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대한민국의 경제를 흔들어놓은 IMF시기로 인하여 우리집 역시 힘든길을 걸어갔었다. IMF 이후로 아버지는 일용직으로 생활하셨고, 어머니 또한 재봉업으로 가사일을 하셨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생활을 대부분 이러한 생활을 하다보니 나 역시 안정된 직장을 생각하게 되었고 매일 눈에 보이는 군인이 생각이 났다.
처음에는 나 역시 사관학교를 생각했다. 누가 뭐라해도 윗 계급이 좋은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관학교 시험은 우리가 익히 아는 SKY를 가야하는 수준이었고 나에겐 검은것은 글이요, 흰것은 종이일뿐 높은 벽에 낙심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래 고민하지는 않았다. 빨리 취업을 해서 가정에 도움이 되고 싶었고 부모님이 힘드신 모습을 도와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부사관이 되려고 마음을 먹었다. 처음에는 부사관이 무엇인지, 무슨일을 하는지 그리고 육군/해군/공군/해병대 등 여러 군별이 존재한다는것도 생각하지 않았고 진해에서 태어나서 생활했으니 해군을 가야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책임한 행동이었지만 그 행동으로 내가 지금까지 성장한 동력의 시작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에도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지원을 받아주는 시기여서 고등학교 졸업 후 지원을 하려고 하였다. 그래도 대학을 한번 가보는것이 어떨까 싶어서 인근에 있는 국립대학인 창원대학교 물질과학군으로 입학하게 된다. 여기에서 밝히는 말이지만 정말 그 당시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크다. 1학년 1학기 등록을 하고 처음 수업은 몇번 들었지만 나는 부사관을 갈 것이라는 생각으로 점점 수업은 안가고 대학교 앞 PC방에서 수업시간동안 게임을 하다가 수업이 마칠시간이 되면 집으로 가곤했었다.
그 당시 부사관은 지금처럼 간부선발도구가 있었던 시기가 아니였기에 면접으로 선발하였다. 처음 지원한 해군부사관 기수에서는 당당히 떨어졌다. 준비한 것도 없었고 위에서 말한처럼 군에 대한 정보와 왜 부사관을 가야하는지 전혀 생각도 안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준비해서 다음 기수로 임관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의 군 생활은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많은 청소년들이 직업군인을 선택함에 있어서 아무런 정보가 없이 무작정 부사관이 되기 위하여 지원하는 경향이 너무 많이 있다. 최근 부사관을 희망하는 학생과 면담을 하다보니 부사관을 하고 싶은 마음에 육군, 해군, 특전사, 해병대 등 다양하게 지원을 한 경험이 있다고 들었다.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학생과 이런저런 내 이야기를 들려 주면서 진로설정부터 다시 정리하도록 하였다.
어느 군이든 개인이 지원을 하는것은 나쁘지 않다. 올바른 국가관과 안보관을 갖추고 있으면 당당하게 해당 군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라도 하나 걸려라는 식으로 지원을 하게 되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아서 의무복무인 4년을 채우고 전역을 하거나 군 생활을 하더라도 억지로 하는 경향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행동은 국가적으로도 낭비이며 주변의 동료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심각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적성을 고려해서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를 선택하고 준비를 해서 임관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헬퍼가 필요한 상황이다. 따라서 부사관진로코칭교육센터를 만들었고 현재 무료로 상담을 하고 있다. 언제든 문을 두드리고 자신의 적성에 맞춰서 직업군인을 선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