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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박 Apr 03. 2020

저는 이어폰을 못 끼지만 영어 공부합니다

나는 이어폰을 낄 수 없다. 남들이 해외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 좋다고 보는 영화를 나는 헤드폰을 끼지 못한채 봐야 한다. 그냥 자막으로만. 당연히 국내 영화는 볼 수가 없다.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가끔 비행기를 타고 미국이나 유럽 출장을 갈 때는 정말 너무 지루하고 힘들어 미쳐버릴 것 같을 때가 있다. 비행기 내 소명을 소등하기 때문에 책을 읽기도 뭐하다. 나에게만 핀포인트로 조명을 켜놔도 자고 있는 옆에 사람에게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이어폰을 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명' 때문이다. 귀에서 쇳소리가 난다. 기자 3년 차 때였나. 과음을 한 뒤 다음 날 일찍 출근할 일이 있어서 나왔는데 그때 이어폰을 귀에 꼈을 때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 후부터 소리가 들린다. 이어폰을 끼면 귀에서 먹먹한 느낌이 강해지면서 이명 소리가 커진다.

일상생활에는 별 지장이 없다. 처음에는 겁이 나서 이명 전문 한의원에 가서 비싼 약도 먹어보고 세브란스 병원에 가서 CT도 찍어보고 별 시도를 다했지만, 결국 '원인불상', '만성으로 고치기 힘듦'으로 끝났다. 전화도 가급적이면 스피커폰으로 받으려고 노력한다. 너무 바짝 붙여서 통화를 하면 이어폰을 꼈을 때와 동일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남들이 다 하는 이어폰을 끼고 다닐 수 없다. 아이팟을 끼고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부럽다. 내 성향상 바로 사서 끼고 다녔을텐데..하면서. 골전도 이어폰 껴도 어지럽다.  지금처럼 유행을 타기 전에 한 번 샀었는데 바로 어지러움을 느껴서 집에서 방치하다가 사라진 것 같다. 핸드폰을 교체할 때마다 생기는 이어폰도 내게는 그림의 떡이다. 무선 이어폰을 선물로 받은 적도 있는데 그것도 아버지께 드렸다.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끼고 다니시는 어르신들을 보며 '난 왜 이럴까'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아무튼 이런 나의 신체적인 특성 또는 단점 때문에 나는 영어공부를 집에서 밖에 할 수 없다. 사실 나도 이명이 생기기 전에는 이어폰을 끼고 출퇴근을 했던 터라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저 사람들 지하철에서 공부하는 거 아냐. 다 미드나 드라마 보고 있잖아. 하나도 부러워할 거 없어' 라고. 하지만 사실 속으론 엄청 부럽다.

도서관에서도, 스터디 카페에서도 나는 이어폰을 끼고 듣기 공부를 할 수가 없다. 동영상 강의도 볼 수 없다. 모두 집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대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영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그냥 귀로 듣고 흘려버리는 것보다 따라 읽고 낭독하는 게 무척 중요한데 오히려 잘 된 게 아니냐고. 하지만 또 다른 복병이 있다. 내가 공부하고 있을 때 순간 순간 방으로 ATTACK을 해 들어오며 '아빠 뭐해?"라고 묻는 아이들이다. ^^ 그래도 이는 행복한 고민이다.

 

암튼 내 이명은 평생 고쳐지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도 나는 집에서만 영어공부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공부하는 데 장소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장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부하려는 의지와 꾸준함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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