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는 위대하다.
‘오늘은 뭐를 해 먹지?’
음식을 해 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정말 어떻게 매일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을까. 바로 주부(主婦)라는 명칭이 이 세상에서 위대하게 느껴지고 경외감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때는 지방에 있는 발전소로 부장 발령을 받고 난 후의 일이었다. 점심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 외진 사택이라 아침저녁은 혼자서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귀차니즘과 게으름이 발동되는 날이면 무노동 무음식은 자연스럽게 세트메뉴로 따라왔다. 물론 혼자서 외식해도 되지만 홀로 음식점에 가서 앉아있는 것도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고, 어차피 지방 생활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라도 가급적 사택에서 만들어 먹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회식이 있는 날이면 저녁을 해결할 수 있지만 그것도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서 이제는 본격적으로 주방 도구를 서울에서 가져와야 했다. 그래도 저녁 시간은 여유가 있었지만 아침은 귀찮아서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이른 시간에 싱크대 앞에서 서성이는 것이 괜한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고, 그렇다고 그 시간을 효과적으로 잘 활용하는 것도 아니면서 쓸데없이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했다. 그런 이율배반적인 사고는 늘 그렇게 아침 허기를 몰고 왔다.
매주 서울에 올라갔다 내려올 때 한두 개 챙긴 것들이 사택 주방에 가득 차고, 몇몇 도구가 맘에 들지 않아 현지에서 구입한 것들까지 세팅하고 나니 주방 풍경은 그럴싸하게 구색을 다 갖춘, 준공 후 가동을 기다리는 발전소처럼 보였다. 이제는 상업운전(?)만 남은 것 같았다. 그래도 이미 한물간 시간 연구와 동작연구의 창시자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Taylor System)은 들어 알고 있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도구의 위치를 적절하게 손에 바로 닿는 곳에 배치한 후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다.
손바닥만 한 주방에서 무슨 노동생산성 제고라는 거창한 명분을 갖고 동작의 최소화를 통한 시간 절약을 시도해 보는 일도 우스운 일이지만, 새로운 일이 생기면 결과에 상관없이 뭔가 효율적인 방법을 찾고자 하는 탐구 의지가 아직도 남아있다는 대견함에 스스로 놀라는 모습이 더 우스꽝스러웠다. 사실 위치라고 해봐야 거기서 거긴데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자신이 자랑스러웠고 가만히 쳐다보면 있어야 할 곳에 주방기구들이 당연히 자리 잡았는데도 해야 할 일은 다한 듯 마음이 뿌듯했다. 세상에 싱크대를 정리해 놓고 만족감에 휩싸인 때는 그때 말고는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문제는 그다음부터 발생했다.
하드웨어는 그런대로 갖췄는데 소프트웨어와 주방에 임하는 태도가 문제였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전장(戰場)을 무시한 군인의 자세와도 같았다. 전시에 완전군장을 하고 전투에 참여해도 날아오는 총탄 한 발만 맞으면 상황 끝인데, 모자는 옆으로 삐딱하게 쓰고 끈 풀린 군화에 허리띠 풀고, 빈 총만 축 늘어진 어깨에 멘 저 위대하고도 호기로운 대한민국의 예비군처럼 자세부터가 건방지고 엉망이었다.
방안에 혼자 있으니 콩으로 메주를 쑤든 주방 칼을 꺼내 칼춤을 추던 누가 뭐라는 사람은 없다지만, 그래도 처음 음식 만들기에 도전하는 하수로서 겸비한 마음을 가지고 시작했어야 했다. 거기에 허리는 구부정한 데다 껌까지 질겅질겅 씹고 있으니 누구라도 그 진상을 보면 한대 쥐어박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나게 하는 덜떨어진 자세임은 분명해 보였다. 하긴 그래도 적들은 군화 끈 풀린 예비군들을 가장 두려워한다고는 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어서일까, 아주 여유 있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했으니. 하기야 평소에는 별 볼 일 없지만 전시상황에서 그들의 어떠함과 위대함을 이미 LA에서 보여줬고 세계가 인정했다는 사실이 그것을 방증하기에 전장이 아닌 주방에서도 더 건들거리는 듯싶었다. 예비군 동원훈련 갔다 온 때가 삼국시대처럼 까마득한데 말이다.
호기롭게 시작한 취사 전투에 돌입했는데 자세는 형편없고 그렇다고 경험이 있나, 공부를 했나 머릿속은 텅 비어 입력된 재료가 전무하니 좋은 아웃풋이 나올 리 만무했다. 밥은 설고, 아내가 챙겨준 반찬은 언제 다 떨어졌는지 냉장고를 수없이 확인하다가 결국 며칠 전 사두었다 비닐봉지 안에서 노릿하게 변한 콩나물을 꺼내 무쳐보기로 결심했다. 첫 작품에 만족할 리는 없지만 그래도 그렇지 까짓것 얼마나 재료가 들어간다고 깔본 것이 화근이 되었고, 거기에 정신 차리고 껌만 안 씹었어도 제대로 무쳐질 콩나물 반찬이었다.
