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살 대디가 육아휴직을 낸 이유

by 포티나이너

나는 올해로 11년차 기자다. 두 아이의 아빠다. 그런 내가 1년짜리 육아휴직을 냈다. 그 이유는 무엇이냐 영어를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어를 잘하는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목표 가운데 하나였고, 내 인생의 발목을 가장 크게 잡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기 때문이다.

강원도 시골에서 자란 나는 학창시절에 영어를 잘하는 아이를 볼 수가 없었다. 외국어 영역을 잘풀고 하는 친구들은 있었지만, 자기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글로 쓸줄 아는 친구들은 1명도 보지 못한 것 같다. 나도 영어를 좋아하는 편에 속해서 수능 모의고사를 보면 외국어 영역 80점 만점에 68점 정도는 맞았던 것 같다.(아주 잘했던 것도 아닌 것 같네)

고등학교 때 내가 좋아했던 것은 바로 우선순위 영단어를 외우는 것이다. 당시 우선순위 영단어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단어집이다. 나는 쉬는 시간에도 화장실만 잠깐 다녀오고 영단어를 쉴새 없이 외웠다. 단어장에 붙어 있던 빨간 셀로판지를 잘라서 단어의 뜻을 가리고 단어를 많이 외웠던 기억이 난다.


영어에 대한 거부감이 많지 않았음에도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영어 회화나 작문 강의는 일부러 듣지 않았던 것 같다. 취업을 위해 학점을 따야 하는데 외국에서 살다가 온 친구들이 좋은 점수를 받을까봐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래도 영어에 대한 갈증은 있었는지 이익훈어학원에서 통번역(뉴스청취) 수업은 한두달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마저도 취업을 위한 토익 공부를 위해서 그만뒀다.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내가 했던 많은 바보 같은 선택 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 때 계속 학원들 다니며 영어공부를 했어야 했다.


어학연수에 대한 갈증과 동경이 있었던 나는 대학에서 연계된 외국 대학에서 하는 언어연수 프로그램에 한달 동안 다녀오게 된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 있는 학교였다. 고작 4시간 짜리 코스였고 그 이후에는 어떤 프로그램도 없었다. 잠시 같이 간 대학 친구들과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에 1박 2일씩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는 어떤 기억도 없다. 물가 비싼 영국에서 돈만 엄청 낭비하고 온 것이다.


다시 취업 얘기로 돌아와서 강남에 있던 해커스 학원을 1달 정도 다니고 개인적으로도 공부하고 해서 겨우겨우 토익점수 910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신문사에 입사했다. 한달치 월급에 준하는 거금을 내고 월스트리트 잉글리시 학원에 등록했지만, 며칠 안 갔다. 차라리 환불을 했어야 되는데 그냥 며칠 가다가 말아버렸다. 퇴근 후에 학원에 가서 수업을 하려고만 하면 회사에서 전화가 빗발쳤다. 그 이후 영어는 영원히 굿바이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할 수 없었고, 쓸 수 없었다.(그건 육아휴직의 절반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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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이란 시간을 국제부에서 일하며 해외에서 발생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현상들을 기사로 옮기는 작업을 했지만, 해석이 잘 안되는 이디엄이 너무나 많았고 구글 번역기로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건너뛰기도 했다. 그저 외신을 해석해 한글 기사로 작성하는 기술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 영어는 전혀 늘지 않았다. 국제부를 경험해 보지 못했던 동료기자들도 내게 "국제부 했으니 영어 많이늘었겠네요?"라고 물었지만 전혀 사실과 달랐다. 말하고 듣고 쓰는 연습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읽는 것도 한가지 지문이나 기사를 깊이 파서 그것을 낭독하고 필사하고 내것으로 체득하는 과정 없이 하루에도 3~4개 이상의 기사를 써내려가야 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해당 기사의 핵심(meat of the article)을 파악하고 한글 기사로 쓰는 데에만 집중을 했다.


그렇다고 내가 영어를 위해 발버둥을 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전화영어를 6개월 이상하기도 했고, 몇 십만원을 내고 발음 강좌를 선결제해놓고 몇 번 보다가 언제나 그랬듯이 포기한 적도 있다. 토요일마다 한번에 5만원씩 하는 50분짜리 1대 1일 영어회화에 몇개월씩 다니기도 했다. 가족들과의 달콤한 주말 시간 일부를 포기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영어가 늘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원어민이 무엇을 질문하면 고개를 45도 돌리고 '어~'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에 대한 아는 문장도 전화영어에서 배운 "I can't think of anything off the top of my head." 밖에 몰라서 이 말만 반복했다. 그러다가 원어민 회화도 끝냈다. 자금과 시간 투입대비 효율성이 너무 안 나오는 것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황금과 같은 주말 시간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는 게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만일 내가 영어 측면(English-wise)에 있어서 가시적인 성과를 목도하고 있었다면, 1대1 영어회화를 계속 지속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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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가 없었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쓸 수가 없었다. 서점에 가면 '이 책 정말 나에게 도움 되겠다'라고 혼자 되뇌이고 사는 것만 좋아했다. 단 한권의 책도 제대로 본적이 없었다. 그저 책 수집광이었다.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방법론만 쫓아다녔다. 노력은 없이 방법론만 쫓고 쫓고 자책하고 '난 원래 이것밖에 안돼'하며 우울해 했다. 이렇게 지나다가 1년 후면 인생의 절반에 해당하는 불혹이 된다는 사실이 너무도 두려웠다. 어렸을 때 내 꿈은 한두개 외국어 쯤은 하는 polyglot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본 중의 기본 중인 영어에 대해 제대로 된 도전도 해보지 못하고 내 인생이 끝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내 마음을 짓눌렀다. 물론 육아휴직의 명분이 필요해서 회사에는 MBA 대학원에 다닌다고 얘기는 했지만 휴직의 가장 큰 동인은 첫째도 둘째도 영어였다. English was something that it has always been a thorn in my side.


물론 1년간의 육아휴직으로 인해 발생하는 기회비용은 실로 엄청나다. 회사에서 일체의 지원이 없는 그야말로 휴직이기 때문에 1년치 연봉부터 대학원 등록금, 각종 학원비 등을 모두 포함하면 1억원이 훌쩍 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과감하게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내가 가진 역량을 총동원해 1년간 영어에 관한 변화를 이끌어 내고 싶었다. 물론 그 변화는 원어민 수준의 영어 능력을 갖춘다거나 곧바로 고급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허황된 목표를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평생 씨름해야 할 영어라는 장애물 앞에서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려는 도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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