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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박 Apr 01. 2020

육아휴직 한달 후 깨달은 영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영어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당시 미국 레슬링 WWF(지금은 WWE다)서 워리어가 하는 영어(말도 안 되는 ㅋㅋ)를 크게 따라하는 게 내 취미였다. 군대 가기 전까지도 프로레슬링을 봤다;; (차라기 그 시간에 영어 학원을 갔거나 6개월 언어연수를 다녀왔으면 좋았을 것 같다.)

군대에서는 모씨의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는 책에 꽂혀서 같은 문장만 계속 반복해서 들었다. 영어가 늘리가 없었다. 복학 후에는 영어 과목은 피해서 들었다. 외국에서 살다온 애들이 좋은 점수를 독점한다는 말에 지레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남들은 취업 준비를 할 나이인 26살에 학교에서 하는 단기 어학연수를 한달 다녀왔지만 당연히 영어는 전혀 늘지 않았다. 오전에 국내에서 할 수 있는 학원수업과 동일한 수업 듣고 나머지는 프리 타임이었으니 기숙사에만 처박혀 있었고 늘리도 없었다. 통번역 형식의 학원도 한달 정도 다니다가 관뒀다. 대학 수업과 병행하기 힘들었기 때문으로 기억된다.(기억하고 싶다.. 사실은 모든 게 게으름 때문이다.)

그 이후에는 말 그대로 취업을 위한 토익 공부를 했다. 900점은 넘었지만 내가 원하는 말은 하지 못하고 글로 쓰지 못하는 그저 시험을 위한 점수였다. 그나마 시험을 위해 단어 공부를 많이 했고, 어릴 때 다른 사람보다는 발음이 좋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이 나름의(?)의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40대를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완전히 창피한 기억이다.

기자 초년병 시절에는 월스트리트 영어학원을 끊어놓고 몇 번 안 가고 끝나버렸다. 몇 백만원을 날린 셈이다. 소리영어라는 것을 돈을 내고 듣기도 했지만 몇 번 하다가 말았다. 2년 전에는 다시 영어에 꽂혀서 1회에 5만원씩 하는 원어민 1대1일 회화에 다녔다. 전화영도 6개월 이상 했다. 하지만 크게 실력이 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전날 술을 많이 마시면 그냥 전화를 안 받기 일쑤였다. 심지어 업체에서 전화와서 환불 얘기를 먼저할 정도였다. 이런 식으로 직장 생활 10년이 흘러가 버렸다. 영어는 영원히 정복할 수 없는 미제처럼 내 인생이 끝나는 듯 했다.

현재 나는 지난 3월부터 육아휴직 중이다. 우리 회사에서 남자로는 최초 사례다. 야간 대학원도 이유 중 하나지만, 육아휴직을 낸 가장 큰 이유는 영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치 회사를 관두고 훌쩍 세계 일주를 가는 사람들처럼 영어는 꼭 정복하고 싶은 목표였다. 사실 영어 공부앱이나 전화영어, 학원, 일대일 영어회화 모든 수단은 다 나의 영어 실력을 올릴 수 있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할애해 공부하는 것이 내게는 쉽지 않았다. 더구나 주말은 거의 100%를 아이들에게 할애해야 한다.(이것도 핑계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과감하게 휴직을 신청했다. 지금도 24시간을 풀 타임으로 영어공부에 할애 하지는 못한다. 다만 한달 정도 여유를 갖고 생활하면서 느낀 점이 몇 가지가 있다. 그걸 나누고 싶다.


1. 영어는 귀에 꽂고 있다고 절대 늘지 않는다

영어는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그저 소음에 불과할 뿐이다. 나도 어릴 때는 그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영어 실력이 붙고 입에서 영어가 튀어나올줄 알았다.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릴 때 외국에 가서 생활하지 않은 우리들은 영어의 표현을 알아야 들을 수 있고 말을 뱉을 수 있다. 그 단어와 숙어, 구문의 뜻과 발음, 연음 처리 등 모든 것을 모르면 들을 수 없고, 당연히 말을 할 수 없다.