껌을 씹으면 구강운동도 되지만 이상하게도 생각이 꼬리를 무는 희한한 마력이 있었다. 끝내고 보니 작품은커녕 먹다 하루 지난 부대찌개 속 늘어진 라면처럼 얼마나 소금에 절였는지 오징어젓갈 같은 콩나물 무침이 되어버렸고, 그것을 또 손으로 너무 주물럭거려 마치 본죽 집의 노란 전복죽처럼 흐물흐물하게 보였다. 이것을 두어 번 젓가락질하다 보니 갑자기 내가 미워졌다.
‘네가 지금 만든 것이 뭔고?’
어디선가 공명되어 들려오는 울림. 거실에 머털도사가 가부좌를 틀고 나를 조롱하듯 던지는 질문 같아 휙 뒤를 돌아다봤다. 그런데 세상에 거기엔 진짜로 도사들이 죽 앉아 나를 쳐다보며 배꼽 빠지게 웃고 있었다. ‘KBS 한국인의 밥상’
구수한 말솜씨와 중후한 인품, 거기에 백발을 휘날리는 그분은 바로 머털도사 최불암 선생이었다.
첫 전투의 패잔병이 되어 식탁이 아닌 텔레비전 앞에 앉아 넋을 잃고 어느 바다 마을의 고수 아낙이 내놓은 간장게장의 맛을 눈으로 음미하면서, 실제론 설익은 밥에 소태가 된 물컹한 콩나물무침을 껌 씹듯 우물거렸다. 주제에 자연스럽게 자존심이 묻은 공허한 독백이 방안을 오염시켰다.
‘그 맛이나 이 맛이나…’
먹던 그릇 몇 개나 된다고 설거지할 것도 없는데 세제에 미끄러진 접시 하나가 순간 거실로 튀어나가면서 박살이 났다. 그야말로 순간 거실은 난장판이 되었다. 깨지는 소리도 요란했지만 잘게 부서진 날카로운 파편들이 거실을 점령해 버렸다. 화도 났지만 그렇다고 어린애같이 털썩 주저앉을 수도 없었다. 또 스스로 잘못해놓고 그렇게 화낼 일도 아니었다. 아직 손에는 물기가 그대로 남았는데 그대로 서 있는 상태에서 먼저 빗자루 놓인 위치가 어딘지 생각해 냈다. 그리고는 마치 징검다리 건너듯 조심스럽게 한 발씩 떼면서 청소도구를 찾아 쓸어 담기 시작했다. 한숨이 나왔지만 그제야 비로소 세상에 있는 모든 주부들이 위대해 보였고 그들은 평생에 얼마나 많은 그릇을 깰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작은 사건이 얼마나 큰 잔영으로 남았는지 그 일 이후로 설거지하면서 접시를 깨본 일이 없다.
그리고는 많은 시간이 흘렀다. 물론 연이은 지방 생활은 아니었지만 도합 약 10여 년의 세월은 속된 말로 식당개 3년에 라면을 끓인다는 말처럼 인터넷 뒤져가며 만들어본 음식이 하나둘이 아니어서 이젠 눈감고도 제목만 나오면 지진계의 침(針) 움직이듯 속사포로 그려내고, 인동초가 고통의 세월을 지나 금낭화를 꽃피우듯 자연스럽게 주방을 관제하고 호기롭게 평정한다. 자세부터 늘어진 예비군이 아닌 귀신 잡는 해병대의 기상으로 각 잡고 시작한다.
육갑(六甲)을 넘고 퇴사한 후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청출어람(靑出於藍). 이제는 막상 뭔가를 보여주려고 주방에 서 보니 모든 것이 귀찮다. 가끔 서울 올라올 때마다 그간의 실력을 보여주곤 했지만 세상 삶이 그렇듯 모든 것이 갖춰지면 더 게을러지는 것 같고 인센티브가 없으니 굳이 하기가 싫어진다. 더구나 내가 아니어도 담당할 사람이 있으니 그 자유와 신성한 의무까지 뺏고 싶지 않았다. 그 본심과 의도를 알았는지 요즘 부쩍 담당자의 횡포가 심하다. 잠시의 역할연기는 할 수 있지만 이러다가 정말 역할이 바뀌지는 않을는지 우려와 불만이 교차한다. 하지만, 더 많은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담당자를 무시하고 어쩌면 그 순간의 세월 속에서 대단한 뭔가를 발견한 것처럼 스스로 언제든 주방을 통제하고 관장할 수 있다는 교만함을 꺾기 위해서라도 내가 더 이상 나서면 안 될 일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잠시라도 어떤 의무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어차피 우리 삶은 따로가 아닌 공유가치에 있고, 그간의 노하우가 가족을 즐겁게 해주는 연결고리로 작용한다면 자연스럽게 나서는 것도 귀차니즘이라는 게으름을 없애고 가정의 평화를 추구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고상하고도 위대한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평생 가족을 위해 음식과 싸워왔던 주방 담당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 오늘은 얼큰콩나물 소고기국을 끓여보자.’^^
* 타이틀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