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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기자의 그런 생각 Dec 11. 2018

 복면을 쓴 한국 경제

기자 초년병 시절이다. 

2012년 대선 직후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는 길이었다. 60~70대의 한 할아버지가 지하철 안에서 동년배의 다른 분들을 향해 “이제 우리들 세상이 왔으니까 좀 기다려 보자구요. 몇 달만 있으면 경제가 살아날 거니까”라고 말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과 교수가 최근 주요 런던 특파원들을 불러서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해 “국가 비상사태”라면서 “문재인 정부가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받아들이는 게 첫 해결방안”이라고 말했다. 

'나쁜 사마리아인' 등 기자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면서 가장 많이 읽었던 책을 서술한 교수의 인터뷰라 흥미가 갔다. 대학에서 장 교수의 책을 읽고 학기말 페이퍼를 제출했던 기억도 났다. 더구나 장하준 교수는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사촌동생이 아니었던가. 


장 교수는 인터뷰를 통해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전략에 대해 “한마디로 몸이 약해져 있으니 영양제 주사 한번 놔준 것”이라며 “나쁜 것은 아니지만 대증요법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양제 맞았으면 운동도 하고 식생활도 개선해야 몸이 튼튼해지는데 소득주도성장에는 체질 개선 얘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지금 경제 상황은 분배가 잘못되고 재벌이 너무 많이 가져가서 생긴 것도 아니고, 정부 규제가 많아 생긴 것도 아니다”라며 “그동안 투자와 신산업 개발이 부족했기 때문에 주력 산업들이 붕괴되면서 어려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한국의 권력 구조상 대통령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대통령과 여권이) 재벌 규제에만 갇혀 있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정부가) 좌우 이념에만 치우쳐 재벌을 적으로 여기고 무조건 잡아넣겠다는 식으로 간다면 경제가 살아날 길이 없다”며 “갈등만 하다 잘못된 부정부패 사건이 생기고 외국 투기 자본이 들어와서 (우리 기업을) 다 잡아먹어 경제가 와해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기업 집단이 붕괴하면 새로운 산업을 키울 수 있는 힘이 약화된다. 그런 다음에는 아무리 혁신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고 강조했다. 

결국 고용을 하는 주체는 기업

그의 글을 보며 너무 공감이 많이 됐다. 현 정부 들어와서 더욱 이념 갈등이 심해진 걸 느낀다. 일단 기사 댓글을 보면 알 수 있다. 네이버 댓글을 보면 우리 나라 경제를 망친 모든 원흉은 문재인 정부이고, 다음 댓글을 읽으면 우리 경제를 좀 먹는 존재는 삼성이다. 어떤 연예인 기사 등 휘발성이 강한 기사만 나오면 삼성 기사를 덮으려고 했다는 음모론이 튀어나온다. 그렇다면 삼성을 때려 잡아야 우리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도배가 돼 있다. 

나도 기자가 되기 전에는 기업은 좀 부정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내 이념적 지형이 보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문기자 생활을 8년간 해보니 기업은 우리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됐다. 기업 자체에는 착하고 나쁨이 없다. 나쁜 일을 저지른 기업 구성원, 그 기업의 오너가 있다면 법으로써 단죄를 받으면 된다. 결국 고용을 늘리는 것은 기업이다.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가 안 되려면 본인이 창업을 하거나, 공무원이 되는 수밖에 없다. 여담이지만 정부부처 공무원들도, 경찰들도, 국정원 직원들도 자기들의 조직을 회사라고 부른다. 


투자 가뭄 시달리는 한국 

내가 장 교수의 인터뷰에서 가장 공감이 됐던 얘기는 바로 ‘투자와 신산업’이 부족하다는 것을 지목했던 대목이다. 반세기 전 폐허에서 우리나라를 G20 가입국의 반열로 끌어올린 것은 자동차, 중공업 등 중후장대 사업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옆의 나라 중국만 살펴봐도 알리바바의 마윈과 텐센트의 마화텅 등 인터넷 정보기술(IT) 기업이 수십조원의 부를 소유하고 있다. 이전과는 패러다임이 완연하게 달라졌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재벌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 재벌은 무조건 때려 잡아야 할 존재라는 것이다. 만일 재벌기업이 추진 중인 사업이 모두 한국에서 사라진다고 가정해 보라..대한민국 경제가 존속할 수 있을까. 

갑질을 하고 하청기업 원가후려치기를 하는 것은 분명히 불법이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경제 구조적인 문제점을 백안시하면서 무조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라고 당위로서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게 내 주장이다. 

며칠 전 회사에 뉴욕 특파원을 하고 있는 선배가 휴가차 회사에 찾아왔다. 그 선배는 “해외 나가면 우리 기업에 대해 확실히 아는 브랜드는 삼성 밖에 없어. 현대도 알긴 아는데 잘 몰라”라고 말했다. 삼성이 국내에서 욕도 많이 먹지만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저력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자영업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장 교수의 지적도 수긍이 간다.그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우리 경제 구조를 제대로 모르고 시행한 정책”이라고 했다. 그는 “자영업자 비율이 6%인 미국 상황을 25%에 달하는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건 문제가 있다”면서 “한국은 최저임금을 올리면 자영업자들이 그것을 흡수할 여력이 없다”고 했다. 가끔 기사에 붙은 댓글을 읽어보면 편의점 주인들을 머리에 뿔이 난 악인들로 묘사하는 글이 많다. 그들이 악인들인가? 그냥 우리네와 똑같은 서민 아닌가? 단지 몇 평 안되는 편의점을 임대 받아서 점주로 산다고 해서 그 사람이 악덕업자인가? 아니다. 다 같이 먹고 살아야 한다. 기업이 임금이 높으면 고용을 줄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편의점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게임 체인저가 돼야 

결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민간이 최대한 창의성을 발휘해서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정부 구성원들은 국정농단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로 가득 차서 열심히 일을 안했고, 문재인 정부는 정의로운 정부라서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들만으로 채워져 있는 게 아니다. 각 정부부처를 굴러가게 하는 톱니바퀴(플레이어)들은 똑같다. 행정고시 출신 관료들이다. 세종시에서 3년이나 살았고 기자생활의 대부분을 정부부처 공무원들과 기싸움을 하며 보냈지만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애국심이 투철하다. 밤을 새워가며 열심히 일한다. 

현 정부의 2번째 기획재정부 장관 및 경제부총리가 된 홍남기 장관도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에서 기획비서관을 했었다. 정권에 따라 나쁜 관료, 착한 관료가 있는 게 아니다. 결국 어느 정부가 들어섰건 간에 스스로 먹고 살고 뛰어 놀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규제와 제도를 뛰어넘는 ‘게임 체인저’로서 말이다. 마치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이 애플을 만들고, 일론 머스크가 스페이스X 로켓을 만들어 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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