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은 언제나 일반 기업들의 최우선 순위다. 아무리 제품을 잘 만들어도 사줄 사람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들은 항상 소비자의 동향을 살피고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통해서 고객들의 충족되지 않은 니즈를 파악하고, 그것을 충족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기자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은 언론사들이 기업 홍보팀과 정부부처 대변인실, 공공기관 홍보팀외에 다른 소비자를 상정하지 않고 기사를 쓰는 것 같다는 것이다. 사실 민감한 주제의 기사가 나가게 되면 피드백이 오는 곳은 위에 열거한 3개 주체외에는 별로 없다. 일반 독자가 기자에게 전화를 해서 클레임을 거는 경우는 자기가 산 주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만한 기사가 나간다거나 집값이 떨어지고 있는 사실을 보도하는 등 재산권에 영향을 미칠 만한 보도일 때 외에는 크게 없다.
언론사 입사 초기 때만 해도 ‘이 기사를 독자가 어떻게 바라볼까’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언론사 생활에 적응을 해서인지 아니면 기사를 보는 대중들이 줄어들어서인지 어느 샌가 수용자를 생각하고 기사를 쓰는 일이 줄어든 것 같다. 어느 샌가 기사를 쓰면서 ‘아 이거 홍보팀에서 전화와서 오늘 저녁 기분 잡칠텐데 어쩌지? 저녁 먹을 때 계속 전화오고 밤 늦게 까지 이것 때문에 씨름해야 하는 것 아냐?’라는 생각이 더 크게 자리를 잡은 것 같다. 물론 이것은 나만이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언론사가 소비자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일반 대중이 기사를 잘 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언론이 공급자 중심의 마인드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독자들의 수준은 전문가의 반열에까지 올라갔지만, 언론사들은 언제가 독자들을 가르치려는 마인드가 상당하다. 당장 언론사의 기획 기사 타이틀이나 사설, 칼럼의 타이틀을 읽어보면 ‘00하라. 000뜯어고쳐라. 00개혁하라’라는 꼰대 같은 제목의 글들이 즐비하다. 제목만 봐도 숨이 턱턱 막히고 읽고 싶지가 않다. 이미 대중들은 언론사가 가진 지적인 역량을 뛰어 넘은지 오래다. 알량한 글솜씨만 갖고 ‘이래라 저래라’라고 훈수를 두는 것을 좋아할 독자들은 많지 않다. 물론 이는 슬프게도 언론사의 마지막 소비자로 압축돼 가는 기업, 정부, 공공기관에게도 마찬가지다. 기업과 정부,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언론사의 데스크탑,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똑똑하다. 물론 대통령이든 시장이든 정부부처 장관 누구든지 잘못이 있다면 비판을 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하지만 직접 전장에 나가서 뛰어보지도 않은 플레이어(언론)가 마치 무오류의 지위를 획득한 것처럼 지적질만 하는 것을 좋게 볼 사람들은 없다. 언론이 비판을 하려면 스스로 비판을 받을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이는 무턱대로 기사 댓글에 ‘기레기가 기레기 했네’라고 욕설을 지껄여 놓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사실 언론 그 자체에는 도덕적인 우월함이 존재하지 않는다. 언론의 힘은 그들의 쓴 기사와 리포트를 읽고 봐줄 소비자가 있을 때 나타나는 것이다.
수용자가 어느 기업의 언론 담당 차장 또는 어느 정부부처의 대변인에 불과하다면 언론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으로 끊임없이 콘텐츠 개발을 위해 연구를 하고, 기자들의 전문성과 지적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언론사가 아낌없는 투자를 해야 하는 이유다. 이미 유튜브 등 언론사의 대체 역할을 하는 플랫폼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보고 싶었지만 만나지 못했던 사람을 인터뷰하는 채널을 만들어서 대박을 터뜨리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유튜버(개인)이 언론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언론사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장관이나, 공공기관장, 기업 최고경영자(CEO)만 인터뷰해서 “내년까지 매출 00% 끌어올릴 것”과 같은 구태의연한 인터뷰 기사만 나열한다고 시간을 할애해 기사를 읽을 독자는 없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