2. 시트콤이나 영화로 영어를 배우는 것은 사실 어렵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나도 군대에 있을 때 고참이 구워온 프렌즈 CD를 보는 게 군대에서 유일한 낙이었다. 그 이후 취직 전까지 무수히 많은 미드를 봤다. 종류로 따지면 10개가 넘는 것 같다. 그때는 그저 보기만 하면 영어가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스크립트를 프린트해서 따라 읽어보기도 하고 짧지만 쉐도잉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어려웠다. 그저 "It's ridiculous. It's absurd. You are an asshole." 이런 문장들만 익혀졌다.

그때는 자막을 보면서 미드를 보면 아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런데 전혀 아는 게 아니었다. 자막을 보며 내용을 파악한 가운데 아는 단어 몇 개가 나오니 '아 내가 이걸 영어로 이해하고 있구나.. 나, 영어 좀 하는데?' 하고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시트콤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상황 등은 정말 특수한 경우가 많다. 우리가 일상생활에 적용하기 어렵다.  내 생각에는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표현이 무엇인지 찾아서 흡수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내 일상.. 출퇴근, 육아, 고향, 여행, 면접, 비즈니스 이메일 등 특정 영역을 정해놓고 조준 사격을 해야지, '나는 원어민 수준의 영어 실력을 키워야 해' 하면서 통째로 이 시트콤을 다 외울 거야..이런 자세로 하다가 보면 아무 것도 익히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얘기다.)

거의 원어민 수준으로 이해하고 말하는 BTS의 RM도 엘런쇼에 출연해 '프렌즈'를 2번 보고 영어를 뗐다고 얘기했지만, 나중에는 무수히 많은 학원들 다녔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엄청나게 많은 노력을 했다는 얘기다.


3.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선 받아쓰고, 낭독하고, 필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영어를 익히기 위해서는 일단 많이 들어야 한다. 앞에서 말한대로 집중해서. 이를 위해서 전문가들이 가장 추천하는 것은 받아쓰기다. 2분 정도 되는 영상 클립을 틀어놓고 여러번 들으면서 받아쓰기를 해보고, 이후 원문과 비교해 자신이 잘못 들은 부분이나, 아예 블랭크로 남긴 부분을 체크하고 몰랐던 부분을 체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새 단어와 구문을 사전을 찾아본 후 그냥 끝나면 이전에 우리가 했던 공부 방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반복해서 원어민의 발음과 인토네이션을 흉내내는 낭독이 필요하다. 쉐도잉이 맞는 사람은 쉐도잉을 하고, 다 듣고 읽는 게 더 맞는 사람을 그걸 하면 된다. 마지막으론 필사를 꼭 해야 한다. 우리의 영어를 쓰는 목적은 단순히 입으로 표현을 뱉어내는 데 그치기 위함이 아니다. 외국인과의 이메일이나 SNS, 논문, 기사 등 글을 자유자재로 쓰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다. 필사를 하면서 문장구조와 문법을 자연스레 몸에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매일 영어 일기를 통해서 그날 배운 표현을 직접 써보는 게 많은 도움이 된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번 달부터 나도 일주일에 몇 번씩 쓰고 있는데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독한 마음을 먹고 하지 않으면 꾸준히 쓰기가 쉽지 않다.


나는 지금  2개의 영어학원에 다니고 있다. 일반 회화학원은 아니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회화학원을 다니면서 영어실력 향상과 별반 연관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일단 총알이 많아야 회화 학원에서 쓸 것 아닌가. 한 학원은 작문에 베이스를 둔 회화 학원이고 한 학원은 뉴스 청취와 낭독에 베이스를 두고 있다. 하나는 중급, 나머지 하나는 고급이다. 진짜 영어를 배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같기는 한데 따라가기 버거운 것도 사실이다.

작문 학원은 6개월 코스라 나머지 6개월은 회화학원을 병행하고 뉴스 청취학원은 계속 수강할 예정이다.


나중에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 이 순간이 헛되게 느껴지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사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육아휴직이 어디 쉬운 일인가..

영어로 힘들어 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거의 40평생을 영어 공부에 매진하기 보다는 '영어 공부를 잘하는 묘책이나 지름길은 없을까'만 생각해 왔던 것 같다. 올해 영어에 올인한 이후 나중에 '아, 저 사람은 중급 이상은 되네.. 그래도 잘하네' 라는 얘기를 듣고 싶다.ㅜㅜ 모두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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