로 치킨을 먹는 일도,

다음 날 중요한 약속 때문에 백만 가지 패션쇼를 벌여도 서로 진지하게 조언해 주는,


그런 사소한 시간이 이젠 꽤 특별해질 것이란 생각에 이런 오버스러운 마음이 드나 보다.







결혼 준비는 참으로 할 게 많다. 신경 써야 할 것도, 결정해야 할 것도 정말 많다. 언니와 나는 계획 없이는 못 사는 대문자 J라, 언니는 결혼 준비도 엑셀 파일을 켜고 준비한다. 생각보다 결혼 예산 짜는 그 파일은 예비 신부들 사이에서 구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한다. 본인이 직접 만들기엔 꽤 적을 게 많아 블로그를 통해서나 지인에게 구한다고 들었다.


"언니 나 결혼할 때 그 엑셀 파일 줘야 해?"

"너는 내가 그냥 주지."


장난 반, 농담 반으로 던진 말에 언니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게 말했다. 나는 이번에도 역시나 언니를 보며 하나씩, 하나씩 혼자 익혀간다. 언니가 수월하게 닦아준 길을 또 그대로 내딛는다.


어렸을 적 언니랑 매일같이 다투던 꼬맹이 시절에, 나는 늘 이렇게 생각했다.


'나이만 많으면 언니야? 언니 같이 행동해야 언니지!'


머리를 쥐어뜯으며 그렇게도 싸우던 우리였는데.

이제 내가 서른을 앞두고 언니를 보니,

 

우리 언니는 내 앞을 항상 먼저 걸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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