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 비극과 취약성에 대해

주디스 버틀러, 『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감상

by 박두환

『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를 읽고 : 인간의 취약성과 상호의존성, 그리고 비극에 대해 곱씹다.


주디스 버틀러의 『지금은 도대체 어떤 세상인가?』를 읽으며, 나는 오랫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공유된 취약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주디스 버틀러는 서로의 '상호의존성'으로 이것을 극복할 수 있음을 제안한다. 이렇듯 인간이 극복해야할 삶이란 것은 취약한 인간들에게는 꽤나 위협적이기에 인간의 삶은 비극적이다. 특히 중반부에 소개된 셸리의 '비극'에 대한 논의는, 나에게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을 다시 보게 만드는 열쇠 같았다. 이 책은 코로나19 팬데믹 시대글 지나며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하는 질문과 함께 팬데믹 시대의 정치에 윤리를 묻는 책이다.


버틀러는 전지구적 위기의 상황에서 불평등한 위기로서의 팬데믹을 사유하기 위해 상호의존성, 취약성, 불안정성 등 자신의 정치철학, 윤리학 키워드를 인용하여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버틀러는 상호엮임, 침투성 등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의 키워드와 연합해 팬데믹을 이해한다. 버틀러는 팬데믹은 세상을 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할 선물이자 기회로 여긴다.


버틀러는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내쉬는 공기를 서로에게 전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이 세계의 지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가 접촉하지 않고서는 서로를 접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취약성과 상호의존성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장은 단순한 연대나 연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서로에게 흔적을 남기고, 서로의 존재를 조건 짓는다는 아주 물리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을 지적한다. 숨을 쉰다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조차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세계는 언제나 '공통적인 위험'의 장이다. 이 말 앞에서, 나는 요즘 시대를 살아가며 느끼는 불안과 외로움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또한 셸리는 이렇게 말한다.

"적어도 인간의 비극들에 있어서 비극적인 것은 단순히 '책임'이 없다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책임의 소재를 알아낼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는 고통을 겪을 때 종종 ‘누구 때문인가’를 묻는다. 하지만 셸리는 인간 비극의 본질은 오히려 책임을 명확히 가릴 수 없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이 부분이 특히 마음을 크게 울렸다. 세상에는 잘잘못으로 나눌 수 없는 슬픔이 있고, 아무리 이유를 찾아도 납득되지 않는 고통이 있다. 그럴 때 느끼는 무력함과 복합적인 감정 — 그것이야말로 비극의 본질이라는 것. 셸리의 이 통찰을 통해, 나는 '이해할 수 없음'을 억지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그 자체를 인정하는 용기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메를로퐁티의 한 구절도 함께 떠올랐다.

"오히려 문제는 신체로서의 내가, 내가 알고자 하는, 이미 거기에 존재하고 보이는 움직이며 질료화(mattering)하는 세계의 일부라는 점이다."


나는 세계를 관찰하는 외부자가 아니다. 내 몸은 이미 세계 안에 있고, 세계와 끊임없이 접촉하며, 변형되고, 흔들린다. 이 말은 버틀러가 말하는 '상호의존성'을 신체적 차원으로 더욱 깊이 끌어내린다. 세계를 바꾼다는 것, 혹은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몸으로 산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다시 느꼈다.


『지금은 도대체 어떤 세상인가?』는 단순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책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을, 서로에게 어떻게 책임을 느끼고 연결될 것인가를, 깊이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아주 다정하면서도 날카롭다. 읽고 나서도 한참 동안 문장을 곱씹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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